따돌림에 관하여
마냥 한없이 걸어오다 보니 몰래 숨어버린 기억에 사실은 그런 일이 없던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고 나니 억울함에 목이 메어왔다. 그건 아물어진 것뿐이었지 아예 상처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들은 내 세상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긴 했으나, 그들이 내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는데. 어렸던 나는 시야와 생각이 좁았고 무엇보다 눈 앞에 놓인 상황에 직면한 채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었다. 그저 작고 여린 아이.
나는 평소엔 그 작고 여린 어릴 적의 나를 잊어버리고 살다가 가끔, 문득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럴 땐 그 어린 나의 눈을 응시하고 그때의 감정을 생생히 현재의 것처럼 느껴내곤 한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인 것처럼. 아마, 그 아이에겐 그 일이 그만큼 엄청난 세상의 흔들림이었겠지.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곳에서 건져낼 수는 없더라도 말없이 무릎을 낮추어 눈높이를 맞추고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다정히 안아주고 싶다.
넌 잘못이 없다고, 지금은 너무나 괴롭고 힘들 테지만 분명 미래엔 이 모든 일을 떠올려도 상처가 다 아물어서 다신 피가 나는 일이 없는 그런 날이 꼭 올 거라고. 아니, 꼭 온다고. 이미 와 있다고. 그렇게 손을 꽉 잡고 확신해주고 싶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아마 맞는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을 테니까. 누군가와 맞지 않아서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자연히 그 사람과의 교류를 끊어내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일이라고 느낀다. 나 조차도 싫어하고 맞지 않아서 기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 그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연락을 하지 않아서 교류와 소통을 끊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헛소문과 이간질을 시도하여 그 사람을 철저히 혼자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그에게 물리적, 언어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게 결코 아니다.
내게는 따돌림의 기억이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그런 기억.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한 보습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그 학원에서 A라는 아이와 아주아주 친해졌는데 그랬던 A는 내가 학원 반 재배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반을 옮긴 이후 내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반을 옮긴 후 새로운 친구 B와 C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A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이 A의 마음에 아니꼽게 작용했나 보다.
A는 갑자기 어느 날부터 반도 다른 B, C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하더니 그 둘과 빠르게 친해졌다. 그리고 며칠 만에 그 셋은 절친이 되어 있었다. 그중 나만 소외를 시켜 놓고서. 내가 학원에 도착해 그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방금까지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표정이 굳고 하던 말을 멈췄으며 모른 척 대화를 무마시켜 버렸다. 또 나와 같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단어를 쓰며 그들만의 대화가 내 앞에서 버젓이 이루어졌다. 속삭이는 귓속말도 아닌데, 나는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내게 D라는 또 다른 친구가 한 명 생겼다. 이 D라는 친구 또한 다른 여자 아이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처럼 혼자가 된 아이였다. 우리 둘은 상황이 비슷했으니 서로를 더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학원에서 단체로 놀러 가기로 했던 어느 날, 아주 들뜬 마음으로 학원에 도착했는데 그 D가 나를 따돌리고 상처를 준 A의 무리와 함께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무섭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터졌다. 다른 아이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에 어찌할지 몰라 손까지 벌벌 떨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러자 그제야 D는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자신은 그저 A가 갑자기 자신에게 와서 말을 걸었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순 없으니 대화가 이루어진 것뿐이라며 날 달랬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A는 작정하고 내가 친해지는 모든 아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나를 철저히 혼자로 만들기 위해 그러는 것임을.
그 이후 D는 슬금슬금 나를 배신하고선 결국 A의 무리로 들어가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고 마음고생을 몇 달간 하다가 부모님께 힘들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겨우 학원을 끊을 수 있었다.
학원을 그만두고선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친구들이 언제 나를 배신할지 몰라 두려워했고, 매 새 학기마다 친구를 사귀는 것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새로운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잘 친해지고, 그 사람이 나와 잘 맞으면 더 많은 얘기를 나누며 먼저 다가가 연락한다. 만약 그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면 몇 번 대화를 나누다가 서서히 그 사람과의 교류를 줄여가며 서로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잘 마무리 짓는 편이다.
지금 예전의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 아니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많이 아픈 사람. 그런 모든 사람에게 내 경험을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겨내지 않았다. 그대로 맞았고 아파했고 견디지 못해 도망쳤다. 그럼에도 괜찮다. 잘 지낸다. 내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그 상황과 아픔에서 꺼내 줄 힘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 말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당신 잘못 아니라고, 사람이 사람 싫어할 수 있으나 그 감정을 무기 삼아 당신에게 휘둘러 무언가를 자꾸 빼앗아가고 당신에게 직, 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나쁘고 못되고 버러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당시에 자책을 많이 했다. 내가 어떤 것을 잘못했기 때문에 A가 내게서 등을 돌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속앓이를 하다 A에게 용기 내어 문자로 사과를 한 적도 있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라고 까지 사과를 쥐어짜 냈다.
하지만 아니다. A가 나를 싫어할 수는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A의 감정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 감정을 이유로 나에게서 친구들을 이간질해 빼앗아가고 나를 철저히 혼자로 만들며 내가 울고 상처 받아도 미안한 마음 하나 없는 것은 모두 A가 그런 못된 인성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내가 나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은 게 너무 안쓰럽다. 그러니,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이들의 눈을 맞추어 보고 꼭 안아주고 싶다. 그들을 안아줌으로써 예전의 그 어릴 적 나를 마주하고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