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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

꿈 : 1

by 헬리오스

빛과 어둠

꿈 : 1



어느 날,

아주 대수롭지 않은 순간에

방 안이 조금 밝아졌고


그게 너였다.


전등을 켠 것도 아니고

날이 갑자기 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네가 웃으며 들어왔을 뿐인데

나는 그날의 공기를 기억하게 됐다.


정말,

너는 빛이었다.

눈을 뜨는 행위 자체가 잠깐은 기적처럼 느껴지던 순간.


나는 내 안에서 오래 잠겨 있던 창 하나가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내 안으로 스며들던 그 순간,

나는 나의 그림자를 잃을 만큼 밝아졌고 익숙했던 나조차 낯설어졌다.


네 손끝은 온기를 품었고,

너의 말 한 줄이 내 안의 굳은 침묵을 깨뜨렸다.

그렇게 나는 너에게 말을 다시 배웠다.


너의 손은 따뜻했지만

특별히 잡아 두지는 않았고

너의 말은 다정했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너는 어떤 아침보다도 선명했고,

어떤 낮보다도 더 따뜻한 아주 짧은 계절이었다.

그러나 너의 빛이 너무 강렬했기에

나는 너를 보며 눈을 감았고,

너의 온기가 너무 뜨거웠기에

그 끝에서 나는 오히려 서늘해졌다.


그날도 너는 어떤 아침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고

어떤 오후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쉽게 방심했다.


눈을 감은 건 빛이 눈부셔서가 아니라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너의 빛은

어둠을 밀어내며 생긴 게 아니었다.

빛과 어둠이 처음부터

서로를 물고 태어난 것처럼, 붙어 있는 두 얼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는 내게 빛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품어야 하는

모든 어둠의 형태이기도 했다.


너는 웃으며 나를 밝히고,

그 웃음의 끝에서 너는 나를 등지고 사라졌다.

나는 너 덕분에 밝아졌고,

결국 너 때문에 가장 깊은 밤까지 갔다.


너는 웃으며 떠났고,

나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사람처럼 남았다

너는 나를 비췄고

그래서 내 어둠은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지금 나는

너의 자리에 작은 불빛 하나를 켜둔다.


그 불빛은

너를 위한 게 아니다.

이미 너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건,

너를 빛이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

그때의 나를 위해 켜둔 것이다.


그 불빛 아래에서만

나는 다시 어둠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 불빛은 약하고 곧 꺼질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은 충분하다.


이제,

나는

너의 자리에

촛불 하나를 켜두고 산다.


체념이란

완전히 어두워지는 일이 아니라

이 정도 밝기에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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