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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라 May 22. 2020

아빠와 통닭

제시어: 라떼는 말이야

비까지 내린다. 이런 날은 더 흠뻑 취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도 될 것 같다. 버림받는 것은 항상 아프다. 어느 논문에서였나. 실연의 아픔은 심장마비로 죽기 직전의 고통과도 같다고 했는데. 일단 내일의 나는 모르겠고 지금 이 순간의 내 심장이 너무 아프다.


일 년이나 지속된 관계였지만 한 순간에 끝나버린 이 관계에 나는 갑이었던 적이 없었다. 사대보험도, 최저시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나는 비정규직 서빙 노동자. 피고용인이었다. 아주 방금까지. 내일부터 나올 필요가 없다는 뻔뻔스런 통보는 갑과 을, 그 태두리 안에서 내가 수긍하기에 적당한 말이었다.


돌아보면 늘 이랬다. 사랑하던 애인도 한순간에 남이 됐고, 열과 성을 담아 다닌 대학도 8학기가 끝나니 나를 졸업시켰다.


우리라는 관계는 언제나 끝나기 마련인가보다. 그런데 나는 준비가 안됐는걸.


오늘 같은 날, 다음날 일할 직장이 없는 날 눈앞에 보이는 것은 통닭트럭. 돌아가는 통닭과 통닭 사이로 넘어오는 통닭냄새. 그래. 어쨌든 오늘은 일한 거니까 그 보상으로 통닭이나 먹자. 아빠들도 하루가 고단하고 일에 치였을 때 통닭을 사왔다고 했어.


항상 아빠는 통닭을 사오셨지. 그리고 아무 말도 안하셨어. 아빠가 통닭을 사왔던 그 날이 아빠의 첫 실직의 날이었을 수도, 어쩌면 아빠의 죽마고우가 돈을 빌려놓고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일수도 있다. 아빠는 항상 말을 않으시고 언니와 나에게 통닭을 던져주고 갔다.

그래 오늘은 아빠에게 말을 해야겠다. 눈물이 난다고. 나도 이제 아빠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힘들다고. 당신이 견뎌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집앞. 괜스럽게 내가 어른이 된 거 같은 기분. 어쩌면 아빠만이 내 삶에서 동등하게 나를 바라봐주고, 어느 순간에도 나를 짊어지고 갈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빠와 통닭에 소주 한 잔 할까 생각하며 들어가서 괜히 거실에서 땅콩 먹는 아빠 주변을 서성인다.


“아버지, 인생 참 힘들어요. 다들 힘든 걸까요. 서빙알바 해고당했어요.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데. 앞으로가 걱정돼요..”


그러자 아빠가 말한다.


“유라야,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아야.. 부잣집 아들집에 들어가서 창고에 살면서 공부  가르쳐주고 남는 음식 먹으면서 살았어.. 요즘 애들은 노력이 없어. 열과 성이..”


쨍그랑.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다. 방이나 들어가야지. 통닭 든 손을 허리 뒤로 숨기고. ‘아 몰라’라는 표정으로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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