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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라 May 22. 2020

꼭꼭약속해

제시어: 진실

‘이제 거짓말쟁이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위의 글귀는 내 졸업전시 작품이야기 마지막 설명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큰 일은 둘 같지 않던 친구와 다툰 일이다. 친구가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휴학까지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시간에 해결을 부탁해야만 했다.


친구가 괘씸하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나는 ‘거짓말’이라는 반칙을 범했다. 거짓말은 나를 우세하게 만들었지만 바로 뒤이어 친구의 집요함 끝에 내 거짓말은 탄로났다. 그동안 쌓아왔던 내 모습들은 거짓말쟁이라는 타이틀로 뒤덮였다.


나는 나의 함정에 걸려 넘어진 그 이후 변명의 늪에 빠져버릴 정도로 노력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미명하에 살았다. 나는 진실과 사실의 구분을 몰랐다. 다만 내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부연설명으로라도 확실히 했고, 말이 애매하면 근거를 들어 해명하곤 했다. 오해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거짓말쟁이였으니까.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노력했지만 학교생활이 끝나기 전 까지 나는 그 거짓말쟁이라는 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쟁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어린이로 보였으리라. 진실된 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사실은 실패했고, 그렇게 시간을 흘렀고 예술계를 졸업해 어느순간 난 언론계 입사를 준비하는 한 지망생이 됐다.


이후에도 난 그때 그 일을 생각한다. 내가 그 친구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 또 진실되게 사과했다면 내 학교생활은 달라졌을까. 나는 달라졌을까.


참, 그리고 재밌게도 나와 다툰 그 친구는 나보다 일찍 방송국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이 좁은 바닥에서 같은 회사의 아나운서 직으로 지원하게 됐다. 자기소개서에 대학시절 나의 거짓됐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면접일.


“최유라씨는  OOO작가 알죠? 유라씨가 거짓말했던 그 친구가 여기서 일한다던데, 유라씨에게 거짓은, 진실은 또 사실은 무엇이죠”

“거짓은 위태로움이죠. 저를 한순간에 무너뜨려요. 반대로 진실은 떳떳함의 원천입니다. 나의 자존감을 지탱해주며 어떤 시선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 거짓말쟁이에서 벗어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제는 거짓말쟁이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실을 전달해 진실 된 세상을 만드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흠. 그래. 진실된 사람이 뉴스를 만들어야 돼. 거짓말을 안 할 것 같은 이미지라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주거든”


합격자 발표일. 달그락 수험번호를 치고 엔터버튼을 꾸욱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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