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청하고자 불을 끄면 그때서야 낮은 포복자세로 기어 나오는 바퀴들은 어둠의 옷을 입은 가난 그 자체인 것 같다.
중력의 영향을 벗어난 존재인지, 어두운 방 천장에 가볍게 매달려 소리 없이 나를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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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실컷 방랑생활을 즐긴 후 자리 잡은 곳은, 부산의 한 오래된 아파트이다. 넓은 공원과 큰 시장을 이웃한 이곳의 첫인상은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정갈했다.
이사를 한 후에야 조금씩 그들의 흔적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구멍마다 막아놓은 테이프들, 문틈 구석에 끼어있는 사체들...
전 세입자가 만기 전에 이사를 해서 공실이었던 이유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알고 보니 우리 집 바로 밑 세대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집이었다. 착실하게 바퀴들을 사육해서 방생하니 문틈 하수구 구멍마다 막고 밀폐해도 어느 틈새인가 비집고 들어오는 그것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막고 뿌리고 설치하고 분필처럼 그어놓고, 갖은 방법으로 퇴마해도 역부족이었다. 점차 늘어나는 숫자, 이제는 우리 집안에서도 번식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무력감이다.
오랜만에 강력한 무력감이 나를 손쉽게 다운시킨다. 무언가 나를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데 내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
이것은 마치 가난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난은 종국엔 사람을 무력감으로 무릎 꿇리지 않을까.
이 가난의 심볼과 같은 바퀴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있다.
죽이고 죽여도 다시 살아난 것처럼 같은 모습으로 내 눈에 띄는 너. 그 작고 가벼운 아이들이 오늘도 내 맘을 한없이 무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