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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숙 Apr 20. 2018

동물원이 트렌드였다면..? 별마당 도서관

그래서 시간을 책장 결에 새길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한껏 낮춘 기대치보다 더 감흥이 없었던 것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팔 걷어붙이고 진심으로 덤벼들지 않았어..'


리모델링한 코엑스에 뒤늦게 다녀왔다.

사방이 온통 반질반질한 새것들 천지에 식당들, 옷가게들과 함께 스타필드라는 괴물 쇼핑몰이 들어와 있었다.

신선함과 호기심보다는 두려움과 이질감, 그리고 이상하게 서늘한 한기가 주변에 가득했다.

휴먼스케일을 월등히 능가하는 것들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의 발동이었을 것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쇼핑몰 안에 있는 도서관 콘셉트(?)의 광장처럼 보였다.

도서관의 외형을 입은 만남의 광장이라고 해야 할까..


올망졸망한 분식가게들과 동그란 테이블 대신 도서관의 그것과 비슷한 서가들이 기세 좋게 하늘을 찌를 듯 과장되어 있고 대화보다는 책을 읽기에 적합한 1자형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거대 책장들에 압도당하긴 했지만 책을 소재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공간 트렌드를 손쉽게 차용하여 쇼핑몰의 이미지에 팔리는 아이덴티티를 덧입히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어렵지 않게 상기되었다.




어떤 공간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기 위해선 공간의 모든 것들이 일관된 맥락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공간에서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심지어 냄새까지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별마당 도서관에서 아쉬운 점은 공간의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석구석 돈이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로만 채운 쇼핑몰 안에 있는 별마당은 쇼핑몰과 크게 이질적이지 않았다.

고속도로의 만남의 광장과 같은 역할 외에 어떤 가치를 주려고 책을 하늘 가까이 쌓아 올리고 그 공간에서 인문학 강좌 같은 걸 하고 있을까?

멈춤, 비움, 채움, 낭만..?




그럼에도 덧붙이고 싶은 한 가지,

쇼핑몰 한가운데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시간 때우기용의 미용실 잡지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음로써 예상치 못했던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한 권을 꼼꼼히 다 읽던, 한두 장이나 한두 줄만 읽더라도 영감을 주는 글귀 하나를 발견함으로써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물건 '책'이 부디 앞으로 끊임없이 쇠락해갈 쇼핑몰과 함께 먼지가 쌓여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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