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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Apr 11. 2018

뜨거운 사케

가끔 생각하는 또 다른 취향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을 보고 음식을 떠올리는게 아니라, 음식을 보고 술을 떠올리는 사람을 주당이라 한단다. 즉 술에 안주를 곁들이는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잠정적인 안주로 삼는 사고방식인 거다. 그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틀림없이 주당일테다.


내가 언제부터 술을 좋아했는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군대를 다녀 온 후부터였겠지만, 술의 '맛'을 알고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정도 음주 경력이 쌓인 지금은 나의 술 취향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건 맥주다. 늘 내 냉장고 안 가장 시원한 칸에 몇 캔씩 쟁여져 있는 맥주는 낮은 도수와 특유의 청량감, 부담없이 들이킬 수 있는 가격대로 절찬리에 마셔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순간이 있다면, 퇴근 후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맥주를 마실 때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열대야가 한창인 한여름, 느지막하게 야근을 마친 날을 상상해보자.

마치 습기를 뚫고 지나간 자국이 보일 정도로 끈적대는 밤일 것이다. 녹초가 된 몸과 정신으로, 그시간에도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역 밖으로 기어오르는거다.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식다 만 몸에 다시 열기를 끼얹지만, 아직 집까지는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게다가 도착한 집에선 4층 가량의 높이가 엘리베이터도 없이 기다린다. 집에 도착하더라도 방은 별로 시원하지 않다. 에어컨을 켜도 미지근한 공기가 고작이다.

그래도 체념은 아직이다. 더위의 긴장을 놓쳐선 안된다. 간신히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오히려 뜨거운 물과 증기로 가득찬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더라도 물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게 원칙이다. 그렇게 열과 습기에 흠뻑 절여진 몸을 만들어 두는게 관건이다.


그리고 샤워를 하는 동안 에어컨에 식혀진 공기에 뛰어들어, 냉장고를 열어 서늘한 맥주 한 캔을 골라 잡는거다. 손바닥을 짜릿하게 지지는, 버석한 살얼음의 감촉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쌉싸름하고 톡 쏘는, 담백한 보리향의 음료를 마실 때는 마치 식도의 주름 하나하나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청량감은 감미료와 설탕으로 만들어진 청량음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끈적하게 입 안에 달라붙는 당분의 뒷맛은 쓴맛보다 더 얼굴을 찌푸리게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맥주나, 깊고 진한 향과 맛의(그리고 비싼) 위스키 종류를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청주, 사케류는 영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맛이 얕지는 않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알콜의 끝맛만 남기고 낼름 취기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의 문화처럼 단정하기만 한 사케들의 맛은, 알기 쉽고 편한 맥주나 독하지만 그만큼 진하게 입 안에 감겨드는 위스키에 비해 영 심심하게만 느껴지는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뜨겁게 마시는 술이라니! 온더락으로 담아 여유롭게 즐길수도 없고, 커다란 잔에 담아 호쾌하게 들이키지도 못하는, 좀스럽게 작은 잔에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거추장스러운 술이 내가 생각하는 뜨거운 사케의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사케는 내가 술을 선택하는 기준에서 언제나 최하위에 위치한 술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주문하기는 하지만, 그냥 일식을 먹을 때 기분이나 내기 위해서 마시는 그런 술.

하지만 친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사케도 사케를 마셔야만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홍대 어딘가의 이자까야에서. 별로 비싸지도 않은 술이었지만.


밤 늦은 시간이었을 테다. 이미 친구들과 거하게 한 잔 걸쳐 불콰한 얼굴로 들어선 가게는 제법 한산했다. 인테리어는 질 좋은 원목을 사용했고, 소소한 장식들도 일본에서 세심하게 골라 들여 온 듯 현지인의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골라 들어온 가게였지만 내심 잘 찾았다는 자찬을 하며 자리에 앉아 붓글씨 폰트로 인쇄된 메뉴판을 들여다 본다. 하지만 신통한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1차에서 충분히 웃고 떠들었고, 자극적이고 기름진 안주도 실컷 먹었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모듬꼬치 한 세트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뜨거운 사케 한 병.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노란 백열전구 아래 번들거리는 술취한 눈이 네 쌍. 천천히 돗쿠리 병을 들어 뜨거운 술을 한 잔씩 채우고 짠했다.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서 사케에 더 정신이 갔는지도 모른다. 향긋한 쌀내음과 함께 느껴지는 따뜻한 술의 달큰한 첫 맛, 약간 아쉬울 정도로,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깔끔히 사라지는 알콜향과 뒷맛은 그 자리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그리고 우리는 사케 한 병을 안주삼아 밤새 이야기를 비웠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크게 웃고 떠들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취해갔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케는 쌀로 빚은 차가 아닐까 싶다. 술 자체의 풍미도 좋지만, 지나치게 그것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의 맛과 향. 그리고 그 뜨거움 때문에 마시기 전 까지 들여야 하는 공이, 취기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기 때문에.


사실 술은 뭘 마시든 취하게 된다. 다만 취하는 방법의 문제인 것이다.

신나서 흥을 돋궈가며 마시는 술이 있고, 사람을 바라보며 차분히 마시는 술도 있듯이. 그리고 그럴 때 마셔야 하는 술이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아주 뜨거운 사케라고 답할 것이다.


이후로 나는 일식집이 아니라도 종종 뜨거운 사케를 주문하곤 한다. 사람을 더 잘 보고 싶을 때, 진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이도저도 아니면 여유로운 취기를 바랄 때. 그럴 때 사케를 마시면 틀림없이 좋은 기분으로 술집을 나서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케를 마다하지 않는다. 빈도에 관계없이, 조용히 취할 일은 언제든 꼭 생기는 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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