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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Dec 14. 2018

이륙(Take Off)

땅을 떠나면서

스페인 순례길을 다녀오면서 여섯번의 비행을 겪었다. 인천, 파리, 보르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드리드, 그리고 또다시 보르도, 파리, 인천으로.
운 좋게도 네번의 경로에서 창가에 앉을 수 있었고, 나는 내 첫 해외 비행의 모든 과정을 비교적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었다.

인천에서 파리로 가는 첫 비행에선 에어프랑스를 탔다. 생각보다 쉬웠던 탑승수속과 탑승 게이트를 지나,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안착시킨다. 한국과 달리 나이와 성별이 다양한 승무원들이 기내를 돌아다니며 분주히 이륙 전 점검사항들을 확인한다.
어느정도 정리가 이루어지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에어프랑스의 기내 안전 방송은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꽤 감각적이다. 작은 무대 위에 네다섯명의 여배우가 나온다. 그리고 나폴나폴한 동작들로 기내 주의사항이나 비상탈출 방법 따위를 안내한다. 춤같이 흥겨운 움직임
과 알록달록한 색감이었지만, 나는 영상 속에 나오는 구명 튜브를 쓸일이 없길 바랬다.

그렇게 한 차례의 수순을 지나보내면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를 따라 움직인다. 엔진음이 들렸다 싶더니 금새 가속하는 비행기는 대비할 틈도 없이 중력이 몸을 좌석에 눌러붙인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이내 둥 하고 지면이 발 밑으로 꺼져간다. 그리고 위로, 위로, 위로, 

땅이 멀어져 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진 않다. 기내의 어수선함 여전히 그대로다. 하지만 두 장 겹유리 너머의 지구는 마침내 둔탁한 도시를 벗어던지고 본래의 찬란한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그렇게 찰나에
 이루어지는 지상과의 결별 이후로, 창 밖을 스치는 풍경들은 천차만별이다. 빼곡하게 깔린 구름에 비행기가 안개의 수조 속에 담겼다고 착각하게 만들 때도 있고, 지구의 능선 너머로 떠오른 주황색 태양이 날개에 반사되면서 눈을 쏠때도 있다. 아니면 별보다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한 줌 불빛으로 뭉뚱그려지기도 하고.
의자 두어칸 옆의 복도에서 돌돌거리며 굴러가는 기내식 카트가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차라리 창 너머가 아득히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내 감상과 상관없이, 비행은 지루하고 기내의 일상은 막힘없이 흘러간다.
맞춰진 생활 리듬에 따라 사람들은 잠들고 깨어난다. 안대와 모포(가끔은 귀마개도 포함해서)에 의지해 잠드는 승객들. 유령처럼 그들 사이를 방황하는 승무원과 간헐적 야뇨증 환자들.
시간을 놓쳐 한참 뒤에야 받을 수 있었던 기내식도 빼놓을 수 없다.


출발 전에는 비행 내내 잠들지 않고 창 밖의 풍경을 낱낱이 목격하길 바랬지만, 실제로 그러기엔 비행 시간이 너무 길었다. 게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비행 준비를 한 탓에 수면부족이 무겁게 내 눈꺼풀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얇은 플리스 재질의 담요를 덮고, 안대와 귀마개를 끼며 잠을 청한다. 이 시간 전부를 즐기고 싶어도 이륙의 시간은 잠깐이고, 남은 건 지루한 열 네시간 남짓의 비행과 착륙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등받이 뒤에 달린 조그만 스크린 속의 영화를 우두커니 지켜보거나 하는 정도가 다다. 이렇게 볼때면 이륙의 설렘은 정말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과정 전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 않나.


그저 지나고 나서야 그 장면들이 빛나던 시간들이라고 회상하는게 더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결과를 통한 완결이 이루어 진 후에야, 우리는 견디며 지나보낸 시간들에서 고통을 잘 추려내고 그리움과 즐거움, 그리고 어떤 온기를 찾아내는지도.


돌아오고서 생각해봐도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지만, 혹여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짧은 즐거움 이후로 지루한 비행은 쭉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 대신, 무의미하게 지나쳐 보내곤 하는 삶의 여백들을 잘 채워나가는 법을 배우는게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영화와 기내식, 간식, 잠을 몇 번 거치는 동안 열 네시간은 지나갔다. 순식간인지 느지막하게인지도 모를 만큼. 아니, 소리소문없이 지나갔다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겠다.

내가 탄 비행기는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한 번 멈췄다. 출국 절차 다음은 입국절차. 나같은 초보 여행자에게 두 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은 재빨리 절차를 마치고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드 골 공항은 구조가 불친절하기로 유명했고, 괜히 돌아다니다 길잃은 어린양 꼴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말랐던 인터넷에 대한 욕구를 해외 유심으로 채우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가 두시간이나 연착됐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연착은 프랑스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마침내 기다리던 다음 비행기가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이 늦어진 17시에 보르도로 출발해, 19시 15분에 도착해야 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던 드골과 전혀 분위기가 달랐는데, 바로 소총과 방탄복, 방탄헬멧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난민과 이민자로 인한 테러위협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우리나라는 아직 분단국가고, 나도 군 생활을 마쳤지만 테러와는 거리가 먼 편이라 이런 생활속의 위험에 대한 감각은 어색했다. 마치 서로 으르렁대며 사이 나쁘게 지내는 이웃과,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동네에 숨어있는 강도의 차이랄까.

나에겐 후자의 익명성과 느닷없음이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북한에 대해 사람들이 지니는 심리도 비슷할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정전 중이라지만 국가대 국가로서 외교가 가능하고, 국방력에 대한 믿음이 전쟁이라는 최악의 결말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완충이 되어준다.

하지만 테러는 그 안에 법과 절차도, 인간도 없는 무자비함과 기계적인 살의가 있어서 더 두렵다. 나의 첫 도착지인 프랑스는 그렇게 설렘 대신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마지막 착륙을 해냈다. 거대한 드 골 공항은 창 밖 어디를 둘러봐도 활주로와 공항 건물들 뿐이었기에, 내가 해외의 어딘가에 있다는 실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보르도 공항은 규모도 작고, 창 밖 주차장 바로 너머로 프랑스 교외의 풍경이 작게나마 펼쳐져 있었다.

인천에서의 이륙이 마음으로 시작하는 순례길이였다면, 내 두 발로 시작하는 순례길은 바로 여기, 보르도 공항에서부터 시작되는 길.


수화물 레일에서 대륙을 넘어 날아온 7kg의 세간살이를 들쳐 업는다. 가야 할 길도 목적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900km라는 길고 긴 여정에,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저 받아들이고,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내면의 어딘가로 도달하길 바라면서 걷는게 이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2018년 6월 15일, 오후 7시 경. 

나는 프랑스의 보르도에 도착해 생에 첫 해외여행이자 순례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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