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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Apr 07. 2018

두 명의 시인

한국과 인도, 그리고 나와 우리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을 구독한 지 몇 달 정도 지난 것 같다. 그의 시를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일정한 빈도로 글을 많이 올리는 편이라 작품이나 그의 세계에 대해 쉽게 엿볼 수 있었다.

분기, 아니면 달마다 인도에 방문한다는 류 시인은, 그런 행적과 어울리게 영적인 어떠함에 강한 끌림이 있는 것 같다. 정작 인도인들은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보단 IT와 수학에 강한 스마트한 국가의 이미지를 좋아한다지만.
수많은 사두들, 그리고 인도인들의 삶 속 깊숙이 스며있는 영혼의 고향 갠지스는 아무래도 그들을 그런 이미지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힘들게 할 테다.

어쨌든, 류 시인은 그래서인지 영적인 깨달음과 명상, 삶의 번뇌를 떨쳐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댓글들도 비슷한 분위기라, 마치 조용한 법당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도 그런 삶에 대한 니즈가 있고, 나름대로 한 계단을 올라섰다 생각했기에 새로 포스팅이 올라올 때마다 장문의 글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읽는 편이었다. 마치 팍팍한 일상 속에서 내가 찾는 길을 먼저 밟아간 사람을 보듯이.

헌데 어느 날 읽게 된 김남주 시인의 시, '나는 나의 시가'는 나에게 너무도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시인으로서의 이름인지, 아이돌 누군가의 이름인지로 어렴풋이 들어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의 뜨거움은 내게 인상 깊게 남았다.

자신의 시가 호사가들의 책장에 순수의 꽃으로 장식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구절은, 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그의 세계가 어떤 형태인지 단번에 알게 해주었다.

김남주라는 시인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자 한 것이다. 억압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에. 그들을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 뜨겁고 강한 불길을.

찾아 읽지는 않더라도 여러 종류의 시를 스쳐갔던 나에게, 그의 시는 그가 속했던 뜨거움에서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불똥을 튀기고 있었다. 이렇게나 선명하게 마음을 태우는 시라니.

그렇게 류시화와 김남주, 두 사람의 시인은 내게 문학의 순수성과 사회성에 대해 두 방향의 극단을 보여줬다. 삶의 저 너머에서 인간을 부르는 시와, 삶의 최전선에서 목숨조차 사르는 불을 지르는 시로.

이렇게 영혼의 형태를 다듬는 길을 바라보면서도, 삶의 열기에 공감해버리는 것은 내가 아직 젊어 세상의 부도덕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인지.

어딘가로 도달하고자 한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어디로 가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두 시인이 말하는 삶의 모습에서, 나는 아마 류시화를 따라 걷고 있지 않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주 시인의 시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또래가 주변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깐 스친 인연이지만 그가 꾸준히 사회에 몸을 던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내가 가지 않았던, 갈 수 없었던 길에 대한 열망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와 내가 좀 더 절친한 사이였다면, 서로의 입장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의 글과 나의 글 사이에서 어떤 접점과 어떤 다름을 발견할까.

절름발이처럼 절며 내면의 구원을 찾아다니는 나의 글은, 어디 즈음을 더듬고 있을지 의문만 들뿐이다. 개인과 사회의 구원 사이에서.

나와 우리의 구원 사이에서.



나는 나의 시가


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 걸치기에 급급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가
생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순수의 꽃으로 서가에 꽂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나는 또한 바라지 않는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의 시가
한과 슬픔의 넋두리로
설움 깊은 사람 더욱 서럽게 하는 것을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미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배부른 자들의 도구가 되어 혹사당하는 이들의 손에 건네져
깊은 밤 노동의 피곤한 눈들에서 빛나기를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여 읽을 때마다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나는 또한 바라 마지않는다 나의 시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노래가 되고
캄캄한 밤의 귓가에서 밝아지기를
사이사이 이랑 사이 고랑을 타고
쟁기질하는 농부의 들녘에서 울려퍼지기를
때로는 나의 시가 탄광의 굴 속에 묻혀 있다가
때로는 나의 시가 공장의 굴뚝에 숨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이제야 굴욕의 침묵을 깨고
들고일어서는 봉기의 창 끝이 되기를.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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