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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Apr 17. 2018

밥벌이의 덫

살아가는 자체로 죄가 된다면

한국말은 고되고 힘든일에 ~질 이라는 어미를 붙인다.


그래서 숟가락질, 젓가락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내 목구멍 하나 건사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집어 입안에 집어 넣는 일 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에.


밥벌이란 그런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을 괴롭히는 것. 마치 날이 없는 장검처럼, 뽑히지 않을 사표를 품속에 지니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생 살아내고, 내 삶에 남은 것을 꼽아 보라 하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그렇게 큰 의미인 밥벌이가 덫이라 한다면, 우리는 어떤 덫에 걸리는 걸까.


충무로 근처에 사는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꼭 애완동물 거리를 지나쳐야 한다. 길 가에 촘촘히 늘어선 매장 속의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한 뼘 남짓한 칸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가끔 커다란 봉고차가 매장 앞에 세워지고, 상품이 입고되듯 차곡차곡 쌓인 이동장이 가게 안팎을 들락날락 하는 것이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애완동물 가게의 재고'가 채워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 이동장 안에 든 것들은 사실 생명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들은 카드가 긁어지는 순간에야 생명을 얻어, 재고에서 동물로 지위가 상승되는 하나의 재화가 아닌가 하고.


그런 애완동물 가게에서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너무 커버린 재고들이 어떻게 처분되는지, 나는 모른다.


그 매장의 주인들은 밥벌이의 덫 중에서도,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덫에 걸렸을까? 아니다. 그저 소중한 것이 많아지는 덫에 걸렸을 뿐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쏟을 수 있는 마음에는 정량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럴진대, 매장 4면을 가득 채우는 '재고품'들에게 쏟을 수 있는 마음은, 어떨지.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그들의 밥벌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고, 세금을 내는 이상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이쯤 되면 그들이 덫을 밟기는 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것은 내가 발견한 그들의 덫이지, 그들이 생각하는 덫과는 또다른 모습일테니.


과연 나는 어떤 덫을 밟고 있을까. 밥벌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기만하고, 소중한 가치에 등돌리고,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밥벌이의 덫이란 사실 면죄부의 덫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활을 유지하는 댓가로, 합법적인 노동을 변명삼아, 생각도 못한 어떤 가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덫.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면죄부를 발급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내 달란트는 과연 얼마나 충분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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