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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누가 신이지? 불멸자 흑화경과보고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by 랄라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_「실낙원」



“태어남 당했다”라는 말은 다른 데 아니고 바로 이럴 때 쓰는 거 아닌가 싶다.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조차 없이 성체로 시작해야 하고, 이 세상 모든 존재와 다른데 나와 비슷한 존재는 하나도 없어 작은 연대조차 불가하고, 누구에게도 환대 받은 적 없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외모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어떻게 흑화하는가.


수명이 정해진 인간이 정신승리하느라 불멸이 축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 콘텐츠는 이제 좀 지겨운데, 좀 더 기출 변형된 슬픈 동화 같은, 불멸자 흑화 경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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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적으로 필멸하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명체를 빚어 만들고 숨을 불어넣는 일 또한 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신이 인간을 만든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 생식을 통해 번식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태어난 자녀는 자기가 원하던 존재와는 사뭇 다른 존재다. 영화 속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아버지는 자신이 원했던 자녀상과 다른 빅터를 못마땅해하며 개복치 취급했고 그렇게 자란 빅터 또한 자신이 비범하게 빚어낸 피조물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빠르게 포기해버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신이 아닌 평범한(조금 비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신에게, 혹은 부모에게 태어남 당해 세상에 던져졌다. 태어났으니 살아가야지. 진격의 거인이 내내 말하고 있는 주제처럼. 뭐 어쩌겠는가? 캐치볼을 하고 나무 밑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며 순간을 살아가야지. 미워해서 무엇하겠는가? 자신을 만들어놓기만 하고 짓밟힌 삶을 살도록 방치한 아버지, 일생 복수할 생각만 품고 좇아왔건만 와서 보니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애처로운 필멸자인데. 당신은 죽고 나는 영원히 살아남는다. 자 이제 누가 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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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완벽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않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설계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도 과거도 용서하고 부서진 마음을 껴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건 단순히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삶에서 겪는 고통이 나를 세상에 내던진 창조자 때문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답은 나도 창조자도 영원히 알 수 없으며 태어난 의미를 알고 살지 않아도 괜찮다.


내 창조자가 나를 세상에 투척해 놓고 깜빡 잊어버린 채 살고 있더라도, 바쁜 창조자에게 나한테만 비대한 내 자아를 들이밀며 따질 궁리하지 말고, 그냥 저 멀리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길에 핀 꽃과 나무를 즐기며 가라는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보다 더 처연하고 고전적이고 우아하다. 빼야 할 인물과 들어갈 인물의 설정, 적절한 포지션 변경 등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고 결과도 효율적이다. 원작 소설이 너무 옛날 작품이라 감안해야겠지만 현대의 눈으로 보기에는 영화가 훨씬 슬프고 문학적이다.


물론 여전히 나에게... 기예르모 델 토로의 마스터피스는 <판의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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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괴물/요괴/요정/비스트 계에는 사람으로 변했을 때보다 크리처일 때가 나은 3대 괴수가 있다. 그건..

1. 괴물일 때가 훨씬 아름다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엘로디쿤

2. 미녀와 야수 실사의 야수

3. 은근 쌩얼본체랑 분장이랑 차이 많이 나는 레골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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