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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Feb 20. 2017

<문라이트 Moonlight>

우리네 삶의 리듬을 달빛처럼 비춘다.

흑인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영화 <문라이트>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이다. 제74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제51회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 감독상 등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시상식에서 무려 157관왕을 했다. 앞으로 있을 시상식에서도 상을 탈 가능성은 매우 높다. 2월 26일에 예정된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중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에서 영화 <라라랜드>와 경합이 예상되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영화가 작품상 혹은 감독상을 수상한다면, 이는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난을 받아왔고,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 영화의 승리는 과거의 수상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문라이트> 후안 역을 맡은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조심스럽게 점쳐보겠다.

이 영화에는 대단히 굴곡진 구성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없다.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따라간다. 이 아이와 함께 어린아이에서 소년, 그리고 청년이 되는 경험을 한다면 이 영화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영화 <문라이트>는 총 세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전체가 한 편의 시(詩)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연은 유년기를 그린 ‘리틀’, 두 번째 연은 청소년 ‘샤이론’, 세 번째 연은 청년이 된 ‘블랙’이다. 각 시기를 거치며 샤이론이라는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마주치며 어떤 영향을 받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연, ‘리틀’은 샤이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연이자, 작고 힘없어 보이는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을 주변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리틀은 왜소한 체격 탓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어느 날 친구들을 피해 숨어 들어간 장소에서 우연히 후안(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을 만난다.


달빛이 비치면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여


후안은 리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안은 어린 시절 달빛(문라이트)이 비추는 날이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빛을 잡으려 뛰어다녔다. 그때 후안을 본 후안의 할머니는 ‘달빛이 비치면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여’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서 그 말은 한 두 가지의 특징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어떤 조명으로 비추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 조명에 의해서 우리는 규정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정체성에 대한 규정은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런데 누군가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후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리틀에게 말한다.


때가 되면
스스로 뭐가 될지 정해야 해.
그 결정을 다른 사람이
할 수는 없어.


두 번째 연, ‘샤이론’ 은 고등학생이 된 샤이론(에쉬튼 샌더스)이 등장한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케빈(안드레 홀랜드)에게 우정을 넘어선 감정까지 느낀다. 달빛을 잡으러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후안처럼 샤이론은 푸르른 달빛 아래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발견한다.


샤이론을 통해 사회의 소수자들이 느끼는 ‘소외’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소외’라는 상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소외는 개인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지 못하거나 거리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공부를 못하는 친구는‘소외’된다. 스펙을 높이 쌓은 자들이 원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취업시장의 구조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이력서를 갖고 있지 않은 친구들은 ‘소외’를 경험한다.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사회변동에 발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소외’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와의 가치 갈등은 끊임없이 ‘소외된 사람’을 만들어낸다. 샤이론이 느끼는 ‘소외’는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소외’를 비추며 뒤흔든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라이브톡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삶 전체를 뒤흔든 순간에 관한 영화


세 번째 연, ‘블랙’은 성인이 된 샤이론(트레반테 로데스)을 말다. 케빈은 샤이론을 언제나 ‘블랙’이라고 불렀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했던 샤이론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싫었다. 그러던 그가 다시 블랙으로 불리길 바랬던 것일까.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샤이론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다. ‘리틀’일때 겪었던 후안의 죽음, ‘샤이론’일때 겪은 케빈과의 갈등은 그의 정체성이 숨어 지내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드러냈던 순간인 케빈 앞에서 ‘블랙’이었던 때로 돌아가고자 한다. 청소년 시절 달빛 아래 케빈과 해변가에 앉아있던 그 블랙 말이다. 그는 달빛을 쫓아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그 달빛 아래로. 케빈과의 만남 끝에 영화는 다시 ‘리틀’이 달빛 해변가에 서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바닷가에서 리틀은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며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지금 세상 한가운데 있는 거야


한 편의 시(詩)처럼 세 개의 연을 통해 리틀은 샤이론으로 성장했고, 샤이론은 블랙이 되었다. 그가 보여준 성장의 리듬은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템포를 같이 한다. 우리는 한 가지의 특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다층적 인간이며, 언제나 ‘소외’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는 영화는 우리네 삶을 곱씹어보게 한다. 그러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한 배리 젠킨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공감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남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제목 사진 출처 :http://junkee.com/, 나머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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