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림뉴웨이브 국악 독주회 : 독파(獨波)
서양음악의 역사는 작곡가의 역사, 한국음악의 역사는 연주자의 역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곽재혁의 피리 공연은 피리라는 악기뿐 아니라, 곽재혁이라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연주 사이사이에 진행되는 토크쇼에서의 그의 답변이 뇌리에 남아 더욱 그런 듯했다.
“당신에게 피리란 무엇인가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MBTI가 ISFP로 추정되는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밥벌이. 그리고 아주 휴대성이 강한 악기입니다.
물론 관객을 웃기려 한 답변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그의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답변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의 태도가 피리 연주에 담겨있고, 피리와 닮아 있는 그가 자연히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 중에 ‘피리’가 있다. 처음에는 개념을 잘 몰라, ‘피리’하면 어떤 악기를 지칭하는지 몰랐다. 팸플릿에 실린 사진 속 곽재혁 연주자가 들고 있는 악기는 분명 ‘태평소’ 같은데… 태평소도 ‘피리’에 포함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곽재혁은 피리 연주자임과 동시에 태평소 연주자이기도 했다. 다만 대중들의 눈에는 ‘피리’라는 악기보다 ‘태평소’라는 악기가 더 익숙했고, 포스터에도 자연히 태평소를 든 곽재혁의 모습이 실린 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나라 악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뭐, 이미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한국신화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많이 읽고, 국악보다는 클래식이 더 익숙하며, 세계사 하면 동양사보다는 서양사가 더 익숙하니 놀라울 일도 아니다. (추후에 수림뉴웨이브 시리즈 공연을 더 관람하고 나서, ‘우리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질적이지만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번에 관람한 공연은 수림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공연제로, 국악 연주자 20인의 독주회의 무대 중 하반기 첫 번째 공연이었다. 이번 시즌의 주제어는 ‘독파(獨波)’로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반에 진행되는데, 거문고, 대금, 판소리, 아쟁, 민요, 정가, 양금, 타악 등 다양한 독주회가 준비되어 있다. 정가나 양금 등 솔직히 처음 들어본 장르도 있어서 국악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나 싶었다. 오케스트라 구성은 꿰고 있는데.... 국악에 대한 대중의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긴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연 제목에서는 국악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러 '국악'이라는 단어의 무거운 느낌을 빼고자 의도적으로 지은 것 같지만, 타이틀이 길어 어떤 공연인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필자는 수림문화재단의 에디터로 공연을 관람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에는 검색하기가 힘들 것 같다.
김희수 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수림뉴웨이브 시리즈 '독파(獨波)' 중, 곽재혁 피리 연주자의 ‘변명(變名)’.
그러나 공연을 관람하면 알겠지만, 기획면에서나 구성면에서도 공연은 꽤 담백하고 퀄리티가 좋다. 수림뉴웨이브 시리즈는 사실상 몇 년 동안 진행되었던 터라, 그동안의 인사이트가 꽤 쌓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MC, 말 거는 사람이 나와 토크쇼를 진행하는데 확실히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공연 프로그램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1. 태어난 소리 *초연
2. 수연장지곡
3. 상령산풀이
4. 太平小 굿 *초연
1번에서 3번까지는 피리 공연이었고 4번은 특수 타악기 김성훈 연주자와의 출연으로 태평소 곡으로 연주되었다. 1번 곡은 인트로였고, 점점 고조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공연 특성상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서가 아닌, 자연적으로 음향이 전달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마당에서 듣는 듯한, 살아보지도 못한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앞서 말했듯이, ‘피리’에 대한 개념이 필자 머릿속에서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첫 번째 곡 ‘태어난 소리’ 덕분에 '피리'라는 악기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본래 소리는 진동을 통해 전달된다. 곽재혁은 여러 개의 피리를 굴려, 나무소리를 냈다. 도르륵 도르륵. 적막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노이즈에 가까운 소리는 피리가 자연히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고, 또 음악이 되기 이전의 날 것의 재료인 연주자의 들숨, 날숨 소리는 자연히 음악이 무엇인지까지 질문을 던지게 했다.
백 마디 설명보다 확실히 더 좋았다.
국악이 생소한 관객을 위해, 악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면 어땠을까 하는 초반의 아쉬움은 사르르 사라졌다.
사실 ‘피리’라는 악기는 처음 봤는데, 얇디얇은 나무에 숨이 들어가 생생한 음정이 꽤 큰 음량으로 들린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태평소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마치 나그네가 잎으로 피리 부는 장면처럼 피리소리가 필자의 상상력을 더 자극했다.
되게 묘한 악기였다. 연주자의 답변처럼 휴대성이 강해 언제 어디서든 불 수 있으면서도, 연주자가 어떻게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어떤 숨을 불어넣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소리가 나는, 다른 악기에 비해서 인간의 지분이 많은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과 닮아 있는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곽재혁 연주자가 피리를 ‘밥벌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술이라 하면 특별하고,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피리는 그에게 밥벌이이고, 그에게 삶을 현실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퇴직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오히려 전문직에 가까운 소중한 밥벌이일 터이다.
그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또 청개구리 같은 답변을 한다. 꿈은 항상 변하지만, 지금 당장의 꿈은 눈앞의 무대를 실수 없이 끝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수 안 하실 것 같은데요?라는 반문에 그는 만약 실수를 한다면, 이번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라고 답하며 상황에 맞는 유연한 답변을 내놓는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불 수 있는 피리 같은 매력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피리의 포터블(Portable)함처럼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그의 삶의 태도가 그의 연주에 반영되는 게 아닐까. 공연 제목이었던 ‘변명(變明)-이름을 변경하다’의 이유도 그가 음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다양한 이름이 있어서라고 한다.
누군가의 아들, 친구, 학생과 선생, 관객 또는 공연자로….
곽재혁은 예술가이지만 단지 직업일 뿐, 그도 역시 뭇 많은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삶을 살아왔을 따름이다. 예술=삶이라고 치환해 보면, 그가 예술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다양한 이름에 따른 책임이 부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연은 매주 목요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고, 네이버예약을 통해서 예약가능하다.
*수림아트에디터 수퍼(SOOP-er) 2기
*본 리뷰는 수림문화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