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리빛 피부 인간2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 망망대해를 헤매던 시절의 이야기는 차후로 미룰 것이다. 대신, 내가 이 영토에 발을 디뎠던 순간. 영원히 이방인이 되어 살아갈 줄 알았던 내가 실은 평생을 이방인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 그 시간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자 한다.
태초부터 있었던 땅. 예로부터 교류의 장이었던 이 땅 “세모”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마치 거점과 같은 곳이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은 몇 군 있지만 세모는 꽤 오래된 뿌리가 있는 땅이다. 신식 거점에 비해서는 활기는 덜하지만, 단단한 뿌리가 주는 안정감이 있는 곳이다.
평생을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지냈던 나는 땅 위를 좋아하지 않았다. 락다운 (일정한 시간 동안 각 땅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부로의 문을 닫는 시기) 기간에는 바다 위에서 지내고 재정비를 하기 위해 여러 땅을 디뎠지만, 세모에서 나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이방인이든 상관없었다. 땅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날 여행자였다. 이방인에게 보이는 반응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거부와 환대. 혹은 무관심. 오히려 나는 그래서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어디에도 엮이지 않아, 내가 나일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그러나 세모에서 나는 난생처음 ‘이방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공동체에서 길러진 내가 무리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나는 고향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어릴 적부터 내 시선은 항상 고향 너머를 향해 있었고, 또래 친구들은 자기만의 무리를 만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무리를 벗어나자마자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섦에 대한 환상과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영웅 심리에 의해 무작정 떠났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돌아가 수는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져 왔고, 바다를 건넌 이상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고향에서의 피부와 지금의 내 피부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모”는 사실 갖가지 이방인 투성이인 곳이다.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자처하는 존재들, 혹은 실제 이방인일 수도 있는 존재들, 혹은 새로움을 향한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온 개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세모는 오래된 땅이었으나, 오래된 곳이었기에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기 오게 된 것도 몇 년 만이었다. 락다운 기간에는 유독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소 오래 머물며 정비를 할 계획이었다.
여느 시절과 같은 때였다. 그러던 중, A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방인에게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 종류다. 거부 혹은 환대. 그러나 그는 나에게 묘하게 거부와 환대를 동시에 띄는 듯했다. 그의 고향은 여기서 수천 km 떨어진 여기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된 땅이라 했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긴 시간 락다운되는 탓에, A의 고향은 세상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곳이었다.
동시에 나의 흥미가 일었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이방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떤 특별한 재미를 위해, 그리고 더 크게 보면 이득을 위해 '척'했던 것이었다. A는 이 땅에 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가 하는 일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구시가지에 자리한 오래된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이방인 답지 않게 이 땅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여기 머물면서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자, 그 또한 나처럼 살고 싶어서 자신의 땅을 떠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땅으로 건너오면서 만난 바다는 그의 생각과 다르게 거칠었고 다시금 바다로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의 구리빛 피부를 부러워했고, 수많은 존재가 이 땅을 오가지만 당신과 같은 부류의 존재는 흔치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와 나는 꽤 자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게 이 땅에서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전환점이 발생하였다.
A에게 동반자가 생긴 것이었다.개척자. 그는 다양한 의미로 그를 흔들어놓았다.A는 개척자를 만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재미를 알고,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며 긍정적으로 만났고, 실제로 그에게도 어떤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알던 A가 아닌 새로운 A가 되어갔고, 불안조차 그의 긍정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바다 위에서의 생존비법을 전수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개척자인 그가 A를 그런 상태로 과연 바다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되려 나는 바다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던 탓에 기억을 복기하는 차원에서 비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는 흡수가 빨랐다. 처음 만났던 모습과 다르게 A는 나와 함께 햇살을 맞으며, 점점 구리빛 피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는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모든 준비를 마친 A를 항구에서 곧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불안한 것치고는 A의 동반자인 개척자는 냉정할 정도로 담담했다. 언제든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거라며, 2년 동안 당신을 믿는다며 곧 만나자며 강건하게 말했다.
결국 A는 항구를 떠났고. 불안함은 곧 사실이 되었다. 나는 A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땅 위에서의 햇살과 바다 위에서의 햇살은 엄연히 달랐다. 그의 구리빛 피부는 분명 햇살 아래 단련되었음을 증명해 주지만, 망망대해 위에서의 햇살은 자칫하면 독이 되었다. 그 독을 유연하게 다루는 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로 떠나가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이 땅 가장자리에 바운더리가 쳐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 처음 락다운 기간 중 땅 위에 있었다. 내 인생의 나름의 새로운 챕터라 여겼지만, 그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난생처음 느껴본 타인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또 이 감정과 생각이 나를 어떤 식으로 단련시킬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생각했다. A야말로 진정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바다를 두려워하면서도 나아갔다. 과연 바다를 다녀온 그가 어떻게 변할지. 그도 나처럼 이방인이었던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인지. 혹은 그의 동반자처럼 개척자가 되어 올 것인지는 혹은 어떤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칼럼] 구리빛 피부 인간’ 시리즈는 비정기적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