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림뉴웨이브 국악독주회 : 김화복 <현금현금>
오늘은 좀 비장하게 자리 선정을 해보았다. 수림뉴웨이브 두 번째 거문고 공연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악기를 조금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에 연주자 가장 우측 맨 앞줄에 앉았다. 덕분에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의 주인공 김화복 연주자 분이 무척이나 긴장을 한 듯 보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국악 독주회에다가 자연음향으로 공연장을 꽉 채운다는 게 퍼포머에게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특히 ‘거문고’라는 악기는 마치 비올라와 같아 독주하기는 쉽지 않은 포지션이기도 하고, 수많은 청중들이 ‘당신의 연주를 들어보겠노라’하고 앉아있으니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하, 나에게도 거문고는 너무 어렵다. 가까이서 보니 매우 느슨한 줄을 막 손으로 땡겼다 밀쳤다 하는데 저기서 도대체 어떻게 소리가 나는고? 또 ‘술대’라는 것은 가야금, 아쟁과는 다르게 어떤 역할과 매력을 지니는지, 그 조그만 녀석이 거문고의 정체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박우재 연주자처럼 거문고를 술대가 아닌 활로 그으면 거문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릴 적 우리는 서양악기를 배울 기회는 많았다. 태권도 하는 것처럼 또래 아이들은 피아노나 플롯, 바이올린 등 악기 하나씩을 필수 교양처럼 했었다. 물론 나는 운이 좋게도 장구까지는 했던 것 같다. 다른 언니가 하는 가야금도 눈길이 갔지만 언감생심이었다. 거문고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판타지가 점점 쌓였던 것 같다. 저 어디 사랑방 넘어 시조를 읊으며 뜯고 있을 것 같은 기품 있는 악기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기품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현금현금現今玄琴>. ‘지금의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뜻으로 김화복 연주자가 행하는 모든 예술 활동의 모토이기도 하다. 김화복은 다음 네 곡을 차례로 연주했다.
1. 하현도드리
2. 령초 - 작곡 : 김화복
3. 9 to 5 - 작곡 : 이경은/ 타악 : 최영진
4. 현금현금 with 가야금 - 편곡 : 김화복 / 가야금 : 김혜림 / 타악 : 최영진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다. 연주자 분이 긴장한 탓인지, 내가 맨 앞줄에 앉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르게 감정적인 부분을 잘 전달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정이 다가 아니고, 기술이 받쳐줘야 하는 일이지만 국악 특유의 그 여백이 ‘여백’이 아닌 ‘공백’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세 번째 곡부터는 타악 연주자(최영진)와 함께 했는데, 그즈음부터는 다행히 마음이 좀 편해지신 것 같았다. 또한 수림뉴웨이브 특성상 토크쇼도 곁들이는데, MC인 ‘말 거는 사람’ 분도 약간은 긴장은 하신 것 같아서 묘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수림뉴웨이브 관람은 김화복 공연이 네 번째였는데, '말 거는 사람'이 매번 바뀌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편차도 크다. 특히 '질문'이 다소 전형적인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들 가슴 깊이 궁금한 것은 우리 관객도 궁금하다는 사실을 열렬히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 곡 ‘현금현금’은 가야금, 타악기와 함께한 다채로운 곡이었다. 가야금, 장구와 함께하는 제대로 된 거문고 산조는 처음이라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다. 곡을 연주하기 전 즉흥곡이라 연주자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셔서(?) 약간은 걱정했는데, 무사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확실히 호흡을 오래 맞춰본 곡 같았다. 관중석에서도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거문고는 확실히 이상한 매력이 있는 악기이다. 늘어질 듯 늘어지지 않는 선율, 가끔씩 탁탁 때리는 묵직한 한 방. 높은 음과 낮은 음에서의 다른 음색, 그리고 음량 폭도 큰 것 같다. 은근 다양한 면에서 변화무궁한 매력이 있다. 마치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은근 장꾸미 있는 큰아버지를 닮았달까?
수림뉴웨이브를 통해서 국악을 입문했다. 장르적으로 확실히 특색 있다. 하지만 국악을 오래 연구하고 공부한 연주자들에게는 '현대성'이 또 고민인 듯하다. 사실 연주자에게는 음악은 도구일 뿐, 결과물이 국악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음악이 이 시대에 맞느냐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는 것 같다. 자신이 잘하고 고민하는 바가 시대랑 딱 맞으면 모르겠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은 기획자, 매개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고유함을 잘 발현하고 나아갈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한편,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단순히 '현대성'이 아닌 현시대를 구성하는 한 퍼즐조각에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를 읽어내는 문제이다. 누구나 예술을 하는 시대가 올 텐데, 그러면 그때에 예술의 진정성을 잘 따지는 것도 기획자, 매개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편으로 예술을 하는 창작자이기도 해야 하며 또 한편 관객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수림뉴웨이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실험들이 앞으로의 수림문화재단의 행보에 더욱굳건함을 다져주는 일이라 확신하며 글을 마친다.
*수림아트에디터 수퍼(SOOP-er) 2기
*본 리뷰는 수림문화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