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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얗고 까만 토끼 Jul 17. 2024

나의 자녀 교육

미혼 수의사가 겪은 자녀 교육, 계획하는 자녀 교육

나는 수도권 최대 규모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 오빠는 NASA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몇 년 전 만 33살의 나이로 교수로 임용되었다. 대치동 저리 가라 하는 대구광역시 교육 1번지, 수성구에서 살았던 우리는 엄청난 치맛바람으로 완성된 결과물 같지만, 부모님은 우리 남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없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직감을 형성한 몇 가지 사실들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우선, 아빠 가족들에게도, 엄마 가족들에게도 오빠와 나는 어나더 레벨이어야 했다. 아빠는 8남매 중 아주 귀한 막내아들이다. 할머니가 땅도 팔고 다른 자식들 몰래 자신의 금비녀까지 팔아가며 뒷바라지한 덕에 대학 교수가 되었다. 대단한 대학은 아니지만 교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과거 골목대장은 계속해서 대장의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엄마 역시 8남매 중 귀한 막내딸이다. 그런데 여기는 조금 결이 다르다. 엄마는 일명 봉남면 잔다르크로, 아기 티를 못 벗은 중학생이 좋은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나 홀로 자취생활을 했다고 한다.  환영받지 못한 막내딸의 공부였지만, 선생님을 동경하던 중학생은 결국 혼자 힘으로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게 집안에서 한가닥씩 하던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생겼다. 이들의 자녀는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보는 온 가족의 기대 어린 눈빛이 오빠와 나는 익숙했다.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두 번째, 수학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우리가 태어나고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꽤나 유명해져서 산책을 나가면 엄마를 학부모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어디를 가도 우리의 이름보다는 원장 선생님 딸, 아들로 불리던 우리는 공부를 못할 수 없었다. 게다가 참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학원 선생님이었지만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나는 그 제자들에게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기는 게 너무 싫었다. 특히 김지수! 아직도 종종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 과학고 간 김지수가 시험을 잘 봤다고 연락 오면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나는 김지수보다 공부를 잘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빠의 유행어 “네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이다. 공부하다 괜히 공부가 잘 안 되거나 성적이 떨어져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 아빠는 한 마디씩 하셨다. 그렇게 짜증 낼 거면 공부하지 마! 누가 공부하라고 했어? “네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 나는 그놈의 ’ 알아서 해 ‘가 너무 싫었다. 괜히 알아서 잘못했다가는 그냥 out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면 잔소리한다고 짜증이라도 낼 수 있는데 이건 뭐 짜증을 낼 거리조차 없다. 학원 보내 달라면 학원 보내 줘, 성적 떨어졌다고 스트레스받으면 일반 직장인의 월급 수준인 고액과외도 시켜줘, 시험 기간이면 딸의 부탁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옆을 지켜줘,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도 운전기사 역할도 하는 부모님을 두고 공부를 잘 못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밖에 공부를 못한 게 부끄러웠다. 오빠와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날 수 없는 자녀가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자라온 나는 부모의 기대에 어긋날 수 있는 자녀를 키우고 싶다. 우리가 받은 과도한 기대와 무언의 압박은 우리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지만, 나는 미래의 내 자녀들이 부모의 기대에 한정되지 않고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라기를 희망한다. 내 자녀가 모두에게 낯선 길이라도 가볼 수 있고, 그 길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든든함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 부모로서 나는 내가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더 존중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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