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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솔 Oct 25. 2023

가을 숲에서

만추의 끝자락 초겨울로 들어서는 11월의 숲길을 걷는다. 적요寂寥의 숲길, 바래지는 풀숲에 핀 보랏빛 들국화는 향기를 더하고 파란 물감을 쏟아부은 하늘에 비행운의 직선이 차갑게 흐른다. 

수런수런 한 줄기 바람이 인다. 바람은 아직 화장을 지우지 못한 이파리를 떨구고 나무들 사이를 거쳐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가을 사랑을 데리고 날아간다.

문득 지금 걷는 이 길은 언제부터 생겼는지 의문이 떠오른다. 문명이 발달 전에는 동물의 길로 오솔길로, 지금은 둘레길로 인위적으로 생기고 넓어졌을 것이다. 

이 숲길을 걸어보면 계절별로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진달래 피고 진종일 뻐꾸기 울어 나무에 물오르는 봄의 길은 부드러운 푸석거림속에 대지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여름의 숲길은 푸르고 젊은 낭만과 열정 새들의 날개짓 소리가 힘찬 성장이, 겨울의 숲길은 곤한 잠 속에 다음을 준비하는 침묵을 적시게 한다. 그리고 이즈음의 숲은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에 걸어온 흔적을 되새기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 사색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움을 준비하고 당부하는 자신만의 시간이다.

겨울 초입 숲길에 서서 올 한 해를 걸으며 성숙했을 것이라 자부하지만 마음 안팍이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가졌는지, 미워하며 원망하는 질투와 시기의 마음을 많이 가졌는지 걸음을 멈추어 본다.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을 알려지는 정치인의 비도덕적언행과 타인존중의 부재, 정직하면 손해본다는 지금의 시대상이 얼음왕국에 서 있는 기분이다. 자신 또한 마음속에는 포옹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마음보다는 비판하고 책망하는 마음이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많으니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자꾸만 움츠려드는 마음에 나뭇가지를 비접고 쏟아지는 감빛햇살에 오점을 남긴 일들에 청옥같은 눈물이 파란 하늘을 이지러지게한다. 우리 마음은 물론 내 마음에도 언제부터 이렇게 차가운 안개가 강을 이루고 있었는지 흐느끼며 모난 생각의 징검다리를 다듬어 사랑으로 걷어내어 소중한 본성으로 서고 싶다. 가을 숲길은 이런 회한과 더불어 사랑의 소중함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사랑에 참 인색하다. 사랑이라는 분위기가 우리 삶에 일상화된 것은 얼마나 되었을까? 경쟁에서 이기고 더 좋은 직장과 부를 추구하며 남보다 더 편하게 살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선한 마음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비교의 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불공정과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세상 전체인 양 색칠하고 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재생산한다. 그러니 마음은 더 푸석거린다. 정말 사랑이 결핍된 세상이다. 

다시 늦가을과 마주한다. 숲길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가져온 보온병의 커피를 따른다. 눈과 귀를 닫으니 마음의 평화가 온다. 진한 커피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가는지도 모르는 세월 앞에서 노을 한 자락에도 추억이 숨을 쉬는 가을 마음이 된다. 나 혼자 붉어지고 꽃이지고 사랑이 온 마음을 채우고 다시 빈 배가 된다.

우리 삶은 나를 깎아 내야 올바른 삶을 찾고 닳아져야 행복을 준다. 남의 생각을 바꾸려 말고 먼저 자기 생각을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바꾸면 된다. 삶의 변곡점은 언제나 사랑에서 비롯된다

좋은 생각을 하면 어긋난 일 없고, 좋은 말을 하면 다툴 일 없고, 겸손하게 행동하면 비난받을 일 없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면 마음 상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사랑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마음이라는 화분에서 진실이라는 물을 먹고 조금씩 더딘 시간속에서 어린 싹을 올리고 잎을 피우며 아름다운 꽃이 된다.

자신을 성찰하고 남을 나보다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배려할 때 살고 싶은 세상이 된다. 헐뜯고 시기하는 질투보다 양보하며 신뢰하는 한 걸음의 사랑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지난 삶을 불러들여 용서를 구하고 마음속 앙금을 훌훌 털어 내며 걷는 참회 길을 갈 수 있다면 이 늦가을은 사랑의 행복으로 넘치지 않을까?

 가을 숲길을 벗어나 주름처럼 겹쳐 휘어진 들녘을 본다. 밭 언덕 은빛 억새는 살랑이며 사랑의 소중함을 풀어 놓는다. 텅 빈 들엔 마늘이 자라고 김장을 준비하는 채전菜田엔 탐스러운 푸른 색이 생을 사랑을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해질녁 노을은 산등성이에 불고 소리없이 눈물로 흐르고 산 그림자 그리워 속으로 운다. 

욕심을 비우면 별빛이 반짝이고 미움을 버리면 미소가 따뜻하게 손을 내민다. 창친 한마디가 아이의 삶을 바꾼다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곱고 착하면 얼마나 살기가 좋으며 행복할까? 이제 우리도 사랑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내 마음의 한 귀퉁이라도 사랑으로 내어 주면 어떨까? 사랑은 하늘이 내려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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