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1부.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뒤집기도 못하는 백일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한다는 말에 주변에서 모두 말을 보탰다. 바로 얼마 전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어린이집 선생님의 아동 폭행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나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명으로 어린이집 대기를 걸고 순서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200등이 넘던 대기순위는 사건의 영향으로 갑자기 1등이 되었고 대기를 걸어둔 모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규모가 작지만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해 온 아파트 1층에 자리 잡은 가정 어린이집으로 선택했다. 아이를 돌봐주실 담임 선생님의 성함이 나와 같다는 것이 괜히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매일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등원했다던가, 너무나 적응을 잘해 걱정이 없다던가 하는 말은 양가 부모님들께 주로 하는 거짓말이었다. 서너 시가 지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원해서 일곱 시까지 아이가 혼자 있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나 오늘은 아이가 등원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남편 외에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는 순간, 내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것보다는 그러게 왜 일찍 어린이집을 보냈냐는 말이 먼저 나올게 뻔했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일찍 하원시키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더 오래 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가 저녁까지 혼자 있다는 말을 하면서 더 일찍 데려갈 수는 없냐고 다른 집은 도우미를 쓴다고 친히 알려주는 선생님을 탓할 것인가, 아이를 봐줄 수 없는 나의 부모님들에게 화살을 돌릴 것인가. 결국은 내 문제이고, 우리 가족의 문제일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내 사정만 특별히 힘들지는 않다. 휴직을 하고 아이 옆에 하루 종일 있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기만 할 것도 아니고,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불편하기만 할 것도 아니다. 머리로는 다 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해주었다. 엄마가 회사에서 새로운 팀을 꾸렸다거나, 회사를 그만두면 수입이 줄어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하고, 장난감 사주는 것도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거나, 엄마가 하는 일은 트렌드가 중요해서 중간에 쉬면 다시 일하기가 힘들다던가 하는 내용이었다.
아이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아이가 나에게 서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어쩌면 세뇌가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가 회사에 가지 말라고 떼를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떼를 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젓하게 구는 아이에게 더 미안했다.
가장 먼저 등원하고 가장 늦게 하원하는 생활은 아이도 나도 힘이 들었다. 매일 매 순간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 또 힘을 썼다. 아침에 깨울 때는 2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천천히 안아주고 뽀뽀하며 깨웠다. 아침에 나눈 좋은 기분으로 아이도 나도 하루 종일 잘 버틸 수 있길 바랐다. 1살부터 시작된 우리를 위한 아침 습관은 이제 나에게는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아침에 30분 일찍 집에서 나가 놀다가 등원하기도 하고, 저녁시간에는 이미 회사에서 소진된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려 ‘이제부터 시작이다’하는 마음으로 저녁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겠는가. 더 집중적으로 놀기 위해 때로는 저녁으로 김밥이나 빵을 입에 쑤셔 넣으며 놀이터를 뛰어다니거나, 이미 꽤 많이 자란 아이를 괜히 업고 집을 오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심각한 오르막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만큼 주어진 시간은 더 꽉꽉 채우려고 애썼다.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같이 꽂힌다.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아이의 말은 좋은 의도이건 나쁜 의도이건 할 것 없이 나에게 죄책감으로 자리 잡았다. 엄마가 일해서 좋다고 말해도, 안 좋다고 말해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고 숨어있는 뜻이 있지는 않을까 자꾸만 찾아보려 했다. 죄책감은 아이가 준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않는 내가 원인이었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은 늘 불안했다.
5살 아이는 엄마가 하루 종일 옆에 있으면 좋겠단다. 어린이집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안고 있고 싶단다.
6살에는 엄마가 회사에 다니는 게 멋있어서 좋단다. 팀장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는데, 옆에 있는 친구는 아빠가 사장이라고 속상해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뭐가 더 높은 건지 물어보았다. 한참 웃었다.
7살에는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오란다. 회사에서 승진하면 돈을 더 주냐고 묻는다. 승진하면 일도 늘어난다고 하자 일은 더 하지 말고 돈은 더 벌어오면 좋겠다고 한다. 여행도 장난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8살에는 엄마 마음대로 하란다.
9살에는 그냥 텐트 치고 길바닥에 살아도 되니 회사를 그만둘 수 없겠냐고 한다. 눈물이 많이 났다.
10살에는 집 앞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가서 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단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딱 맞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내가 회사 생활에 지치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와 아이가 그만두라고 하는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티를 안 내려 노력해도 아이는 엄마의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게 분명하다. 아, 또 미안해진다.
어찌 되었던 아이가 바라는 대로, 사실은 나도 바라던 대로 퇴사를 했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는 후회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것은 아이의 여유롭고 평온한 일상이 말해주기에. 솔직히 나의 목소리 톤도 더 밝아졌고 둘의 대화거리는 더 늘었다. 안 그래도 예쁜 아이가 요즘은 더 예뻐 보인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혹시 이번에 여행 가면 이제 우리 여행 못 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이제 돈 없을까 봐. 여행 다녀오면 돈 없을 것 같아서.”
퇴직금도 있고 그동안 모아둔 것도 있어서 몇 달 동안 일하지 않아도 괜찮고, 여행도 또 갈 수 있다고 하니 걱정스럽던 아이의 표정이 스르르 풀린다.
“그러면 일단 11월까지는 일하러 가지 마. 11월에 게임 업데이트가 있는데 엄마랑 같이 해야 하니까.”
아이에게 내가 필요한 건지 게임친구가 필요한 건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지만, 나와의 소소한 일상이 아이에게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식탁에 마주 앉아 아이에게 다섯 살의 네가, 여섯 살 일곱 살의 네가 엄마에게 뭐라고 했었는지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고는 싱긋 웃으며 “내가 이렇게 말했었어?” 한다. 그러고는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다며 말을 잇는다.
“지금처럼 지내는 거 딱 좋아. 엄마가 같이 있으니까 좋고. 근데 재산이 유지는 되어야 하니까 엄마도 다시 일하러 가야겠지. 요즘 세상에는 돈이 중요해. 엄마.”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우리 집의 재산과 요즘 세상을 입에 올리는 아이를 보니 험한 세상에 내놓아도 나보다 더 잘 살겠다 싶어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