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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Apr 18. 2017

'벨'은 페미니스트일까?

 <미녀와 야수>가 판타지인 이유에 대하여

199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볼 때 11살이었다. 어린 소녀가 보았던 만화 영화는 '아름답고 착한 벨이 거칠고 사나운 야수를 왕자로 변화시켜 사랑을 완성한다'는 이야기로 집약되어 뇌리에 남았다. 당시엔 벨이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선한 벨은 아버지를 대신해 감옥에 갇히고, 탈출 중 곤경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야수와 함께 성으로 돌아간다. 애니메이션에선 그런 벨의 행동이 용감한 선택이라기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덕목인 '희생' 쯤으로 묘사되었던 것 같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론 그랬다.


16년 후 각색된 실사 영화 2017년판 <미녀와 야수>는 결이 조금 달랐다. UN의 페미니즘 캠페인 'He for She' 연설뿐만 아니라 평소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진 엠마 왓슨이 주인공을 맡았고, 벨을 진취적인 여성으로 묘사하고자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가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서 얼마나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려낼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엠마 왓슨은 그런 우려를 뒤로 하고 벨을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영화 <미녀와 야수>(2017)


사실 알고 보면 <미녀와 야수>는 페미니즘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원작인 1740년 가브리엘 수잔 바르도 드 빌뇌브의 소설, 1756년 그 이야기를 요약 각색해 가장 유명한 버전인 잔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의 동명 소설에서도 기본적인 이야기의 줄기가 그렇다고 한다. 원작에서도 벨은 독서를 즐겨하는 지적인 인물로 설정됐다. 원작 소설의 작가 또한 여성이다. 소설은 부모에 의해 얼굴도 몰라 야수처럼 여겨지는 남성과 결혼해야 하는 여성의 삶과 당대 풍습을 그렸다고도 평가된다. 당시 이런 설정은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야기를 표현하는 미묘한 기법의 차이가 벨의 여성상에 온도차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영화를 본 후 1991년판 디즈니 원작을 다시 찾아봤는데, 그런 미묘한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예컨대 개스톤이 벨과의 결혼을 상상하며 "내가 잡아온 고기를 굽고 나의 발을 마사지하는 귀여운 아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개스톤이 이런 판타지를 친구 르푸에게만 이야기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벨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한다. 애니메이션 속 벨은 개스톤의 이 무례한 이야기에 미소만 지으며 점잖게 무시한다. 만약 영화에서도 벨이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왜 당신의 발을 주물러야 하죠?"라고 따끔하게 지적해주지 않았을까?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1991)


물론 설정의 한계는 있다. 벨이 마을 최고 가는 미녀라는 사실, 왕자와 결혼함으로써 행복을 완성하는 결말 등이 그렇다. 여성의 능력을 남성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미모와 등치 시키거나, 여성의 성취를 결혼으로 인한 신분상승으로 마무리짓는 것은 여성의 수동성을 역설한다. 이를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시대적 한계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자유롭지 않은 문제라는 점에서 시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고, 똑똑한 여성을 터부시 하며, 남성과의 결혼을 여성의 성취와 연관 짓는 것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 아닐까? '그런 잣대는 후진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만 자리 잡았을 뿐, 현실은 여전히 후진 채 그대로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 속 벨은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마을 최고 미남이자 실력자인 개스톤의 구애를 강하게 거절하고 더 넓은 세상에서의 좀 더 멋진 삶을 꿈꾼다. 투옥된 아버지를 대신해 감옥에 갇히길 자처한 뒤 스스로 탈출의 길을 모색하고, 야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정면으로 맞서고, 그의 외모가 아닌 내면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음을 연다. 벨이 겪어내는 도전들은 허무한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내딛는 선택의 발걸음이다. 이런 벨의 행동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을 21세기 현대 사회로 옮겨놓아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서 다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의 시대보다는 진보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벨만큼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개스톤처럼 '잘 나가는' 남자의 구애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님의 짐과 빚을 대신 끌어안을 수 있을까? 강자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모두가 외면하지만 내면이 통한다는 이유로 추남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모두 쉽게 "예스"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영화가 판타지 동화인 이유는 바로 벨 때문이다. 벨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인 것이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1991)


여성을 옭아매는 굴레들이 여전한 현대 사회에서,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과 꿈을 좇으며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의 어떤 면들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경험들을 하나둘씩 쌓은 여성들에게 벨은 어쩌면 대리만족을 주는 존재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엔 왕자를 만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는 '공주님'이 부러웠지만,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벨의 모습이 부럽다.


조금 더 진화한 <미녀와 야수>를 상상해본다. 벨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습을 담았다면 어땠을까. 좋아하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셰익스피어의 뒤를 잇는 멋진 소설가가 된다면? 개스톤처럼 우매한 지도자가 아니라 현명하게 나라를 통치하는 여왕으로 변신한다면? 아니면 왕자와의 결혼을 뒤로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홀로서기를 한다면? 더 환상적이고 놀라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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