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0일
이제 제법 찬 바람이 불어.
기나긴 장마와 더위가 끝나고 어느새 가을이 왔네.
계절의 변화는 참 신기하지.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계절도 반드시 끝나고 이내 다른 계절이 오잖아.
마치 어떤 시간도, 어떤 불행도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도감이 들어
시간이 여전히 흘러주는구나.
그렇다면 나의 이 불확실한 시간도 계속 흐르면서 변하겠구나.
어제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꿋꿋하게 해 나가는 것 같다고.
안정감 있고 걱정이 없어 보인다고.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 보인다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어.
아니야.
정말 아니야.
나는 매일 흔들려.
불확실함에 몸서리쳐.
내가 계속 연극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까?
내 몸과 목소리를 필요로 할까?
누가 날 봐줄까? 내 얘기를 들어줄까?
내 실력이 더 나아지기는 할까?
예술로 먹고살 수 있을까?
가끔 함정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벌려놓은 것은 아닌지.
수습이 되기는 할는지.
내가 옳다고 믿는 삶.
그걸 내가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
나는 그것을 위해 얼마큼 희생하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매 순간 불안하고 흔들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연습을 가.
하지만 연습이야말로 얼마나 불확실한 세계니.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잖아.
나의 연습이 성공을 가져다줄 거라는 어떠한 확신도 없어.
연습에 쏟은 시간과 아무 상관없이
입시, 오디션에 떨어지는 게 다반사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불확실한 세계에 기꺼이 몸을 던지지.
역설적이지만 연습이야말로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연습실에 갔어.
연습실엔 오늘도 불확실한 세계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대사를 외우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있었어.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면서 혼자 속으로 외쳤어.
'연습으로 이 불확실함을 깨부수자'.
'계절의 변화처럼 성실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