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달인, 바틀비에게

2025 길동무 문학학교 소설쓰기 수업 과제

by 유은강

버린다는 것. 포기한다는 것. 그것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에겐 무엇이 그렇게 중요했기에 다른 모든 것은 그토록 필사적으로 버릴 수 있었는지요. 그것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나는 당신과는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나는 중요한 게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돈을 버는 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좋은 친구 역할, 착한 딸 노릇, 반려동물의 보호자, 매력적인 헤테로 여성, 일 잘하는 동료, 예술가 정체성,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깨끗하게 정돈된 집, 저속노화 식단, 주 3회 달리기, 그 와중에 좋아하는 디저트도 먹어야 하고, 맛있는 커피도 포기 못 하고, 집에서 혼술하는 재미도 잃지 못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퇴근하고 혼자 밤에 피우는 담배 맛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모든 걸 다 가지고 싶어요.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해요. 하지만 혼자서 이 모든 역할과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주 5일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언제나 청결한 집안 상태를 유지하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때때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사회적인 인간으로 살아남는다? 불가능에 가깝죠. 불가능해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요!! (내 스스로에게도 단단히 못 박아두고 싶어서 세 번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늘 이 모든 걸 다 해내고 싶은 욕심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모아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번아웃으로 나가떨어지는 패턴을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삶의 질이 100점 만점에서 50에서 60 정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150과 마이너스를 오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여 150, 200으로 상한가를 찍고는 다시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친 후, 그런 나를 다시 겨우 0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허우적거리다가 1년을 다 보내는 식으로 나의 삶이 굴러왔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이 중 무엇이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이든 창작이든 좋은 친구든 깨끗한 집이든 뭐든 하나는 포기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이 널뛰는 삶의 퀄리티를 지속 가능한 적정 수준으로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그토록 중요했기에 그 외에 다른 것은 그렇게 철저히 포기할 수 있었는지요. 나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어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은 팟캐스트에서 영화 ‘타인의 삶’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걸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나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완전히 매료되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어쩌면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이 그토록 중요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머리에 맴맴 맴돌아도 롤캬베츠 같은 것을 만들겠다며 주방을 가득 어지럽히고 밤 열두 시까지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주말을 다 써버리는 것 아닐까. 그러니 내가 무엇을 포기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충분히 매료되는 일 아닐까. 남의 사무실을 점거하다가 감옥에 끌려가는 일까지 불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설거지는 3일 정도 방치할 수 있을 만큼 이 작업에 사로잡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연휴의 끝자락, 건조기 속에 이틀째 넣어둔 빨래를 뒤로한 채(내게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집으로부터 도망쳐 카페에 앉아 당신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부디 내가 이 아름다움에 조금만 더 오래 취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이제 곧 돌아갈 집에는 밀린 빨래와 설거지, 그리고 나만 보는 분리불안 고양이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세상엔 여전히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하고 아름답고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널려있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아 글쓰기여. 아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