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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un 12. 2018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영화 <허스토리>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 '허스토리'가 사람들을 보는 프레임은 '이해와 공감'이다. 문정숙 사장을 비롯한 일본의 변호인들과 일본의 시민단체 사람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재판 과정에 임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한일협정 때 돈으로 다 보상해 주지 않았느냐며 이제 와서 보상을 요구하는 할머니들을 파렴치한 매춘부이고, 거짓말쟁이라고 욕한다. 일본인 뿐만 아니라, 일부의 한국 사람들도 그런 남사스러운 얘기를 방송에 나와서, 재판에 나와서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며 그 노력을 폄하하고 훼손했다.


 특히나 요즘에는 여성들이 더 이상 이유 없이 부당한 차별받지 않고자 하는 '페미니즘'이 점점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남성들과 적지 않은 마찰을 빚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을 푸는 가장 좋은 해결책도 이 영화가 말하는 '이해'와 '공감'의 프레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 서로가 자기가 힘든 것만, 불편한 것을 주장하려 한다면 남녀 사이의 갈등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냉소적인 모습이 아닌, 서로의 힘든 점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다면 이러한 갈등과 싸움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인류의 역사는 '피'의 역사고, '전쟁'의 역사다.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그 죽음을 발판 삼아 새로운 세력이 생기고, 제국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퇴적되고 또 퇴적되어 지금의 우리는 여기에 있다.


 그런 역사를 우리는 'History'라고 부른다. 그렇다. 역사는 싸워서 죽이고, 이기고, 쟁취하고, 제패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여성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얼마가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허스토리'다. 'History'가 아니라, 'Herstory'이다. '그녀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남성'의 역사에서, 서로가 겨눈 창 끝과 총부리 끝에는 '남성'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여야만 우리는 번식이 가능하고 그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History'라고 부르는 역사에는 물론 '여성'들도 함께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1991년 8월 14일,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아니, 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꺼낸 할머니가 계셨다.

김학순 할머니


'죽기 생전에, 내 죽기 생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하려고 그래서 내가 말 하기 시작했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다는 김학순 할머니. 왜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할머니는 말했다. 남부끄러웠다고. 고국의 동포들도 나를 천하다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세상 속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일본어만 들려도 구토를 하며, 고양이 때문에 천장에서 나는 '쿵'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잘못했다 소리치는 등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그분들은 그런 고통을 가족도 없이 혼자서 감내했다.

 하지만 김학순 할머니는 죽기 전에 자신이 당한 고통에 대해 사죄받기 위해. 용감히 세상 앞에 섰다. 그리고 영화 '허스토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부산(釜山)을 스물세 번이나 오가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재판을 펼친 위안부 할머니 열 분과, 그분들을 도운 이들에 대한 이야기, '관부(關釜) 재판'을 다룬 실화 영화다.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문정숙'(김희애)은 부산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여성들끼리 결성한 모임인 '여성경제인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정의감 넘치는 여자다. 어느 날 뉴스를 통해 김학순 할머니의 소식을 들은 정숙은 여행사 내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제보받고자 자신의 여행사에 신고 센터를 설치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에게 무료 변론을 하고 있는 재일 교포 변호사 이상일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이 무모하다면 무모할 재판에 뛰어들게 된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위안부 문제를 그저 단순히 '국가'의 관점, 혹은 '역사'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고리타분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전쟁과 그 이후의 세상 속에서 한 평생 힘들게 살아온 '그녀들'의 이야기에 오롯이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오빠는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데 끌려가야 한다면 네가 끌려가야 하지 않겠냐며, 못내 미안하다 흐느껴 울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옥주 할머니(이용녀)와 덤덤한 표정으로 칼로 난도질을 당한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서귀순 할머니(문숙)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상조차 하지 못할 폭력과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그녀들을 잘 드러낸다. 특히 치매에 걸린 이옥주 할머니의 모습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가던 꽃다운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먹먹하고 아프게 했다.

 또한 할머니들을 돕는 문정숙의 캐릭터도 그렇다. 그녀는 '걸 크러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의 '승소'를 위해 열심히 할머니들을 돕는 매우 멋진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승리'라는 목표에 사로잡혀 때로는 상처 입은 할머니들의 마음에 또 한 번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어떤 단순한 한 가지 기준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이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진실로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 연탄재, 안 도 현


 영화를 보며 난 문득,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라는 시를 떠올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마치 '연탄재' 같다. 폭력과 전쟁이 만들어 낸 '히스토리' 속에서 그녀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한 평생을 살아왔다. 한 많은 인생 동안 아무도 보지 않는 외진 골목에서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은 어느새 백발이 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이미 다 타고 하얀 껍데기만 남은 '연탄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연탄재를 고민 없이 발로 찼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동네 골목 한쪽에 쌓아놓은 연탄재를 발로 차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연탄재를 발로 찬다. 우리는 그렇게 무관심이라는 말로, 어렵게 용기를 낸 할머니들에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로, 늘그막에 돈 좀 벌어보려고 한다는 말로, 그 연탄재를 발로 찼던 것이다. 그런 무관심과 멸시 속에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해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분들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여생을 혼자 눈물 흘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고리타분한 관점으로 선과 악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때려죽일 일본 놈들'이라는 식으로 전쟁과 세력, 국가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같은 한국인임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뉴스에서, 재판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보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택시기사도 있었는가 하면, 일본인임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뒤에 서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부르짖던 이들도 있었다.



 영화 '허스토리'가 사람들을 보는 프레임은 '이해와 공감'이다. 문정숙 사장을 비롯한 일본의 변호인들과 일본의 시민단체 사람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재판 과정에 임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한일협정 때 돈으로 다 보상해 주지 않았느냐며 이제 와서 보상을 요구하는 할머니들을 파렴치한 매춘부이고, 거짓말쟁이라고 욕한다. 일본인 뿐만 아니라, 일부의 한국 사람들도 그런 남사스러운 얘기를 방송에 나와서, 재판에 나와서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며 그 노력을 폄하하고 훼손했다.


 그들이 말하는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해결책이다. 하지만 '돈'은 참 역설적이다. 돈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 같지만, 반대로 돈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영화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까짓 돈 필요 없다고. 우리는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문제의 답인 것만 같은 돈이 사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성'을 잃어버린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배정길 할머니(김해숙)는 영화 말미에 재판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 미안하면 내 인생을 돌려놓으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나도 알기 때문에, 미안하다면 지금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말한다.

 '이해'와 '공감'이 동반되지 않는 사죄는 의미가 없다. 돈이나 몇 푼 주고 합의 보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해와 공감이 어려운 이유는 그게 지극히 '인간'적인, 매우 고차원적인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잘못을 행한 이의 입장에서 내게 피해를 당한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내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일본 정부는 아직도 피해자 할머니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하지도 않으며, 위로금 10억 엔 같은 씨도 안 먹힐 소리만 해대고 있는 것일 테다. 그리고 당시 우리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에 두 번 상처를 입혔다. 우리는 차갑게 그 연탄재를 발로 차버렸다.


 과거 영화 <귀향>이 태평양 전쟁 당시 전쟁터 곳곳으로 끌려간 불쌍한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영화 <허스토리>는 그 소녀들이 전쟁이 준 상처를 안고 해방 후에도 이어진 모진 삶을 살아가며 '할머니'가 된 그 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의의를 지닌다. 관부 재판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은 부분적이나마 일본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아직도 일본은 협정을 통해 배상이 끝났다는 말로 진심 어린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꼭 보고, 이 문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 이상 연탄재를 발로 차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억압 속에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녀들의 이야기(Herstory)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이 영화를 보길 추천하고 싶다.  


 특히나 요즘에는 여성들이 더 이상 이유 없이 부당한 차별받지 않고자 하는 '페미니즘'이 점점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남성들과 적지 않은 마찰을 빚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을 푸는 가장 좋은 해결책도 이 영화가 말하는 '이해'와 '공감'의 프레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 서로가 자기가 힘든 것만, 불편한 것을 주장하려 한다면 남녀 사이의 갈등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냉소적인 모습이 아닌, 서로의 힘든 점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다면 이러한 갈등과 싸움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모쪼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꼭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행위였다느니, 피해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이 돈이라느니 이런 말을 하며 이해와 공감의 출발선에도 서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안도현의 시 '연탄재'의 마지막 구절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나는 누구에게 진실로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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