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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ul 13. 2018

Happily Ever After

영화 <빅식>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동화들이 마지막엔 이렇게 끝난다. 'Happily ever after'. 우리말로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대요.'라는 말. 어렸을 때는 동화를 끝맺는 이 말을 보며 상상했다. 매일매일 깨 볶으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공주와 왕자의 모습을.
 그런데 커가며 우리는 이 'Happily ever after'라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되었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과연 왕자와 단 한 번도 안 싸웠을까. 하다 못해 밥 먹으며 쩝쩝대는 소리 때문에도 싸움이 나는데.
 그래서 난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Happily ever after'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긴 한데, 알콩달콩한 행복으로 이루어진 말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과 싸움, 고통으로 이루어진 말이라고. 서로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만들어낸 싸움과 갈등, 반목이 그들의 사랑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끈 것이라고 말이다.


1.

 오늘따라 참,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막막하다. 커서가 계속해서 깜빡인다. 얼른 쓰라고, 뭐하고 멍하니 앉아있느냐고 날 책망하는 것 같은 저 놈의 커서.


2.

 영화의 주제가 '사랑'이어서 그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 작품들의 주제 분포를 따지면, 아마 사랑이 적어도 70% 이상은 차지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사랑'이 주제인 작품에 관한 글을 쓸 때면 썼던 말을 또 쓰는 거 같은 느낌도 든다. 항상 같은 결론이고 같은 말인 것 같다. 빈 화면을 채워가는 구태의연한 문장들이 항상 새롭고 참신한 글을 쓰고 싶은 내 마음을 계속해서 쿡쿡 찌른다. 그래서 '사랑'이 주제가 되는 글은 어렵다. 닳고 닳은 주제 아닌가.



 3.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영화 <빅식>도 '사랑'에 관한 영화다. 어렸을 때 시카고로 이민을 와서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파키스탄 남자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과, 평범한 미국의 백인 여자 '에밀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파키스탄계 남자와 백인 여자라. 안 봐도 이미 감이 온다는 사람이 여기서 슬슬 나오겠지.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 뭐 이런 거 아니겠느냐고? 맞다. '쿠마일'과 '에밀리'는 우연히 만나 스파크가 튀고, 알콩달콩 사랑을 이어나가다가 벽에 부딪힌다. 정략결혼이 일반적인 파키스탄의 전통에 따라 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지나가다 들른' 신붓감들을 소개하여주는 통에 한 켠의 비밀 상자에 모아놓은, 그동안 소개받은 신붓감들의 사진을 에밀리에게 들키고 만 것. 극복하기 힘든 벽 앞에 둘은 싸우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에밀리'가 갑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코마 상태로 있던 14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정말 뻔해 보인다. 그럼 이 영화가 닳고 닳은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뻔하기 짝이 없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글에서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자는 것이 내 리뷰의 가장 큰 모토이므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우리 모두 극장으로.


4.

 휴우, 조금씩 손가락들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이 분위기를 이어가며 간단히 영화에 대한 평을 하자면, 정말 웃기다. 하지만 감독이 "웃어! 웃으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부담스러운 영화들과는 다르다. 이 영화는 어줍잖게 웃긴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가 일상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무심하게 툭툭 던지며 풀어가는 조크에 피식피식 입가에 웃음이 퍼지다가 어느 순간 빅재미가 빵 터지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탠드업 코미디 같았다. 없어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인종 차별 의식이 만연한 미국 사회와,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서로의 문화가 달라 벌어지는 일들을 이방인의 시선에서 해학적으로 잘 풀어냈다.


5.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우리가 배꼽을 잡는 대부분의 상황은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겐 짜증 나거나 화나거나는, 기억하고 싶지 상황들일 때가 많다. 나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흑역사도 시간이 지나면 피식 웃게 되는 게 세상이다. 역시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짜증'과 '분노'가 언젠가는 '웃음'이 되는 세상. 그래서 '곧 죽어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는 건가.  

 '사랑'도 그렇다. 영화 <빅식>을 보면서 가장 마음을 울린 대사가 있었다. 에밀리의 병간호를 하러 시카고에 온 그녀의 아버지 '테리'와 쿠마일이 함께 있을 때 테리가 하는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고통이야.

  맞다. '유머'뿐만 아니라, '사랑'조차도 고통인 것이다. 영화 <빅식>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사랑을 한다. 쿠마일의 가족은 쿠마일을 사랑하고, 에밀리의 가족은 에밀리를 너무나 사랑하며, 에밀리와 쿠마일도 서로를 사랑한다. 위에서 이 영화가 배꼽 빠지게 웃기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이들이 서로 복작대고 사랑하며 벌어진 '싸움'과 '갈등'들이었다. 그들은 사랑해서 힘들고, 사랑해서 아프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인종과 문화로 사람을 크게 분류할 수는 있어도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각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 고유한 문화가 사람마다 하나씩 다 존재하는 것이다. 매끈하게 돌아들어가는 볼트와 너트처럼 쿵짝이 잘 맞는 사람? 처음엔 그럴 수 있어도 절대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사람은 그렇게 좋아해서 함께 살면서도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프게 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외계인을 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들 쿠마일을 '정략결혼' 시키고 싶어, 쉼 없이 중매를 서는 쿠마일의 부모는 결코 사랑의 훼방꾼이 아니다. 그것은 쿠마일을 사랑하는,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이다. 지금은 죽고 못살아도 결국 안 맞고 부딪히기 마련인 게 사랑이고 삶인데, 그래도 중매결혼을 하면 결혼 전에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속속들이 다 알 수 있다. 매우 안전한 결혼이다. 자식이 안전하길 바라는 건 부모의 당연한 사랑이다.

 그래서 쿠마일은 에밀리와 만나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겼다. 당연히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혼한 후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을 뿐인데, 그저 단순한 순서의 차이일 뿐인데 그게 뭐가 그렇게 큰일이란 말인가. 결국 에밀리와 가족 양쪽을 속일 수밖에 없었던 쿠마일이 마음고생을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쿠마일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그가 에밀리를, 또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느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누군가를 소중히 아끼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느 한쪽 면만 보고 말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쿠마일이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일 테다. 사랑을 하며 절대 싸움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 사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연애하고 사랑하며 가장 무서운 건 싸울 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할 때다. 거짓말은 결국 언젠가는 발각되었을 테고, 서로의 진실이 맞부딪히는 싸움보다 거짓말의 발각은 더 걷잡을 수 없이 큰 후폭풍으로 번진다.


 

사랑은 어려운 거야. 그래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사는 것은 골치 아프다.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사랑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모양의 볼트와 너트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쿠마일의 엄마가 중매로 소개한 여자 중 한 명은, 같은 문화권에서 자랐음에도 쿠마일이 드라마 'X파일'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고, 인종도 다른 쿠마일과 에밀리,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Big Sick'도 아마 그것을 은유한 것일 테다.

하지만 행복은, 서로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과정에서 조용히 꽃핀다. 그래서 사랑은 행복이다. 그것이 아마도 찰리 채플린이 말한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의 인생이지 않을까. 아이러니와 옥시모론으로 가득 찬 우리 인생은,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죽기 직전 한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눈 앞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때는 아름답게 보이나 보다.



6.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말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이쯤에서 결말 스포. 둘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는 두 사람의 실제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며 아름답게 끝났다.

 

 거의 모든 동화들이 마지막엔 이렇게 끝난다. 'Happily ever after'. 우리말로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대요.'라는 말. 어렸을 때는 동화를 끝맺는 이 말을 보며 상상했다. 매일매일 깨 볶으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공주와 왕자의 모습을.

 그런데 커가며 우리는 이 'Happily ever after'라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되었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과연 왕자와 단 한 번도 안 싸웠을까. 하다 못해 밥 먹으며 쩝쩝대는 소리 때문에도 싸움이 나는데.

 그래서 난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Happily ever after'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긴 한데, 알콩달콩한 행복으로 이루어진 말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과 싸움, 고통으로 이루어진 말이라고. 서로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만들어낸 싸움과 갈등, 반목이 그들의 사랑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끈 것이라고 말이다.


7.

 휴우, 겨우 다 썼다. 하나의 글을 잉태해 내기 위해 내 머리 속에서 펼쳐진 수많은 갈등과 고통.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토해낸 후, 나도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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