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가 아파

#2. 마흔의 몸

by 알베르투 카에이루
KakaoTalk_20240326_183650524_01.jpg


“너만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어. 카톡보다 전화가 나을 것 같아서 전화했는데 막상 말을 하려니까 잘 안되네.”

며칠 전부터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를 망설였던 이름이 핸드폰에 떴다.

그의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목이 콱 매였다.


며칠간 일은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그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미루고만 있었다.

도움이 될까 싶어 최근에 읽었던 책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다시 들춰 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전화를 해 왔다.


스스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하게 하는 건 너무 혹독했다.

콱 막힌 목을 겨우 뚫으며 내가 선수를 쳤다.

“나도 얘기 들었어. 안그래도 지금 반찬이랑 야채 좀 보내면서 연락하려던 참인데 성질도 급해, 언닌!”

“아 그랬구나?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서울 떠난 넌 나 아픈 거 알기 어렵겠다 싶어서. 나중에 알면 또 얼마나 뭐라고 할까 싶어서 전화했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공유하지 않아 혹여 서운해할 지인이 있을까 걱정했다니 너무 그답다.


늘 주변을 돌보고 선한 일을 하던 사람의 몸에 왜 그런 악성 종양이 생긴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닌 잘 이겨낼거야. 걱정하지마. 마흔 넘었으니 몸이 중간 점검하란 뜻인거야.”

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나에게

“울지마~ 니 말대로 마흔 넘으니 그래. 너도 이제 마흔이니 몸 챙겨!”

한 해 먼저 마흔을 넘긴 언니의 몸에서 낯선 신호를 보냈다는 소식은 시작이었다.



주변에선 하나, 둘 아픈이들이 생겨났다.

‘몸 챙기자’는 마치 구호처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주고받는 인사말이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갑작스런 사고가 아닌 병을 앓다 생을 마친 친구를 떠나 보내기까지 했다.

몸 여기저기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할 때라고들 했다.

육체 노동자인 나는 마흔이 된 해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10분이라도 몸을 풀고서 움직여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밤마다 통증이 느껴지게 되는 허리와 목을 가진 몸이 됐다.


평균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는 몸을 이끌고 사는 생활.

어느 책 제목처럼 ‘아픈 몸을 사’는 것이다.

몸을 이야기하고, 살피게 되는 마흔.

그리고 그 아픈 몸을 돌보다 몸과 이별하는 순간을 준비하는 이들이 부모님 세대가 아니라, 친구들 중에 하나, 둘 생기게 되는 나날.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평범한 나 같은 사람에겐, 몸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서부터라는 생각을 한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
손 흔드는 내가 보이니 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꽃들이 피던 날 난 지고 있었지만 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
손 흔드는 내가 보이니 웃고 있는 내가 보이니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루시드폴 '아직, 있다'



몸을 돌본다는 행위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있다.

사십년을 운행해 온 몸이 어쩌면 지금까지의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가동해야 할지도 모른다.

염치불구하고 내 몸을, 내 친구의 몸을 돌보자며 서로 다독이기 시작하는 마흔.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자 마흔의 몸.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