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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세상 속, 희생하는 삶을 바라보며

“폭삭 속았수다” 난 분명 엄마 아빠의 금명이었다.

by 김지혜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이 처럼 똑똑하고 잘 되진 않았지만 분명 난 울 엄마 아빠의 금명이었다.

학씨를 닮은 아빠였지만 그래도 따뜻함이 느껴졌고, 학씨의 딸처럼 아빠에게 대들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애정을 보여주셨던 아버지였다.

나의 두 딸을 아직도 챙기는 울 엄마는 애순이다.


내가 무언가 성취하면 가정 먼저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엄마였다. 내가 사람들에게 멋져 보이는 것보다, 내가 이룬 성취를 엄마가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중년이 되었지만, 나의 아이들은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잔소리와 돌봄에서 자라고,

나 또한 여전히 그녀의 손길로 늙어가는 주름진 아이다.


나의 엄마 아빠가 가진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와 희생을 나는 가지지 못했다.

사랑은 하지만 나의 희생은 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왜 우리는 그들과 다르게 아이들을 바라볼까?

나의 부모님은 힘든 삶에서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런 날을 위해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왔다.

나는 살아오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힘든 삶과는 달랐다.

배를 고파본 적도, 짠돌이 아빠였지만, 그렇다고 내야 할 돈을 못 낸 적은 없었다. 그런 삶을 산 나에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냥 아주 조금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그마저도 욕심인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정도라도 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희생을 한다고 가능한 그들의 세상이 아니라서 일까, 나는 자식에게 무한한 희생을 하지 않는다. 내가 받은 것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

나는 좀 더 개인적이고, 좀 더 이기적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이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 여긴다.

아이들은 사랑하지만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없기에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여전히 그 세상은 내게 어렵다.

지금 보다 더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 그리고 아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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