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가 만든 아주 한국적인 가전제품
삼겹살, 고기를 구워 먹고 오는 날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가 미안하다. '나는 오늘 고기 먹었어요'라고 냄새로 모두에게 알리게 된다. 특히나 한겨울 두꺼운 코트에 밴 연기 냄새, 집에 도착하면 탈취제를 뿌리고 베란다에 걸어 둔다. 코트나 패딩 다 합쳐도 겨울 외투는 세 벌 남짓. 당장 입을 옷이 없는데 드라이 맡기긴 비싸고, 기다리기도 길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스타일러!
외국에서는 낯설 수 있는 이 제품을 보고,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옷 냉장고가 있냐”며 놀란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제 꽤 익숙한 가전이다. LG전자가 '스타일러'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한 이후, 삼성도 '에어드레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제품은 스팀다리미, 탈취제, 살균기, 먼지 제거기를 하나로 합친 듯한 기기다. 개발 계기는 LG전자 부회장의 아내가 출장 많은 남편에게 “호텔 욕실에 수증기 가득한 상태로 옷을 걸어두면 구김이 펴진다”는 생활 팁을 알려준 데서 시작됐다.
이렇게 LG에서 처음 개발하고 이제 점점 대중화되어 간다.
해외에서는 아직까지 낯선 이 가전제품은 한국의 문화, 환경, 생활 방식으로 인한 니즈로 만들어졌다.
이 제품이 한국에서 탄생하고 환영받는 사회적 문화적 이유를 분석해 보자.
한국에서는 외모와 복장이 곧 이미지이자 경쟁력이다. 얼굴뿐 아니라 어떤 옷을 입고,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했느냐도 중요한 사회적 평가 기준이 된다. 옷의 냄새, 구김, 청결도는 그 사람의 ‘자기 관리’를 보여주는 신호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는 상당히 중요한 한국인의 가치이다.
한국의 외식 문화에서 삼겹살은 빠질 수 없다. 특히 고기 굽는 문화와 회식은 옷에 냄새를 남긴다. 매번 세탁하거나 드라이 맡기기 어려운 정장이나 코트에겐 의류관리기가 구원처럼 느껴진다.
봄철에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여름엔 고온다습한 날씨와 집중 호우가 옷을 ‘뽀송뽀송하게’ 입기 어렵게 만든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면 며칠 뒤에야 찾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한 번에 끝내는’ 기능은 매우 매력적이다. 코트나 정장은 드라이클리닝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집안일을 줄여주는 가전은 특히 바쁜 맞벌이 부부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필수 아이템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자동청소기, 식기세척기, 음식물 처리기처럼 의류관리기도 그런 흐름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와 세균 제거 기능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순히 ‘구김 펴기’가 아니라 ‘살균’ 기능은 중요한 매력 요소가 된 것이다.
김치 냉장고가 그랬듯, 의류관리기인 이러한 LG 스타일러, 삼성 에어드레서는 한국 사회의 생활양식과 환경,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 제품이다.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기술을 이끌고, 시장을 만든 셈이다.
이제는 다른 나라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한국은 ‘의류관리기’의 원조 국가로서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왜 그 제품이 필요했는지, 어떤 문화와 생활이 그 제품을 만들었는지 분석해 보면, 마케팅 가능한지와 판매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