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바다도 들끓는 7월. 도시로 떠난 여행에서 한가로움을 맛본다. 2004년부터 정부 주도로 개발한 신도시 판교에는 IT 개발자, 농부의 딸, 빵 만드는 아저씨, 공연가가 모여 산다.
판교 북부에 자리한 판교테크노밸리는 첨단 산업 연구 단지다. 한국건축문화대상과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건물을 비롯해 수많은 커튼 월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미래 도시를 연상시키는 현대건축을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간다. 거리마다 자리한 공공 미술은 또 다른 볼거리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연면적 1만 제곱미터를 넘는 건축물은 부지 내 미술 작품을 설치해야 하다 보니, 대형 빌딩이 많은 판교테크노밸리는 곳곳에 공공 미술이 들어선 거대한 야외 미술관을 이룬 것. 테크노밸리에 어울리는 작품의 주제를 좇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인디 레이블 커먼뮤직이 판교테크노밸리 내 H 스퀘어에 공연장을 겸하는 식당 커먼키친(031 696 7788)을 열었다. 점심에 50개만 한정 판매하는 함박정식(1만2,000원)은 당근과 완두콩으로 퓌레를 만들어 고소한 맛을 더했다. 찬으로 나오는 매실청 방울토마토가 입맛을 돋운다. 매주 금요일 밤 8시에 인디 뮤지션의 공연이 열린다.
SIDE TRIP 1. 화랑공원
테크노밸리 인근에 자리한 화랑공원에는 작은 호수와 산책로가 있어 느리게 걷다가 벤치에 앉아 고요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공원 안에 자리한 판교스포츠센터 전망대(031 724 4660, 9am~6pm, 둘째‧넷째 주 일요일 휴무)에 오르면 판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한편에 마련한 북카페에서 풍경을 즐기며 마음껏 책을 읽어보자.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청량하고 반가운 이름. 파머스 러브 레인(farmersloverain.com)은 농사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 도시 농업 브랜드다.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아빠가 농사짓는 걸 보고 자랐죠.” 정의선 대표에게 농작은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즐거운 일이다. 그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지난 1월에 쇼룸을 열었다. 판교 도서관 인근에 자리 잡은 쇼룸은 텃밭과 요리를 하는 주방,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식탁을 갖췄다. 팜 테이블(farm table)을 예약제로 운영하는데, 모임의 호스트가 셰프와 제철 재료를 수확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 파머스 러브 레인은 자체 제작한 농기구를 판매하고, 도시 농업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조만간 플랜트 박스를 이용한 텃밭 가꾸기 수업을 열 예정이다.
+ 판교 25통에 공방을 운영하는 작가들이 모여 예술 거리 아트로드 25를 형성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각자의 공방 앞에서 벼룩시장을 연다. 도자기 공방, 가구 공방, 향초 공방 등 16곳이 참여한다. 공중작업실(blog.naver.com/studioempty)도 아트로드 25의 일원. 작업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기본 2시간 5,000원). 작업실을 이용하는 작가들이 강좌를 열기도 한다. 강좌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
운중천은 판교를 가로지르는 하천이다. 청계산에서 발원한 물은 동쪽으로 흘러 탄천에 유입한다. 예전에는 하천을 건너기 위해 널빤지로 다리를 놓아 ‘널다리’라고 불렀다. 주변을 너더리마을이라 했는데, 오늘날 그 말을 한자로 표기해 판교(板橋)가 된 것. 이제 널다리를 볼 순 없지만, 도시 가운데 잔잔히 흐르는 운중천은 여전히 판교 주민의 아늑한 휴식처다. 운중천가에는 호젓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와 운중천 사이에는 풀이 무성해 꼭 자연적으로 생긴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돌다리를 건너고 강둑 위에 오르는 등 길 풍경이 다채로워 심심할 새가 없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개울가에 나와 앉아 재잘거리는 보기 드문 모습을 마주치기도 한다.
판교는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뉜다. 서판교 운중동 운중천 북쪽의 단독주택 단지에는 4년 전부터 카페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카페 거리를 형성했다. 운중천을 바라보고 테라스를 낸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더위가 가실 것이다. 서판교 카페 거리는 운중저류지공원 인근에서 시작해 한절교까지 길게 뻗어 있는데, 동쪽으로 걸을수록 구경해볼 만한 가게가 많다.
어니스트 키친은 지점이 4곳 있지만, 각기 다른 색을 추구한다. 서판교 카페 거리의 동쪽 끝에 자리한 어니스트 키친 서판교점(031 8017 5060)은 일식과 양식에 기반을 둔 한식 퓨전 요리를 선보인다. “이건 아직 메뉴에 안 넣은 거예요. 소스는 꿀과 허브를 이용해 만든 건데, 한번 드셔보세요.” 토마토 애피타이저를 내놓는 롯데호텔 출신 장대봉 셰프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현재 메뉴 리뉴얼 중이고, 7월부터 새롭게 구성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백현동 카페 거리의 끄트머리에 정겨운 주황색 간판을 내건 빵집 블레도르(031 704 7228). 블레도르는 프랑스어로 ‘황금 밀가루’라는 뜻이다. 오너 셰프 이동우 씨는 황금처럼 좋은 유기농 밀과 무항생제 달걀을 사용해 빵을 만든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맛을 포기해야 할 것 같지만 블레도르의 빵을 한입 베어 물면 생각이 바뀐다. 시그너처 제품인 블레도르(4,800원)는 오로지 밀가루, 물, 발효한 건포도를 재료로 만들어 담백하고 소화가 잘된다.
SIDE TRIP 2. 루프엑스
늦은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백현동 카페 거리 길 건너에 자리한 루프엑스(RUFXXX, rufxxx.com). 이곳은 동명의 극단이 운영하는 바 겸 극장이다. 극단은 2011년 결성 이후 5년간 한 주도 쉬지 않고 공연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지금 작업 중인 <블랙 언더>는 움직임과 소리를 재료로 하는 전위적인 퍼포먼스. 매주 테스트 공연을 하며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무료, 금요일 8:30pm, 일요일 7: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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