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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25. 2015

백패커를 부르는 섬, 고군산군도

배낭을 메고 섬과 섬이 겹겹이 포개진 고군산군도로 떠난다. 페달을 밟고, 산봉우리에 오르고, 해변 캠핑을 즐기고, 바다에서 손맛을 느끼는 사이 진정한 백패킹의 묘미를 알려주는 그 섬으로.


 고현 ・ 사진 오작


방수 재킷과 소형 스토브, 가스 랜턴, 보조 배터리를 배낭에 차곡차곡 집어 넣는다. 만일을 대비해 멀티나이프도 하나 추가한다. 마지막으로 텐트를 결속한 배낭을 어깨에 걸치니 제법 묵직함이 느껴진다. 1박 2일 백패킹을 위해 이토록 단단히 짐을 꾸린 것이다. 오늘 향할 고군산군도의 대부분 지역은 배를 타야 접근할 수 있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군산군도의 본섬 역할을 하는 선유도를 오가는 옥도훼리호는 280명이 승선할 수 있는 중간 크기의 페리. 1층과 지하에 위치한 침상형 객실 대신, 야외 좌석이 놓인 2층 갑판에 자리를 잡는다. 금강 하구의 끝자락을 느리게 항해하는 페리 위에선 왼쪽으로 군산국가산업단지가, 오른쪽으로 유부도에서 시작해 직선으로 곧게 뻗은 해상 방파제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선유도를 비롯해 63개 섬이 흩어져 있는 고군산군도의 옛 지명은 바로 군산도다. 조선 시대 때 오늘날의 군산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지명이 옮겨갔고, 기존 군산도에 옛 ‘고(古)’를 붙여 고군산군도로 불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여정은 군산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1시간 남짓 흘렀을까? 낮게 깔린 해무가 한꺼풀 벗겨지자 겹겹이 포개진 고군산군도의 실루엣이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낸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연결한 장자대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그리고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 오작

RIDING 

페달로 가로지르는 섬


선유도를 중심으로 서쪽의 장자도와 대장도, 남쪽의 무녀도는 하나의 섬처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선유도 선착장 앞으로 스쿠터와 자전거 대여점이 늘어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외지인이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으니 몇몇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승합차를 제외하면 섬의 이동 수단이라고는 스쿠터와 자전거뿐이니까. 짐을 싣고 섬 구석구석을 빠르게 누빌 수 있는 스쿠터를 고르는 게 합리적일 테지만, 오늘은 자전거다. 기왕 백패킹에 나선 이상 두 다리에 최대한 의탁하고 싶기에.


자전거에 올라 본격적으로 섬 탐방을 시작한다. 사실 선유도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따로 없다. 섬 곳곳을 연결하는 좁다란 길이 곧 자전거와 스쿠터의 주무대다. 명사십리(明沙十里)라 불리는 선유도해변을 가로질러 곧장 선유도 북쪽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오른쪽에 보이는 2개의 봉우리는 바로 망주봉. 선유도에서 이 봉우리는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섬 어느 곳에서든 보이는 망주봉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면 된다. 구불구불한 산악 코스를 지나며 조금 숨이 차오르는 찰나 보상이라도 하듯 내리막길이 이어져 라이딩이 즐겁다.

고군산군도 주요 섬 내 길 대부분은 완만하게 이어져 최적의 라이딩 코스로 손색없다. © 오작

그렇게 도착한 몽돌해변. 올망졸망한 자갈이 깔린 해변으로 좌르륵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언뜻 이탈리아 혹은 스페인의 여느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밀파소(밀려오는 파도 소리)’ 펜션 앞으로 아담하게 형성된 해변은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데다 인적도 드물다. 리드미컬한 파도 소리를 감상하는 사이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금 선유도 동쪽 끝을 향해 출발. 끝에는 기도하는 손 모양을 형상화한 빨간 기도등대가 놓여 있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생각보다 섬이 꽤 커서 놀랐어요. 그래도 자전거 덕분에 여유롭게 섬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죠.” 대학교 친구와 함께 군산 여행을 떠난 김에 당일 일정으로 선유도를 찾은 박희진 씨처럼 짧은 일정의 여행자에게도 자전거는 충분히 빛을 발한다.


신시도 인근에 자리한 무녀도에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연륙교를 포함해 섬 곳곳이 온통 공사 중이다. 종종 길이 끊기거나 비포장도로와 마주치는 일이 다반사. 게다가 이정표를 설치한 곳이 많지 않아 자칫 예정에 없는 행선지로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황할 것까지는 없다. 뜻밖에 그림 같은 어촌 풍경과 항구를 따라 이어진 훌륭한 라이딩 코스를 덤으로 얻을지 모르니까. 이곳에선 길을 잃어도 괜찮다.

대장봉에서는 다리로 연결된 장자도와 선유도, 무녀도는 물론, 날씨가 좋은 날엔 고군산군도를 아우르는 63개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 오작

HIKING 

섬 정상에 올라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 섬 여행가로 알려진 강제윤 시인의 <걷기의 의미>에 나온 한 구절처럼 하이킹은 분명 여행자의 시야를 넓혀준다. 수년 전 걷는 여행이 붐을 일으키며 전국 각지에 도보 여행 코스가 잔뜩 들어섰음에도, 이 섬은 그 열풍을 살짝 비켜간 것처럼 보인다. 군산시에서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길을 ‘구불길’ 코스 중 하나로 지정하긴 했지만, 길을 제대로 가꾼 흔적은 찾기 힘들다. 이런 섬의 무심한 태도는 도리어 섬의 옛 흔적과 자연을 온전히 만끽하도록 돕는다. 특히 섬마다 하나씩 솟아 있는 산봉우리는 한 번 쯤 올라보고 싶은 승부욕을 자극한다.

남악산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고군산군도의 청정 해역. © 오작

가장 먼저 선유도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남악산을 택해 하이킹에 도전한다. 전월리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입구를 찾느라 헤매기를 반복. 수풀을 헤집고 나서야 간신히 발견한 등산로 또한 성인 1명이 간신히 지날 만한 오솔길이다. 발아래로 뭔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울긋불긋한 민물게가 잽싸게 지나간다. 꽤 가파른 산길에는 개옷나무, 사스레피나무, 참나리꽃 등 평소 구경하기 힘든 진귀한 수목과 야생화가 자연스럽게 뒤엉켜 있다. 완만한 산등성이에 이르자 멀리 청정한 바다 위를 메운 김 양식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30분 남짓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끝에 마침내 다다른 해발 155미터의 정상. 이곳의 대봉전망대 데크에 올라서면 망주봉과 선유도 해변이 드넓게 펼쳐진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선유도의 이름을 되새기게 만드는 드라마틱한 풍광이다.


장자도와 다리로 연결된 대장도에선 또 다른 산악 코스가 기다린다. “고군산군도 전체를 바라보고 싶다면 무조건 대장봉에 올라야 해요. 고군산군도 한복판에 있는데다 주변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최고의 촬영 포인트니까요.” 고군산군도의 문화해설사이자 대장봉 기슭에서 펜션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운영하는 윤연수 씨가 귀띔해준다. 만약 대장봉에 오른다면 미리 물때를 잘 확인하자. 짙푸른 바닷물이 가득 차오른 고군산군도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조망하고 싶다면 말이다. 대장봉은 정상까지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른데, 암벽 사이로 설치한 로프를 잡고 내려와야 하는 험준한 하산길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선유도 남쪽에선 색다른 하이킹에 나설 수 있다. 선유대교를 지나 서쪽 해안으로 이어진 데크로 향해보자. 쪽빛 바다 위로 삼도귀범(三島歸帆)이라 불리는 3개의 무인도를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하면 한적하게 쉬어 갈 수 있는 옥돌해변과 마주친다. 가는 도중 계단 아래로 이어진 갯바위는 최적의 낚시 포인트. 데크 건너편에 곧게 솟아 있는 선유봉은 군산에서 나고 자란 고은 시인이 한국 전쟁 때 피란 와 시를 짓던 곳이라고 한다.

왼쪽: 고군산군도의 역사와 명소를 알려주는 문화해설사 윤연수 씨. 오른쪽: 대장봉 하이킹을 마치고 맛본 서대 양념구이 © 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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