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8화. 엠프티 카메라: 세계라는 맥락을 지휘하다

나무를 심지 말고 기후를 심어라

by 김동은WhtDrgon

우리가 숲을 만든다고 상상해 봅시다.

과거의 3D 디자이너나 화가들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어야 했습니다. "여기는 소나무, 저기는 참나무, 잎사귀는 뾰족하게..."

하지만 AI와 함께 세계를 짓는 지금, 이런 미시적인 지시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무의 수종(Species)을 지정하는 식물학적 지식이 아닙니다. "이 숲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세계관적 맥락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강원도 홍천의 별장에서 바라본 숲과, 미국 켄터키주 별장에서 바라본 숲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두 숲 모두 '나무와 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곳을 흐르는 공기의 질감, 햇살의 각도, 자생하는 식물의 색감, 심지어 그 숲이 풍기는 정서(Sentiment)까지 모든 것이 다릅니다.

8.png


단 3개의 키워드

숲 - [홍천] - [한국]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AI는 [홍천]이라는 키워드에서 적합한 정보를 추출하고 구성합니다.

수종: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기후: 사계절, 습한 여름, 눈 내리는 겨울

빛: 부드러운 산란광, 안개 속 여명

색상: 짙은 녹색, 회갈색, 청회색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절 종소리

정서: 고요함, 경건함, 쓸쓸함


숲 - [켄터키] - [미국]

같은 "숲"이지만:

수종: 침엽수, 너도밤나무

기후: 건조, 강렬한 햇빛

빛: 직사광, 강한 명암

색상: 황토색, 갈색, 회색

소리: 매 울음소리, 바람에 구르는 나뭇가지, 침묵

정서: 고독, 거친 자유, 황량함


[홍천]과 [켄터키]. 이 단 하나의 키워드 차이가 전체 세계를 재구성합니다.

이것이 "기후를 심는다"의 의미입니다. 나무 1000그루를 일일이 지정하지 않습니다. [홍천]이라는 기후를 심으면, 그 기후에 맞는 모든 요소가 자동으로 정렬됩니다.


키워드는 무한히 연결된다


하지만 [홍천]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다른 키워드를 계속 연결할 수 있습니다. 01화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태블릿이라는 단어는 중립적이지만, [돌], [십계명], [영구성]과 연결되면 모세의 태블릿이 되고, [유리], [앱], [일시성]과 연결되면 아이패드가 된다고.

[홍천의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연결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됩니다.


감정을 연결하라

"홍천의 숲"

여기에 당신은 무엇을 더할 수 있습니까?


[[슬픔]]을 연결하면:
→ "슬픔을 머금은 홍천의 숲"
→ 색상이 더 어두워집니다
→ 안개가 더 짙어집니다
→ 빛이 더 흐릿해집니다
→ 나뭇잎이 축 처져 있습니다


[[기다림]]을 연결하면:
→ "누군가를 기다리는 홍천의 숲"
→ 오솔길이 보입니다
→ 멀리 보이는 빈 벤치
→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이별]]을 연결하면:
→ "이별이 일어난 홍천의 숲"
→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 떨어진 낙엽들
→ 뒤돌아보는 듯한 나무의 자세


당신은 "나뭇잎을 10도 아래로 꺾어라"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슬픔]]이라는 키워드를 연결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AI는 그 감정을 모든 시각적 요소에 반영합니다

.

사건, 인물, 사물, 소리

감정만이 아닙니다.

사건:

[[화재 이후]]의 홍천 숲 → 검게 탄 나무, 재, 새싹

[[전쟁이 지나간]]의 홍천 숲 → 탄피, 무너진 참호, 야생화

인물:

[[어머니가 걷던]]의 홍천 숲 → 오솔길, 따뜻한 빛, 익숙함

[[도망자가 숨은]]의 홍천 숲 → 깊은 그림자, 위협적 고요

사물:

[[버려진 집]]이 있는 홍천 숲

[[물레방아]]가 있는 홍천 숲

[[비석]]들이 있는 홍천 숲

소리:

[[폭포 소리]]가 들리는 홍천 숲

[[아이들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홍천 숲

[[총성]]이 울린 홍천 숲

이 모든 키워드가 서로 호환됩니다. 감정이 색깔이 되고, 사건이 질감이 되고, 인물이 빛의 온도가 되고, 소리가 공간의 밀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슬픔을 머금은 홍천의 숲, 어머니가 걷던 오솔길, 이제는 비어있는"

이 한 문장에 압축된 정보를 보십시오. 그리고 AI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펼쳐낼 수 있습니다.


도구를 건너뛰고 본질에 닿다

여기서 우리는 창작 역사상 혁명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숲

<라쇼몽>(1950)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숲 장면 하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교토 근교의 나라 지역 숲에서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단순히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둠이 깃든 숲"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특정 시간대(이른 아침)를 기다려 햇빛 각도를 맞췄습니다

나무 사이로 빛이 '창살'처럼 보이도록 카메라를 배치했습니다

반사판으로 배우 얼굴에 비치는 빛을 조절했습니다

여러 차례 촬영하며 구름의 움직임을 계산했습니다

물질적 도구(카메라, 빛, 시간)를 섬세하게 조작하여 무형의 것(어둠, 불신, 진실의 부재)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탤지어>(1983)에서 물이 천천히 흐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로 낡은 수도원에 물을 채웠습니다. 촬영에만 몇 주가 걸렸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의 정체와 향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물을 채우고

물이 고이는 것을 기다리고

특정 각도에서 촬영하고

배우가 그 물을 천천히 걸어가게 하는

물질적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이제 우리는 이렇게 씁니다.

"인간 본성의 어둠이 깃든 홍천의 숲, 빛은 창살처럼 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온다"

"시간이 정체된 공간, 물이 바닥에 고여 있고, 주인공이 천천히 걸어간다. 발걸음마다 파문이 일지만 곧 멈춘다"

AI가 시각화합니다.

우리는 물질적 도구(카메라, 렌즈, 빛, 실제 물)를 건너뛰고 무형의 표기(어둠, 정체, 향수)에 직접 접촉합니다.

이것이 혁명입니다. 과거에는 무형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물질을 조작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무형의 것을 직접 말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의 시점: 세계를 보는 창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에 도달합니다.

세계가 있습니다. 홍천의 숲이 있고, 거기에 슬픔이 깃들어 있고, 어머니가 걷던 오솔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디서 바라볼 것입니까?


게임 엔진의 카메라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3D 엔진에서 일하는 분들은 익숙할 것입니다. 3D 공간에는 건물, 나무,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카메라가 없으면 화면에 표시되지 않습니다.

엔진에서는 '카메라 오브젝트'를 배치합니다. 이것은 실제 물체가 아닙니다. 빈 좌표점에 '카메라 속성'을 부여한, 비어있는 눈입니다.

이 가상의 카메라가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같은 3D 공간도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 전략 게임 시점

1인칭 시점 → 몰입형 FPS

3인칭 추적 → 액션 어드벤처

카메라의 위치가 곧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뷰와 뷰포인트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뷰(View) = 보이는 것. 홍천의 숲, 그 자체.
뷰포인트(Viewpoint) = 그것을 보는 위치.

"호숫가에 집이 한 채 있다."

이 문장을 썼을 때,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뷰포인트를 설정한 것입니다.

호수 건너편에서 집을 바라보는가?

집 안에서 호수를 바라보는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가?

같은 집, 같은 호수. 하지만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엠프티 카메라

저는 이 보이지 않는 관찰자의 위치를 '엠프티 카메라(Empty Camera)'라고 부릅니다.

영화 촬영장에는 실제 카메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엔진에서는, AI가 만드는 세계에서는 물리적 카메라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데이터인 공간.

하지만 그 세계도 결국 화면에 보여져야 하기에, 우리는 관찰 지점이 필요합니다. 카메라가 없으면 장면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의 존재를 가정합니다.


엠프티 카메라: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를 담아내는 빈 그릇

아무 색깔도 없지만, 세계의 색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렌즈

이 카메라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세계관이 카메라를 채운다

과거 영화 제작에서 카메라맨은 물리적 기술로 연출했습니다.


핸드헬드로 흔들기 (긴장감)
고정 트라이포드 (안정감)
슬로우 모션 (서정성)

하지만 디지털 세계 창작에서는 다릅니다. 우리는 세계 자체의 속성을 바꿔서 감정을 전달합니다.


지진 장면

기존 방식 (카메라 흔들기):

"카메라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어서 지진의 느낌을 연출한다"

세계관 방식 (세계 상태 정의):

"이 세계의 지반이 불안정하다. 중력이 흔들리고, 건물들이 삐걱거린다. 먼지가 떨어지고, 샹들리에가 흔들리며, 바닥의 물잔이 파문을 일으킨다. 석양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며 불안하게 떠다니는 먼지를 비춘다."

차이가 보이십니까?

기존 방식은 카메라라는 도구를 조작했습니다.
세계관 방식은 세계의 속성을 정의합니다.

여러분은 '카메라를 어떻게 흔들지'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계가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AI는 그 세계의 불안정함을 모든 디테일에 반영합니다.


히치콕의 현기증

알프레드 히치콕은 <현기증>(1958)에서 유명한 '버티고 효과(Vertigo Effect)'를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느끼는 공포를 시각화하기 위해:

줌 인과 동시에 카메라를 뒤로 빼는(Dolly Zoom) 기법을 발명했습니다

특수 제작한 레일 위에서 촬영했습니다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쳐 정확한 타이밍을 잡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인공이 느끼는 현기증. 세계가 동시에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공간이 왜곡되고, 중심을 잃는 느낌. 바닥은 멀리 있지만 동시에 당기는 것 같다."

이렇게 쓰면 AI가 그 감각을 시각화합니다. 우리는 카메라 기법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감각을 직접 표현했습니다.


카메라를 기울이지 말고, 대륙을 기울여라

여기서 우리는 더 급진적인 통찰에 도달합니다.


더치 앵글의 한계

영화에서 긴장감이나 불안감을 주기 위해 카메라를 비스듬히 기울입니다 (더치 앵글, Dutch Angle).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장면, <인셉션>의 꿈 속 장면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카메라의 물리적 조작입니다. 세계는 정상이지만, 우리가 세계를 비스듬히 보는 것입니다.

디지털 세계 창작에서는?

카메라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 자체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대륙은 지금 15도 기울어져 있다. 중력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건물들이 비스듬하고, 사람들은 경사면을 걸으며 산다. 물은 비스듬히 흐르고, 나무는 한쪽으로 자란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능합니다. 전체가 이미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집착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터스텔라>(2014)에서 중력이 다른 행성의 파도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물을 사용한 대형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물 분사 기계를 동원했습니다

대규모 CG 작업으로 파도의 스케일을 키웠습니다

몇 달간의 후반 작업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행성"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행성에서는 시간이 지구보다 7배 느리게 흐른다. 파도가 산처럼 높지만, 천천히 움직인다. 물방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력이 강해 모든 것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렇게 쓰면 AI가 구현합니다. 우리는 물 분사 기계도, CG 팀도 필요 없습니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직접 정의합니다.


초현실을 현실로

과거에는 "비 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면

실제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거나

비 기계를 빌려서 물을 뿌리거나

CG팀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내리는 비. 땅에서 하늘로 물방울이 솟아오른다. 중력이 역전된 세계. 주인공만 정상적으로 서 있다."

"마이너스 광원. 빛을 내뿜는 게 아니라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태양. 주변이 밝아질수록 이 태양은 더 검게 보인다."

"이 숲에서는 감정이 물질화된다. 슬픔은 파란 안개가 되어 땅을 기고, 분노는 붉은 번개가 되어 하늘을 가른다. 기쁨은 금빛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물리 법칙은 우리가 정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 전체가 우리가 설계하는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구로사와가, 타르코프스키가, 히치콕이, 놀란이 물질적 도구를 흔들고 가리고 각도를 조정하며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무형의 것들.


우리는 이제 그 무형에 직접 접촉합니다.


카메라는 세계의 증인이다

엠프티 카메라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목격하는 것.

여러분이 "호숫가의 집"이라고 말했을 때, 그 세계는 이미 여러분 머릿속에 존재합니다. 안개가 자욱한지, 햇살이 밝은지, 집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엠프티 카메라는 그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어느 각도에서 바라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도구입니다.


몰락한 귀족의 저택


세계관 설정:

"이 저택은 100년 전 화려했지만 지금은 파산 직전이다. 주인은 자존심 때문에 하인을 해고하지 못하고, 하인들은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충성을 지킨다."

이 세계관이 있습니다. 이제 카메라 세 개를 배치합니다.


[카메라 1: 홀 중앙에서]

"넓은 홀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색이 바랬고, 대리석 바닥은 닦이지 않아 먼지가 쌓였다. 하지만 계단의 난간은 여전히 금빛으로 빛난다."

관객이 느끼는 것: 과거의 영광, 현재의 퇴락


[카메라 2: 하인의 방에서]

"부엌 구석 하인의 방에서 복도를 바라본다. 좁은 문틈으로 보이는 저택의 화려함. 하지만 내 방은 좁고 어둡다. 벽에 걸린 주인 가문의 초상화가 나를 내려다본다."

관객이 느끼는 것: 계급의 간극, 충성과 궁핍


[카메라 3: 주인의 서재에서]

"서재 창가에 앉아 정원을 바라본다. 잡초가 자란 분수, 깨진 조각상. 책상 위 독촉장 더미. 하지만 내 손에 든 와인잔은 여전히 크리스탈이다."

관객이 느끼는 것: 자존심, 부정, 집착

같은 세계관. 세 개의 카메라. 각 시점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달됩니다.


구로사와의 라쇼몽 다시 보기

<라쇼몽>은 같은 사건을 네 명의 시점에서 보여줍니다. 강도, 무사, 아내, 나무꾼. 같은 숲, 같은 사건. 하지만 누가 보느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집니다.

구로사와는 이것을 위해 네 번의 촬영을 했습니다. 각 시점마다 카메라 위치를 바꾸고, 조명을 다르게 하고, 심지어 같은 대사도 다르게 들리도록 연출했습니다.

우리도 같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으로 카메라를 옮기지 않습니다. 세계관 안에서 엠프티 카메라를 재배치할 뿐입니다.


AI 시대의 카메라 워크

이제 실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1단계: 세계의 상태 정의

AI에게 개별 사물을 나열하지 마십시오. 세계 전체의 분위기와 상태를 정의하십시오.

나쁜 예: "소나무를 그려줘. 옆에 참나무도. 바위도 있어. 하늘은 파랗게."

좋은 예: "장마가 끝난 직후의 한국 산골 숲. 안개가 계곡을 메우고, 나뭇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공기는 축축하고, 흙냄새가 짙다. 오후 3시쯤의 흐린 빛."

두 번째 방식은 AI에게 세계관을 전달합니다. AI는 그 맥락을 이해하고, 한국 산골에 어울리는 나무 종류, 이끼의 질감, 안개의 농도를 스스로 판단합니다.


2단계: 카메라 위치 지정

세계가 정의되었으면, 이제 어디서 볼 것인가를 정합니다.

예시 A: 아이의 시점

"같은 숲을, 키 작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다. 나무들이 거대하게 보이고, 축축한 낙엽이 발밑에서 질척거린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

예시 B: 산 정상에서

"같은 숲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다. 계곡을 메운 안개 바다 위로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 있다. 조망이 넓고, 세상이 고요하다."

같은 세계관, 다른 카메라 = 완전히 다른 감정.


3단계: 감정과 세계의 동기화

가장 강력한 연출은 세계의 상태가 감정을 대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절망적인 상황

세계의 반응: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가랑비였지만 점점 세어진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고이고,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다 꺼진다. 바람이 불면서 쓰레기통이 넘어진다."

여러분은 "주인공이 절망스럽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미장센(Mise-en-scène)의 본질입니다. 화면 안의 모든 요소가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에는 이것을 위해 실제 비를 뿌리고, 가로등을 껐다 켰다 하고, 쓰레기통을 쓰러뜨려야 했습니다.

이제는 "이 세계는 지금 절망적이다"라고 정의하면, 모든 요소가 그 정서에 맞춰 정렬됩니다.


엠프티 카메라의 의미

엠프티 카메라는 기술 용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작자의 태도입니다.


세계를 만들 때

개별 사물(나무, 의자, 벽)을 배치하려 하지 마십시오

대신 세계의 기후와 정서를 정의하십시오

그리고 그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카메라)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은 더 이상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창조자입니다.


하지만 그 빛이

형광등 불빛인지

새벽의 여명인지

종말 직전의 붉은 석양인지

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여러분의 세계관입니다.


07화에서 당신이 상상한 "호숫가의 집"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당신은 그 집에 [[슬픔]]을 연결할 수 있고, [[어머니]]를 연결할 수 있고, [[이별]]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엠프티 카메라를 배치할 수 있습니다. 호수 건너편에서 볼 것인지, 집 안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다볼 것인지.


"이곳은 홍천의 숲처럼 고요하지만, 켄터키의 황야처럼 외로운 곳이다."

이 한 문장이, AI가 만들어낼 수천 개의 디테일을 결정합니다.

엠프티 카메라는 비어있지만, 여러분의 세계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투명한 렌즈를 통해, 세계가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십시오.


이 글에서 저는 AI를 많이 언급했습니다. "AI에게 이렇게 말하면", "AI가 이것을 구현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AI는 아직 여기 기술된 것처럼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슬픔을 머금은 홍천의 숲"이라고 입력했을 때, AI가 제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번 시도해야 할 수도 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AI와 컴퓨터가 있기 전부터, 워드프로세서와 타자기가 있기 전부터, 만년필과 원고지가 있기 전부터, 인류는 이것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도구가 없어도 세계는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들은 나무판으로 만든 무대 위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무대는 나무판이었지만, 관객은 그 위에서 올림포스 산을 보았고, 트로이 전쟁을 목격했고,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체험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이라는 지문 하나로 시작됩니다.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그 차가운 성벽을 느꼈고, 유령이 나타날 것 같은 안개를 상상했습니다.

무대가 나무판으로 만들어졌더라도, 관객은 그 위에서 수천 년 전 영웅들의 사랑과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톨킨은 타자기로 <반지의 제왕>을 썼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종이에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렸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그들에게 AI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세계관이 있었습니다.


해리포터의 역무원에게도 어머니가 있다

J.K. 롤링의 <해리포터>를 보십시오. 9와 3/4 승강장에서 표를 확인하는 역무원이 나옵니다. 그는 극중에서 대사 한 줄 없습니다. 이름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그가 왜 역무원이 되었는지, 집에 돌아가면 누가 기다리는지. 롤링이 그것을 쓰지 않았어도, 우리는 그 세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기차에서 신비한 마법과자를 팔던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첫사랑이 있었고, 지금은 이 기차에서 과자를 팔고 있습니다. (실은 이 할머니는 설정이 존재합니다.)

극중에 나오지 않아도, 그 세계는 그곳에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관입니다. 타임라인 밖에서도 세계는 계속 숨 쉬고 있습니다.


04화에서 우리는 말했습니다. 스토리는 어떤 인물의 타임라인일 뿐이라고. 세계관은 그 타임라인이 가로지르는 세계 그 자체입니다.

해리 포터가 9와 3/4 승강장을 지나갈 때, 그것은 해리의 타임라인 위의 한 점입니다. 하지만 그 승강장은 해리가 오기 전에도 있었고, 해리가 떠난 후에도 있습니다. 역무원은 계속 그곳에서 일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합니다.

AI가 이것을 완벽히 구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는 이미 여러분 머릿속에 있습니다.


기술은 바뀌지만 본질은 남는다

10년 후, 20년 후, AI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슬픔을 머금은 홍천의 숲"이라고 말하면, 정말로 그 슬픔이 안개가 되어 피어오르는 장면을 완벽하게 구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중요한 것은 AI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슬픔을 머금은 홍천의 숲"을 상상할 수 있느냐입니다.

도구는 계속 바뀔 것입니다.

오늘은 AI

내일은 뇌파로 직접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

모레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무언가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무엇인가?"
"그 세계는 어떤 기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 세계를 어디서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만년필로 쓰든, 타자기로 치든, AI에게 말하든, 심지어 아무 도구 없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든 똑같습니다.


엠프티 카메라의 진짜 의미

그래서 엠프티 카메라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장비와 도구와 물질에 매몰되지 않고, 본래 꿈꾸던 작가의 작품 세계로 더 나아가는 것.


과거 창작자들은 카메라의 한계, 필름의 한계, 예산의 한계, 물리 법칙의 한계와 싸웠습니다. 그들은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있습니다. 이 도구는 많은 물질적 한계를 제거해 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진짜 목표는 도구의 완성이 아니라 세계관의 구현입니다.


여러분이 평생 꿈꿔온 그 세계. 밤에 잠들기 전 머릿속에서 걷던 그 숲.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도시. 일기장에 끄적였던 그 인물들.

그것들을 세상에 꺼내는 것.

AI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그 세계를 정의하고, 그 기후를 심고, 그 카메라를 배치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AI로 구현할 것이고, 누군가는 글로 쓸 것이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그릴 것이고, 누군가는 무대 위에 올릴 것입니다.

도구는 다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같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증언하는 것.

엠프티 카메라는 비어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어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세계로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AI가 없어도, 컴퓨터가 없어도, 카메라가 없어도.

여러분 머릿속에 세계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할 것입니다. 도구는 진화하고, 기술은 발전하고, 언젠가 여러분이 상상한 그대로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 세계를 처음 상상한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그것이 창작자의 본질입니다.

이제 내 머릿속의 이 추상적이고 시적인 세계관을, AI가 알아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로 바꿀 차례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키워드'를 수집하고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2025 김동은 WhtDrgon @ MEJEworks. All rights reserved.


keyword
이전 07화07화. 호숫가의 집: 세계관은 관문 안쪽에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