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관능, 일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 《열쇠》를 읽고
난 법적인 부부관계라면, 그것도 중년의 부부라면 서로에게서 성적인 열정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했다. 왜냐하면 성욕이란 판타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같이 살 맞대며 수십 년 같이 산 부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열쇠>를 읽으면서 미처 몰랐던 관능을 배웠다. 부부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서로에 대해 성적 환상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제아무리 수십 년을 함께 한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히 정복하거나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니까. 내가 미처 모르는 상대방의 면모들, 감춰진 모습들이 환상을 자아내는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난 이성에게서 미지의 열망을 느끼는 것도 강렬하다. 하지만 여태껏 함께해 온 배우자를 보며 아직도 이 사람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구나, 새삼 호기심을 느끼는 건 얼마나 신비한가.
부부라도 서로에게 자신의 내면과 사생활을 모두 열어놓을 수는 없다. 서로를 완전히 알려고 해도 완전히 알 수 없다. <열쇠>에서 이들은 한 집에 살면서도 각자 자신의 진심을 혼자만의 일기장에 몰래, 닫힌 문 안에서, 숨죽여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내심 자신의 마음이 읽히기를, 들키기를 기대한다. 부부이면서도 어디까지나 남인 상대방을 우리는 이해할 수도 있지만 오해하기도 한다. 서로를 뻔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 그 간극이 상대방을 다시금 갖고 싶게 만드는 것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