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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gative Narrative_16:00(Thu)

by 백승권

올해 너무 길었어


4계절 내내 엉망진창

너무 추웠고 슬펐고 어려웠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목소리 높여

짜증을 내기도 했어요


아침점심저녁밤새벽 내내

심연이 짓눌리고 있었고

눈앞이 어둡고 어지럽고

걸음이 납덩이같았고


공기의 온도가 바뀌고

바람이 아무리 포근해도

밤이 깨질 듯 맑고 깨끗해도


매일이 낯설고

오가는 길의 기분이 더럽고

하염없이 우울했어요


정신 상담 관련 기관에

직접 전화해 문의하며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오랜 시간을 들여 알아볼 정도로


치밀하려 했지만

치졸하게 끝나는 경우가

너무 잦았어


벽을 뚫으려 대가리 터지도록 덤볐지만

핏물과 살점만 떨어져 나가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되려 벽은 너 때문에 더럽혀 졌다고

목을 움켜쥐며 부러뜨리려 했고


방어할 채비를 할 겨를 없는 급습을

의식을 잃을 때까지 당한 적도 있어요

이건 의견의 대립이 아니라

러시안룰렛이고 난도질이구나

묻지 않은 대답과 언어를 가장한

흉기가 오가는구나


말할수록 말하기 싫은

입술에 묻히기 싫은

공기에 떠다니는 게 싫은

달팽이관으로 다시 들어오는 게 싫은

그래서 다시 기억으로 진입하는 게 싫은

싫음 위에 덧씌워지는 너무 싫음


오랜 시간 목숨을 걸어가며

날을 갈아 (나를) 잘라냈어요

신경을 끊고 뜯어내고

원본의 물체에게서 도려냈어요

그리고 조금씩 느끼지 않기로 한 건지

그러다 느껴지지 않는 건지


(intermiss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이게 올해의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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