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지기 친구의 (어쩌면 헤드뱅잉 하는) 뒷모습
회사에서 매년 모 페스티벌 티켓을 선착순 배포한다.
지금까지 나의 동행은 고민 없이 카를로였다. 동생이 좋아하는 밴드 넬이 나올 때는 동생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페스티벌을 떠올렸을 때 바로 떠오르는 동행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연히 ‘언젠가 직장을 그만둘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자 그제서야 엄마가 생각났다.
옆자리에 앉은 엄마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올해 라인업에는 윤도현밴드가 껴있었는데, 어릴 적 드라이브할 때면 '사랑했나 봐'나 '가을우체국 앞에서'와 같은 명곡들을 외울 정도로 들었던 터라 엄마를 데려가도 되겠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단둘이 갈 자신은 없었다. 동생은 이승환, 국카스텐이 나오는 락 페스티벌도 엄마랑 함께 다녀오던데, 나는 엄마와 둘이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어색했다. 그래서 티켓 한 장을 당근으로 추가 구매해서 세 모녀 첫 페스티벌 경험을 주선했다.
경기도에서 난지공원까지 거진 두 시간이 걸리는 엄마와 동생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데리야끼 닭목살 덮밥과 에그마요 샌드위치를 만들고, 감자칼로 햇배를 두 알 깎고 토마토 두 주먹을 도시락통에 담았다. 엄마가 눕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돗자리 두 개. 직접 얼린 대형 원형 얼음 10조각과 생수, 양산까지 챙겼다.
무거운 짐을 편하게 운반하기 위해 바퀴가 탈부착인 가방도 준비했다. 공연장 안에는 바퀴 달린 가방이 금지되니 입장할 때 바퀴를 잠시 떼면 되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알리에서 샀다)
이래 놓고 수저를 두고 오는 참 나다운 실수를 했다.
서울에 살아 난지공원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나는, 미리 입장해 돗자리를 펴놓고 행사장에서 나눠주는 좌식 의자와 음료를 받아 놓았다. 소개팅에서 만난 이성과 두 번째 데이트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출발한 동생과 엄마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청양고추를 크게 썰어 넣어 매콤한 닭목살 덮밥은 칭찬에 박한 엄마의 인정을 얻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동생에게 팔리지 못했다. 목살이라고 듣고 보니 징그럽고 불쌍해서 못 먹겠다고 수저를 내려놨다. 하지만 에그 샌드위치는 남김없이 해치웠다. 덮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동생이 치즈 크러스트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여 나폴리 피자를 배달 주문했다. 동생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보더니 나폴리 피자를 고르는 게 퍽 웃겼다. 하지만 그냥 피자에 방울토마토 몇 개 올라가 있을 뿐 영락없는 서울 피자였다.
페스티벌의 묘미는 역시 스탠딩이다. 돗자리를 펴놓고 즐기다가 신나는 무대가 있으면 스탠딩으로 달려가 뛰어노는 재미. 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스탠딩을 설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 무대인 윤도현밴드 때만 제발 같이 나가자고 애원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너무나 쉽게 스탠딩에 나왔다(!) 윤하가 비교적 최신 히트곡(이라 엄마는 아마 처음 들어봤을) ‘사건의 지평선’을 부를 때도, 지루해하지 않고 박수 치고 감탄하며 무대를 즐겼다(!).
생각보다 잘 즐기는 엄마를 보고, 다음 무대인 에픽하이 때도 나가겠느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웬걸. 엄마는 본 헤이터를 부르는 에픽하이 무대로 함께 뛰어나갔다. 중간에 화장실 이슈로 스탠딩석을 빠져나가긴 했지만, 힙합 비트 아래 엄마와 방방 뛰게 되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가장 기대했던 윤도현밴드의 공연을 기다리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윤도현이 뭐 불렀으면 좋겠어? 나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오늘따라 의외스러움 투성이었던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엄마는 박하사탕”
가장 ROCK적이고 인생에 회의적인 스탠스를 취한 박하사탕을 고를 줄은 몰랐다.
윤도현밴드의 헤비메탈 신곡 Rebellion 속 목소리를 긁는 그로울링을 들으며 엄마와 헤드뱅잉을 했다. 엄마와 머리를 흔들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뿌듯하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덮쳤다.
왜 이제야 데려왔지라는 후회
앞으로 이런 곳에 더 많이 함께해야겠다는 다짐
내가 아는 집순이 문학소녀 엄마의 모습은 뭐지 하는 혼란
엄마가 젊을 때 자식을 낳아 놓으니 이렇게 같이 놀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
지금 이 순간이 우리 가족의 오랜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는 게 벌써 느껴졌다.
너무 오래 같이 살다 보니 ‘엄마는 이런 걸 싫어할 거야, 아마 이렇게 반응할 거야’라며 다 아는 듯 치부해 버릴 때가 있다. 물론 평소의 생활 반경 안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네 엄마들은 자식들의 예측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면? 예상과는 다른 이십 년 지기 친구의 (어쩌면 헤드뱅잉 하는) 뒷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다짐했다. 엄마와 더 자주 안전지대를 벗어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