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는 마음
사람은 수많은 사실 속에 파묻혀 산다. 개중에는 까먹지 않기 위해 되뇌어야 하는 사실도 몇 가지 있다.
예컨대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라는 사실, 원망할 아버지가 부재하다는 사실, 내 인생을 책임질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나는 요즘 이 세 문장을 거의 매일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어느덧 연말에 더 가까워진 시월이다. 찬 바람이 부니 벌써 올해가 다 간 듯 자포자기하게 된다. 나는 벌써 새로운 계획을 짜기보다는 올 한 해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이 먹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던 어린이 시절에는 얼른 눈 오는 겨울이 오길 바랐는데, 이젠 여름이 더 좋다. 겨울에 움츠러드는 것도, 나이 먹는 것도 싫다.
그리하여 요즈음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다. 우울증이라든지 번아웃이라든지 어떤 라벨을 붙이기엔 밥도 잘 챙겨 먹고 뒹굴대며 착실하게 논다. 그저 연초에 야심 차게 세웠던 목표들을 이루지 못했음을 최선을 다해 회피 중이다.
글 쓸 만한 소재가 없더라도 매일 적어보리라 다짐했건만, 미루고 미루다가 크라임씬 레전드 에피소드를 다 시청하고 밤늦게서야 펜을 든다.
연말의 고질병인 무기력을 타파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러닝에 재미 붙였다는 H언니를 따라 한강에 나가 잠원에서 세빛둥둥섬까지 왕복 6km 조금 안 되는 거리를 달렸다. 말이 달리기지 실은 제대로 달려본 적 없는 몸뚱어리라 2분 걷고 2분 뛰는 인터벌 트레이닝이었다.
나보다 십 센티는 큰 H언니가 겅중겅중 나아갈 때 나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으로 뛰었다. 죽을 것처럼 숨이 차 헥헥 대는 나에게 언니는 온갖 칭찬을 퍼부었다.
“처음인데 너 정도면 정말 잘 뛰는 거야.”
“너 꾸준히 하면 금방 기록 단축되겠다.”
“역시 나보다 젊어서 그런가 잘한다.” (2살 차이다)
객관적으로 잘하지 못했지만, 무한히 긍정적인 칭찬을 받으니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어쩌면 나 러닝에 재능 있을지도?
(전혀 없다)
그래서 주말에 카를로와 노들섬으로 향했다. 군인 시절, 훈련소부터 대대까지 달리기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카를로와 인터벌로 뛰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과감하게 10분 뛰고 5분 쉬고 다시 12분 뛰는 코스를 선택했다. 러닝을 시작한 지 1주일도 안 된 초보에겐 과감한 선택이었다.
2분씩 뛸 때도 죽어 나가던 나의 몸이니 당연히 10분을 견디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후자가 몸에 맞았다. 인터벌 때는 걷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할 때마다 하기 싫다는 감정이 강하게 들었는데, 10분을 통으로 뛰니 오히려 러너스 하이(!)를 느꼈다. 훈련이 끝나고도 혼자 몇 바퀴 더 뛰었다. 머릿속 자기반성을 빙자한 자기혐오는 사라지고, 그저 지금 다리를 멈추기 아쉽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왜 그 많은 위인들이 달리기를 찬양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가 텅 비는 기분. 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는 자부심.
러닝을 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는 마음에 대해 배운다.
처음 발을 뗄 때는 당장 5분 달리기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 생각은 30분 만에 틀린 것으로 판명 난다. 시계를 보지 않고 양다리를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견디면 지나간다. 분명히 지나간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나는 그냥 나의 속도대로 내 앞에 펼쳐진 길을 가면 된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가두지 말고 내 방식대로 가다 보면 대단한 걸 만나지 않아도 그 과정만으로도 의미 있을 테다.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다니, 아무래도 더 자주 뛰어야겠다.
오늘은 퇴근하고 뛰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