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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d Silence Sep 25. 2024

한 번만 더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PT를 받던 기간이 있다. 처음에 무료 PT를 받았을 때, 내게 거북목과 라운드숄더가 다른 사람보다 심하다고 했다. 트레이너 분들이 으레 하는 영업방식이려니 하고 돌아서려 했지만, 내 사진을 보고 나서는 돌아설 수 없었다.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심하게 목이 튀어나와 있었고, 어깨가 말려 있었다. 못 볼 사진을 본 듯이 부끄러워진 나는 무려 3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 하고, 이후 추가 결제를 통해 지금까지 약 1년 가까이 PT를 받고 있다.


최근에 영상에 자주 보이는 의사 선생님의 건강 조언 중 하나가 건강에 돈을 쓰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바꾸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충분치 않을 수 있고, 오랜 시간 잘못되어 온 만큼, 그 보다 긴 시간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를 이끌어줄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헬스든 필라테스든 요가든 아크로바틱한 그 어떤 것이든 좋다. 건강과 몸에 돈을 투자하고, 아끼지 말라는 조언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때였던 터라, 더 많은 금액을 결제했던 것 같다.


PT 시간이 되면 트레이너 선생님은 많은 부분을 고쳐주신다. 항상 말려있던 어깨는 내가 핀다고 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 폈다고 생각하지만 충분치 않았고, 나는 다 당겼다고 생각했지만 더 당겨야 했다. 횟수와 관련해서도 언제나 5번 더를 외치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은 이제 질리지도 않는다. 항상 불편한 자세만을 찾아주는 선생님이 싫어, 조금만 배우고 혼자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혼자서 운동한 이후에 몸이 잘 변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의사선생님이 왜 돈을 쓰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사실 운동이란게 운동 전과 후가 조금이라도 달라야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내가 땀을 조금 흘리는 정도로 해서는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러나 그러려고 하는 운동이 아니지 않는가. 운동을 통해 조금이라도 건강해지고 체력이 증진되어 일상을 좀 더 수월하고 멋있게 살아보려고 하는 운동인데, 운동 전후에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 다면 재미도 없고 하기 싫어질 것 같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정도의 운동은 운동의 목적을 달성 시킬 수 없으며, PT 결제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싶다. 사실 선생님의 채찍질이 필요한 부분은 운동 뿐만은 아니다. 보고서 한 줄을 어떻게 쓸 지 조금 더 고민해야 할 때, 보고드릴 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혹은 다른 팀원들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자칫 고민이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쉽게 흐트러지는 부분이다. 팀장님은 이래저래 팀원들을 다독이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면 전달되지 않고, 팀원들의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팀장님의 이름을 한 PT쌤은 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조금만 더 를 외친다.


 이렇게,저렇게, 다른 방향, 조금 더, 한번만 더, 이번이 마지막. 최종의 최종의 최종. 작업의 마지막 장은 알 수 없고, 어느 샌가 끝이라고 생각한 그 시점에 다시 돌아와 있다. 상식의 정의란 상대적이어서, 나의 마지막은 타인의 마지막이 아니며, 나의 결론은 누군가의 서론이다. 직급이 낮을수록, 직장내의 PT쌤은 많아지고, 내가 들어야할 보고서의 숫자는 갈수록 무겁고 많아진다. 이 작업이 끝나면 나의 일에 대한 근육, '워킹머슬'은 얼마나 더 늘어 있을까. 운동을 해봐서 알지만, 근육은 그리 쉽게 붙지 않는다. 아마 '워킹머슬'도 그러지 않을까.


그 의미를 따져보는 것은 나중에 하자. 나는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작업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며, 그 다른 사람이 상사일때는 나의 의견이 더 의미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어쩌면 나중에 큰 배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니까. 차라리 왜 이런 지시가 이뤄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이 작업의 끝은 어떻게 될까. 그것이 작업의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으며, 내가 생각한 방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면 그 다름의 원인이 경험인가 스타일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운동이든, 회사의 프로젝트든 정답이 없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운동의 목적, 근육의 결, 골격의 방향을 고려할때, 운동은 정답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수많은 트레이너들 각각의 의견들이 다 다르다. 풀스쿼트를 해야한다 부터 시작해서, 스쿼트 보다 런지가 낫다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의견들이 운동에도 존재한다. 회사 내 프로젝트도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지만, 사실 그 프로젝트 매니저에 따라 가는 길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내비게이션조차도 목적에 따라 여러갈래 길을 추천해주지 않는가. 물론  운동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점, 그래서 돈을 받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의미없고 오답같은 한번 더가 언젠가 내게 의미를 가질 날이 온다고 믿는 것. 가까이서 볼 때 비극 같았던 하루가 멀리서 볼 때 희극일 수도 있다고 믿는 것. 땀 흘린 것이 억울한 것 보다, 흘린 땀의 양이 적었던 것이 억울해지는 것이 더 무서울 수 있는 것. 언젠가 시간이 지났을 때, 웃으며 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 상처가 흉터가 되는 날이 오고, 아픔에 굳은 살이 생기는 날이 오면, 나는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것. 아무리 비가와도 언젠가 쨍하고 해뜰날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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