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도 나를 탓할까

존재의 무가치함을 이겨내고 나를 회복하는 연습

by 박고래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어머니와 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어머니께 누군가와 갈등이 있었는데 잘 해결됐다는 말을 하는데

"넌 원래 좀 파이터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별안간 나를 공격적이고 다툼 많은 사람으로 규정짓는 말이라니.

(당신, 정녕 내 안의 파이터를 보고 싶은 건가요?)


비난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골이 나진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늘 가족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어왔다.

내가 가족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쓸모없고 무가치한 존재


내가 그렇게 문제아였냐 하면 실상 그렇지도 않다.

객관적 시각에서 보자면 언니와 비교해 난 양반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즐겨 잡수시고 통금은 엿 바꿔 먹는 언니랑 달리

나는 사춘기 때 집에서 짜증 좀 냈을 뿐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조용하고 말 잘 듣는 다정한 아이였다.



언니는 ‘옷 살 거니 돈 달라’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는데

나는 어머니께서 힘드실까 용돈 달라는 말도 못 했다.

어디서 받은 사이즈 큰 신발을 신고 촌스러운 옷을 말없이 입어내는 아이였다.



학교를 다녀와 어머니 퇴근 전까지 집 청소와 빨래까지 해놓는

그야말로 성숙한 아이였다. (근데 이제 공부도 잘하는…)



집에서 늘 미움만 받는 게 억울했다.

꽤 괜찮은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까지 가족들이 날 미워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이유를 찾고 또 찾다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가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존재로서 그냥 미움받는 천덕꾸러기 미운오리 새끼.





내 탓이 아니야


물론 난 꽤 예민한 아이긴 했다.



근데 솔직히 집에서 맨날 비난과 무시를 당하고,

부모님은 갈등으로 이혼해 아버지도 없고,

그 어린 나이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1년마다 이사하는 환경에

정서가 안정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을 만든 어른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집에서 늘 문제아로 취급당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있었던 할머니는 유일한 손자와 내가 다투면 늘 나만 혼냈다.

그 손자 놈은 우리가 싸우면 어차피 누나만 혼난다고 나를 골렸다.



할머니는 밥을 주지 않고 내 머리를 잡고 벽에도 찧었는데,

어머니는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할머니의 왜곡된 말만 믿고 무조건 나만 비난했다.

그때 나는 내 사지를 결박하고 나를 때린 할머니와 어머니가 미웠던 게 아니라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으며 내 삶이 무가치하다는 믿음 때문에 오래 시들렸다.



설상가상 어머니는 이럴 거면 이혼한 아버지한테 가라며 아버지를 불렀다.

부모에게도 존재를 거부당한 나는 참 처량했고, 아버지 앞에서도 몹시 부끄러웠다.

비난과 버림을 받은 어린이는 어른이 되도록 내내 불안하고 우울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비난과 낮은 자존감은 디폴트였다.


책「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 유형 4 인간관계를 위협하는 위선적인 도덕형

“책임감이 없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며 아이의 부족함을 질책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꾸짖는다.”





자기 긍정의 싹


어머니와 언니는 내가 성인이 되고서도 자주 나를 비난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발작버튼이 눌렸다.

그런 어머니는 또 나의 예민함을 비난하는 도르마무의 늪이었다.



그동안 어머니와 날을 세우는 내가 어머니 눈에는 파이터 같이 보였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를 학대하고 침범했던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하고도 절박한 공격성이었다.



이번에도 나의 존재를 ‘파이터’로 규정하는 말에

역시 '그 버튼'이 살짝 딸깍하려 했지만 쿨하게 수용했다.



"원랜 아니었는데 얼마 전부터 잘 싸우는 사람이 되어 좋아요.”

당시 실제로 내가 요즘 잘 싸우게 된 것 같아

스스로 꽤 멋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비난을 긍정으로 바꾼 건 '자기 긍정' 덕분이다.

실제로 잘 싸우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기 긍정이 조그만 변화였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도와주고 지혜를 나눠줄 어른이 없다 보니

늘 벼랑 끝에서 세상과 혼자 싸우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날 선 사회와 부딪히고 처절한 추락이 반복되며

존재의 무가치함과 세상의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런데 나이를 꽤 먹다 보니 경험과 지혜가 얕게 쌓여갔다.

세상이 조금은 덜 두려워지고, 조금은 더 당당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

'나도 힘이 생겼네?'

'내가 생각보다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네?' 생각하던 찰나였다.



내가 조금 나를 긍정하게 되니 더 자신 있어지고 여유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푸릇푸릇한 자기 긍정의 새싹을 본 것이다.






변화를 위한 3가지 노력


얼마 전부터 나는 비교적 건강하게 분노하고

무례함과 비합리적인 요구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어머니께 그만 비난해 달라고 말했다.


문장이 건조해 굉장히 덤덤하고 쿨하게 말했을 것 같지만

실은 어머니 앞에서 제발 나를 그만 비난해 달라고 눈물범벅이 되어 울부짖었었다.

언니도 나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어머니께 단도리를 쳤다.



여전히 그들에게서 나를 비난하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많이 줄었다.

덕분에 나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둘째,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는 늘 타인의 니즈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무가치한 내가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 타인의 인정에 늘 목을 맸다.

그래서 나보다 남을 우선 시 하고 내 책임을 넘어서서 자신의 일처럼 주변을 돕기 바빴다.

(물론 나에게 그런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보다 남을 우선시 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의존성이라 했다.


책「잡는 법과 놓는 법」

70p
나보다 남을 우선 시 하는 것도,
남에게 절대 의지하지 않는 것도 모두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이다.

94p
마음속에는 소외되지 않으려는 불안으로 항상 타인을 우선시하다 보니
내 감정과 욕구는 억압되어 분노와 허탈감이 누적된다.


상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 앞에 척척 원하는 바를 대령하니

고맙다고 표현하지도 않는 친구에게 때론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그 친구에게 내가 느낀 무례함을 친절히 설명하고

더 이상은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겠노라며 관계를 재설정했다.



부드럽게 내 감정을 표현할 줄 알고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는 단호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자 기존의 불건전한 관계 패턴도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특히 거절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려 하면 마치 내 존재가 거절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최대한 "내가 꼭 해야 되는 일인가?" 자문하고 거절도 해보려 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삼촌에게 도움받은 심리적 부채의 일부를 내가 대신 갚아주길 바랐다.

그땐 어머니의 부채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응당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부채를 전가하는 것이다.

내 바운더리 밖의 비합리적인 요구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만 돕는 것으로 선을 그으려 한다.


책「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연습 1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인식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게슈탈트 기도문에서 재인용)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
우리가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자아를 긍정하며 나 스스로를 수용하려 노력하려 한다.

나를 긍정하며 수용하려는 몇 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다.



1. 실패하면 나 자신에게 난사했던 비난의 총알을 좀 줄이려 한다.

이젠 너무 진지해지지 말고 내 일도 남 일 대하 듯 좀 편해져야지.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도 사람인데 실수도 좀 할 수 있지!" 하면서.



책「잡는 법과 놓는 법」

141p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실패를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완벽에 대한 강박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148p - 긍정적 자기 대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인생은 원래 어렵고 복잡한 거야"


책「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연습 6 원래의 나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라

치유는 당신이 겪고 경험한 것들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인생에서 마주하는 그 어떤 일도 가볍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우치는 과정이다.

치유는 자신과의 재회이다.
단절, 오해, 비난, 원망 이후에 자신과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하여
가장 사랑스러운 자신을 끌어안아 주어 더 이상 분열되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2. 나와 타인을 용서하려 노력한다.

용서하는 것이 마음근력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용서가 어렵다.



나 자신을 포함해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었는데 너무 많다.

용서는 결단이라 하는데, 숙명의 결단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



그 시작은 아무래도

내 어린 시절과 가장 실타래가 얽혀있는 어머니가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책「내면소통」

P584
긍정적 내면소통의 첫걸음은 용서

P585
용서는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것



「내면소통」에서는 용서는 화해가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떠올리며 속으로 아래와 같이 말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이 끼친 해악은 이제 나를 더 이상 구속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에 의해 더 이상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어떠한 증오심도 복수심도 가지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구속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늘 펼쳐지는 지금 여기가 더 중요하다.

나는 당신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않겠다.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 (593p)



어머니를 넣고 웅얼웅얼 말을 내뱉어 봤지만,

아직은 응어리가 잘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연을 끊고 나를 방치한 아버지는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 시절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어머니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도 온당치는 않다.

어머니 역시 힘든 상황 속에서 어린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 줄 만큼 여유가 없었을 거다.



과감히 어머니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을 깨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미디어를 보며 '어머니는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는 기대를 어머니에게 지우고 있었다.

부모의 의무가 맞을 수도 있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신념이자 기대로 과거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보살핌 받지 못했음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 집 어머니'는 '다른 집 어머니'와는 다르다고 그냥 받아들여 버리자.

생물학적 어머니에 너무 많은 기대를 덧씌우면 나만 아프다.



자녀에게 살가운 말과 다정함을 듬뿍 주고,

두꺼운 쿠션으로 내게 감정적 지지를 해주고,

오랜만에 집에 가면 뭐 먹고 싶었니 준비한 요리를 잔뜩 내오고,

함께 여행도 다니는 그런 따뜻한 어머니가 아닌데 어쩌겠는가.



아직 어머니를 완전히 용서하기가 어렵지만

자주 하다 보면 언젠간 정말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앞으로 계속 내가 해나가야 할 숙제다.



3. 내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려 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한 가장 선제 조건은 주변 사람들과 좋은 소통을 하는 것이다.


책「내면소통」

81p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그동안 내가 소통하고 상호작용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산물이다.

77p
나라는 존재의 성격은 내가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나와 타인의 행복에 관한 긍정적 정보 처리는 동일한 뇌 부위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방을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길이다.






어쩔 수가 없다



서른이 훌쩍 넘고서도 아직도 어린 시절의 아픔에 묶여있는 내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자신만의 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나에겐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렇다.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흔, 쉰에도 이 고민을 하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오랫동안 존재의 무가치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댔지만

이제는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용기를 내고 있다.

간단하지는 않았고, 앞으로 갈 길도 멀지만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