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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왜 중년에 더 어울릴까?

(11) 독자를 위한 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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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출간하는 일은 독자를 향해 내 글을 보이는 일이다. 독자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글은 나만 좋은 글이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어야 읽어줄 것 아닌가.


H님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에 대한 글에서 독자들이 공감하고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야 했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었다. H님의 이야기가 단순한 개인적인 회상, 어머니에 대한 가족의 아카이브가 된다면 글의 힘이 축소되기 대문이다. 스토리마이닝의 목표는 개인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 글이 건네는 보편적 가치와 맞닿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H님의 카메라가 다시 켜졌을 때, 나는 물었다.

"H님, 혹시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부분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많죠. 특히 옷 입는 취향이나 관심이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5살 육아에 직장에 힘드실 텐데, 옷에 신경을 쓰시나 봐요."

"네, 저는 아침에 옷 고르는 게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에요. 침대에 누워서 내일 뭘 입을지 생각하면서 잠드는 게 루틴이거든요."

H님은 출근 전날 저녁에 정성스레 그다음 날 입을 옷을 골라 잘 다려 걸어둔다고 했다.

"엄마가 항상 그러셨거든요. '마음까지 가난하면 안 된다. 그리고 옷만큼은 깔끔하게 입어라'라고."


나는 이때 촉이 왔다. H님을 엄마와 연결하는 접점인 패션 감각!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40대에 이른 딸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디테일하게 쓰는 것이다.


"내일 입을 옷 준비해 두셨겠네요?"

H님이 웃었다.

"물론이죠. 내일은 팔에 잘 감기는 금색시계를 차고, 짙은 녹색의 가죽재킷과 어울리는 컬러의 사피아노 가방을 들고, 마지막으로 신발은 걷기 편한 진한 레드 컬러의 술이 달린 도도한 품격을 자랑하는 로퍼로 완성해요. 그날의 스타일이 만족스러우면 이상하게도 종일 편안한 하루가 되거든요."

옷의 질감, 색,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한 착장이었다. 40대 워킹맘 옷으로 매우 세련된 코디였다.


"40대 직장인이 옷에 진심이면 어떤 점이 좋아요?"

"일단 40대는 낀 세대예요. 특히 40대 워킹맘은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니 자신을 가꿀 시간이 없죠. 육아의 흔적을 묻히고 출근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는 '40대 여성도 이렇게 세련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버골드 시계, 품질 좋은 가방, 잘 맞는 재킷... 이런 것들도 젊은 여성보다 40대가 잘 소화할 수 있거든요."

"아침에 화장하고 옷 입고 엄청나게 바쁘시겠어요."

"옷은 전날 골라 놓고, 화장은 로션 톡톡 세 번, 머리를 부드럽게 말리는 여유 같은 건 없어서 헤어 퍼퓸에 질끈 묶고요. 아침밥은 물론 포기예요."

무심히 질끈 묶어도 저리 세련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옷값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이어 물었다.

"그런데 월급 다 옷값에 쓰시는 것 아니에요?"

H님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소소하게 옷을 사기 시작한 건 정확하게 40번째 생일날부터에요. 그전에는 열심히 저축했어요. "

"오히려 한창 멋을 부릴 때에 돈을 아끼셨네요"

"옷에 관심 있으니까 사고 싶은 게 많았죠. 십 년 넘게 직장 생활하면서 제 꿈은 단순했어요. 제발 명품 살 수 있는 월급 제발 좀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니 나이에 명품 걸치면 부모 찬스네, 직업이 이상하네 라는 오해받을 거야'라고요"

"이제 명품을 살 수 있으세요?"

"40대 들어서 조금 여유가 생겼고 저에게 주는 선물을 하기로 했어요. 맘에 꼭 드는 것들을 매년 딱 하나 사는 거죠. 스카프 같은 거요. 백화점은 안 가고 아웃렛에서도 구해요. 제가 보는 눈이 있잖아요. 잘 골라요."

H 님은 직장생활 10년 월급을 알뜰이 모아 결혼통장을 마련하고도 스타일을 고수한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셨을 것 같은 H님 모습이 뭐예요?"

"지금 이 모습이요. 매일 다른 스타일로 옷 입고, 당당하게 재취업 도전하고, 아이 열심히 키우고... 엄마가 양품점에서 꿈꿨던 여성의 모습을 제가 살고 있으니까요. "

딸은 엄마의 미완성된 꿈을 자신을 통해 실현하고 있었다. 명동을 주름잡던 미니스커트의 그 당당함을, 이제 딸이 40대 취업 시장에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4주 후 완성된 H님의 글에는 슬픔보다 자부심이 가득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보다는,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딸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양품점집 딸은 엄마의 유산을 이어받아 힘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패션 감각, 당당함, 알뜰함, 일에 대한 사랑... 지옥철에서 탈출해 사무실 들어가기 전,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거울 앞에서 맵시를 가다듬는 세련된 중년, 뉴 포티(new fourty)...


독자들을 위해 슬픔에서 지혜를, 추억에서 미래를 발굴한 스토리마이닝의 사례 <뉴 포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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