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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5 한강공원

ㅡ 오랜 친구는 평안을 주지요!

by Anne

고사미 엄마라고

고맙게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너무나 궁금하겠지만, 애써 내 소식을 묻지 않는 친구들.

내가 먼저 연락해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시험 끝나고 바쁜 일정에 해를 넘겨버리게 될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나 잘 있다고! 아직 살아있다고!' 연락을 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마다 '안 그래도 네 소식 궁금했다. 너는 건강하냐? 고사미는 잘 있냐? 키워보니 별거 없더라. 애들 다 제각각으로 잘 살 거니까 너만 잘 살면 된다... ' 좀 더 먼저 키운 애들은 키웠다고, 늦게 시집간친구는 나는 언제 그만큼 키우냐고 하며 오래간만에 수다를 즐겼다.

워낙에 집에만 있는 나를 아는 친구가 보자고, 시험 치르고 나면 너 더 정신없으니 날 좋을 때 바람이나 쐬자고 한다.


"야. 너 하늘은 보고사냐? 바깥 날씨가 얼마나 좋은데? 그냥 나와. 내가 다 채비할 테니까 너 일단 나와."


이 녀석이 내 전화를 받자마자 나오라고 한다. 거실에 앉아서 보는 하늘이 하도 예뻐서 바람 쐬고 싶던 차에 준비하고 나갔다.


잠원한강공원주차장에서 만난 우리.

"이야.. 너도 대단하다. 우리 1년 만인가 봐.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차트렁크에서 캠핑의자 두 개, 양손 가득 뭘 그리 바리바리 싸가지고 내쪽으로 걸어오며 얘기한다.


곧 우리는 남산타워와 한강이 잘 보이는 명당자리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친구가 압구정 맛집에서 사 왔다며 맛있는 크로와상 샌드위치와 블루베리파이, 치즈케이크를 꺼냈다. 나는 집에서 급하게 나가면서 보온병 3개에 따뜻한 물 가득, 과일차, 아이들 간식으로 씻어둔 과일만 챙겨갔다.


"그냥 오라니까 뭘 이렇게 싸왔어. 너도 참. 그나저나 너무 날씨 좋다."

"그러게 오늘 좀 쌀쌀하긴 해도 공기도 맑고 너무 좋다! 빵도 커피도 맛있고!"


둘은 오랜만에 지난 얘기들을 풀었다.

친구아이들 이야기, 우리 아이들 이야기, 그동안 친구가 새롭게 하고 싶었던 일이야기, 나도 별안간 일을 시작했단 이야기....


간간히 전화통화하고 안부 묻고 했지만, 거의 1년 만에 만난 친구인데, 어제도 만났던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다.

20살 대학 때부터 만나서 친구 결혼식 부케 받고 서로 아이 낳고 사는 지금까지 잔잔하고 소소하게 정을 나누며 지낸 세월이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좋은 것만 보이고 싶고,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시절을 거쳐 서로 힘들었던 것 어려웠던 시절을 공유하고 울고 웃었던 세월을 더하고 나니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다. 차마 꺼내지 못했던 힘든 속내도 마구 털어놓으며 울고 웃고 떠들었다.

한강공원이 좋은 점은 우리가 울고 웃고 떠드는 걸 힐끗힐끗 보는 사람이 없어서다. 언젠가부터 우리 둘은 캠핑의자 두 개로 공원 구석에 앉아서 엉엉 울며 얘기하기도 하고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둘이 그러고 헤어지면 좀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기운을 받아 그런가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아들과 크게 다투고 속상해서 한강공원에서 혼자 엉엉 울다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친구가 자길 부르지 그랬냐며 '같이 맛있는 거나 먹고 들어가면 좋았잖아.' 한다.


가족이 아닌 친구가 주는 위로가 있다.

가족 안에서는 내 역할이 엄마이다 보니 엄마답지 않을 때 부끄럽고 속상하고, 답게 지내려아둥바둥하는데

친구 앞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돼서 좋다.

때로는 20살 때 철없고 속없었던 나를 기억해 주고 나에게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도 그랬다.


에그샌드위치 블루베리리플파이 진짜 맛있었음. 압구정 파티클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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