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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 대하구이

ㅡ 가을엔 대하구이 한판!

by Anne

며칠 전 고사미가

"엄마 가을엔 대하가 제철 아닙니까?" 한다.


'이 눔 자식 공부에 그렇게 촉을 세워라.'

"응. 우리 고사미가 새우구이가 먹고 싶구나! 한번 해주까?"


며칠 전 친정부모님이 마트장 보시면서 싱싱한 대하가 보여서 사다가 바로 얼려두셨다고 하시며 가져다 주셨다. 다들 바빠서 한데 모여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다 같이 먹는 날 해줘야겠다 했는데, 이 눔이 냄새를 맡았는지 새우얘기를 한다. 마침 토요일 아침 둘 다 스케줄이 없어서 아침부터 새우구이를 준비했다.

아이들 자는 동안 새우손질하고, 초장 만들고, 며칠 전에 인스타에서 본 레시피대로.


새우를 깔끔하게 손질하고 가볍게 흔들어 씻어둔다.

커다란 냄비에 새우를 넣고 맛술 적당량, 소금 조금, 물은 자작하게 냄비바닥에 살짝 붓고 뚜껑 덮고 10분 센 불로 쪄준다.


원래는 소금 깔고 대하를 올려 구우면 소금이 냄비바닥에서 타면서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인데 새로운 레시피로 하니 간단하고 쉽네.


아이들을 서둘러 깨웠다.

오랜만에 오전스케줄이 없어서 늦잠을 잔 아이들은 달큰한 냄새를 맡으며 기분 좋게 일어났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나. 뭐예요? 새우? 와~~"


"엄마! 내가 먹고 싶다 그래서 바로 사 온 거야? 대박! 맛있겠다. 많이 먹어야지! 머리도 구워주실 거예요? 나 새우머리버터구이도!!"


"응! 사실 할머니가 며칠 전에 너네 먹으라고 사다 주셨어! 이미 머리구이도 준비해 뒀지. 엄마가 인스타에서 봐둔 레시피가 있지. 기대해!"


"역쉬! 할머니 짱짱!"


쪄진 새우의 머리 부분을 가위로 자르는데 몸통 부분을 조금 포함하여 크게 자르기.

달궈진 팬에 올리브유 두르고, 마늘, 버터 넣고 튀기듯 센 불에 볶아주기.

페퍼론치노, 파슬리가루를 더해주면 더 색다르게 맛있게 완성.


아이들이 정신없이 새우를 까먹는다.

아침부터 온 집안에 비릿하고 달큰한 냄새를 풍기며


"맛있다 맛있다. 쩝쩝쩝"

"초장도 맛있네. 짭짭짭"


"엄마 나 라면하나 끓여 먹어도 돼요? 새우구이 끝은 라면이거든요!"

"아침부터? 첫끼인데... 그래. 그럼 하나만 끓여서 나눠 먹을까? 네가 끓여볼래? "


아침부터 새우랑 라면까지 풀코스로 배부르게 먹였다.

매일 정신없이 대충 먹고 나갔는데 아침부터 바쁘긴 했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맛있게 먹어주니 괜히 아침부터 신나는구먼.


오늘은 대치동 토요일 수업 종강날이다.

아이도 나도 가는 길이 오늘따라 새롭다. 보통은 매주 꽉꽉 막힌 도로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거나 했다. 오늘은 고사미도 좀 달랐는지 종알종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수능 이후 일정, 여기는 다시 안 오면 좋겠다, 오늘 마지막 종강수업 때 선생님은 어떤 선물을 주실까?....

재미있는 얘기를 한참이어가다가 지난번 잘 못 보았던 영어시험 점수얘기를 꺼냈다. 서로 아는척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괜한 얘기를 꺼내서 나도 참지 못하고 툭 뱉어버린 말

"그러게, 핸드폰 볼시간에 단어를 더 챙겼어야지."

"나도 최선을 다 하고 신었다고요!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마침 학원 앞에 도착했고 아이는 "다녀올게요."하고 내려버렸다. 앞뒤로 차는 꽉 막혀있고 손 쓸 새도 없이 내려버린 녀석은 벌써 저만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컥해 버렸다.

'뭐. 뭐. 엄마가 말도 못 해? 내가 뭐?'

'미쳤지미 쳤어. 그걸 못 참고. 엄마가. 힘든 건 고사미본인일 텐데 나는 왜 애한테 참지 못하고 그랬을까. 나는 못난 엄마야.'


아침부터 기분 좋게 밥 잘 먹여놓고, 괜히 저 녀석 오늘 소화 안되면 어떡하나, 마지막수업인데 괜한 소리로 아이를 흔들어놨나... 후회막심이다.


집에 와서도 집안일이 손에잡히지도 않는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학원수업을 마칠 때쯤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차문을 열었다.

"엄마. 엄마! 김승리선생님 종강 선물이 뭔 줄 알아? 대박 예뻐. 나 이거 당장 쓸 거야...."


음.

너는 벌써 잊었구나. 고맙네!


비가 추적추적 내린 토요일.

토요일 저녁라이드는 오늘로 끝.



부드럽게쪄진 대하랑 새우머리버터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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