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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 기도모임.

ㅡ 손만 잡아줘도 울컥하니 잡지 마시오.

by Anne

오늘은 고사미의 학교를 다녀왔다.

교내에 학부모 기도모임이 있는데, 1학년때부터 간간히 참석하다가 기도모임 이후 티타임이 좀 부담스러워서 통 나가지 않았다.

3학년 들어서는 거의 참석을 못했는데, 모임의 회장학부모님이 몇 주 전부터 시험 전 모임이니 한 번 오라고 연락을 해주셨다. 잊혀질 만도 한데,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고, 정말 시험을 10일 앞두고 있는 마음도 복잡하고 해서 아침부터 집안정리를 서둘러 끝내놓고 나갔다.


평소보다 더 많은 자리를 채우고 앉아있는 학부모님들을 보니 정말 시험이 임박하긴 했나 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어색하지만 반갑게 맞아주시니 고마웠다.


"아유. ㅇㅇ이 엄마 어떻게 지냈어요? ㅇㅇ이는 잘 하구 있죠? 잘 될 거예요! 그죠? 얼굴이 어찌 이리 상했어?! 어디 아팠어요?"


그간의 일들을 내 어찌 다 쏟아내랴.. 허허


가볍게 인사하고 예배당 구석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배하고 기도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겠다.

학교에 앉아 눈을 감으니 아이가 처음 입학했던 때부터 어제까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즐겁고 좋았던 때도 아프고 힘들었던 때도 다 지나갔구나 싶으니 뭔가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예배를 마치고 다들 식사약속이 있다고 했다.

함께 하자고 권하시는 학부모님들을 뒤로하고 후다닥 빠져나왔다. 교무실을 통과하여 3학년 복도로 몸을 돌리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사미의 이쁜 뒤통수를.


며칠 전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는데, 고사미가 아침에 졸리고 교실은 덥고 해서 복도에 나와서 공부한다고 요즘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시며 '어머니. ㅇㅇ이 다치면 안 돼요. 행여 농구한다고 공들고 다니면 제가 보이는 데로 잡고 있으니 집에서도 잘 챙겨주세요!' 하신다. 참 어쩌면, 엄마보다 더 잘 챙겨주시는 것 같다.

여하튼 복도 구석에 앉아있는 녀석을 딱 알아봤는데, 인기척 때문이었는지. '홱'하고 돌아보는 고사미와 눈이 마주쳤다.

숨소리랑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만 들리는 고3복도라서 나도 고사미도 눈인사만 하고 얼렁 나왔다. 고사미는 철문틈사이로 사라지는 엄마를 슬쩍 보고 손을 흔든다.


맨날 자습한다고 하는데, 잘하고 있는지, 떠들고 노는 건 아닌지.. 했는데,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조용했던 고3교실.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곳을 다녀오니 괜히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하루 종일 애쓰고 돌아온 거였구나. 그런 아이에게 잠시 쉬는 걸 못 보고 빨리 씻고 공부하라고 했구나. ' 나는 또 잘못했다. 미안했다.


오늘은 수고했다 토닥여줘야지.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복도를빠져나와 철문틈사이로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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