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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 뽀글뽀글 말아주세요.

ㅡ 울 엄마는 왜 그렇게 머리를 볶았을까?!

by Anne

폭풍전야인가.

뭔가 이번 주는 무척 한가하다.

주말수업이 끝이 나서 그런가 일찍 겨울이 와버려서 집안정리를 해놔서 그런가.


아무 계획 없이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

머리를 하고 올까? 그렇지. 고사미 수능 이후 일정은 바쁠 테니 머리라도 좀 하고 와야겠다.


나는 누가 내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실도 일 년에 한 번? 두 번 가면 많이 가는 건데,

올초에 머리를 자르고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커트도 한 번 안 했으니 머리도 많이 길었고 펌도 다 늘어져서 묶으면 무겁고 풀면 귀신같고 더 뒀다가는 내년 봄까지 미용실도 못 갈 수도 있다. 맘먹은 김에 얼렁 다녀와야지 싶어 아침 일찍 집 근처 미용실을 예약했다.

자주 가지 않으니 단골도 없고 전담해 주시는 디자이너 선생님도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가능한 분으로 예약해서 간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하고 잘 가꾸는 친구들을 보면 이사 가서도 다니던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가고, 요구하는 스타일도 분명한데 나는 딱히 그런 게 없으니 매번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시면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사하고 두어 번 갔던 미용실을 갔는데 매번 다른 선생님으로 예약했더니 내 스타일을 알리 없고, 머리카락을 거의 가슴아래까지 길러왔으니 '이 사람은 머리 가꾸는 데는 관심이 없구나'로 보았을 거다.


"머리가 많이 길죠? 그냥 어깨선까지 잘라주세요. 펌도 좀 하려고요! 빠글빠글하게요!"

"S컬이요? 아님 조금 더 컬있게 구름펌이요?"

"아뇨. 그냥 빠글빠글하게요. 제가 머리손질을 잘 못해서요. 거의 묶고 다니기는 하는데, 화장도 잘 안 하고 얼굴에 살도 없고 하니 볼륨이 있어야 볼만하더라고요."

"아. 네. 그러면 머리가 막 뜨고 그럴 텐데 진짜 괜찮으세요? 사진 보여드릴게요."


친절한 선생님이 사진을 보여주시며 정말 괜찮겠냐고 한다.

사실 나도 대학 때 이후로 빠글빠글은 처음인데,

요즘 얼굴살이 너무 빠져서 생머리로 있으려니 보는 사람마다 아프냐고 물어서 안 되겠다. 빠글빠글하게 볶아놓으면 귀엽다고 해주려나.


고개를 갸웃갸웃하시며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눈빛을 주고받으시더니 재료를 준비해 오셨다.


"손님 바짝 말아달라 하셨으니 두피가 당기실 수 있어요! 진짜 괜찮으시죠?"

"네. 네! 정말 괜찮아요. 혹시 맘에 안 들면 묶고 다녀도 되고 머리는 금방 또 새로 자라잖아요."


두 분이서 빠르게 머리를 말아주시는데,

어찌나 꼼꼼하게 당겨마시는지...

머리카락이 다 뽑힐 것 같은데 또 시원하다.


'엇! 이거 무슨 느낌이지? 아픈데 시원하고 뭔가 이것이 그 옛날 국민엄마의 빠마인가? 진짜 엄청 웃기면 어떡하지? 남편도 아이들도 내내 놀릴 텐데. '

내가 가끔 내 맘대로 머리를 하고 가면 남편은 깜짝깜짝 놀라긴 했다.


'에이. 뭐. 묶으면 되지. 그리고 머리가 길어서 감기도 힘들고 말리는 것도 힘들었어.'


손가락 굵기의 롯트에 머리를 바짝 감아올리니 둘리에 나왔던 마이콜 같이 되었다. 너무 모습이 웃겨서 남편한테 카톡사진을 보냈더니.

'들어오지 마.'


두 시간 반쯤 있었나... 지루하기 시작할 즈음 마무리해 주신단다.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뒤통수가 가볍고 시원하니 좋다.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아. 안경을 벗으셔서 안보이시죠?"

안경을 벗고 있어서 완성된 머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벼워진 머리와 걸을 때마다 탱글탱글한 느낌이 나길래 '펌이 잘 되었군.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안경을 가져다주셨고, 안경을 쓰고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아. 이번 주 둘째 학교 상담이 있었네. 어떡하지?'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생각한 것보다는 잘 어울리시는데요?"

"네. 좋네요."


'... 네에. 저는 맘에 들긴 하는데요! 한동안 저를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주긴 하겠네요. 나 또 사고 친 거뉘?'


남편이 궁금했는지 계속 완성된 머리사진을 보내라고 카톡을 한다. 나는 궁금하면 집에 와서 보라고했다. 사진을 찍었는데, 마이콜 누나가 되어버린 모습을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둘째 아이와 들어온 남편이 내 머리를 보고 빵 터졌고, 둘째 아이는 박수를 치며 "엄마 귀여워~~"라고 해줬다.

고사미는... 아직도 모른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30대 중후반부터 짧은 컷에 펌머리를 하셨던 것 같다. 도대체 왜 동네 아주머니들은 다 그 머리를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아마도 관리하기도 편하고, 결혼한 아줌마의 스타일로 정해놓았던 게 아닌가 싶다. 외모를 가꾸기보다는 알뜰살뜰 살림하는 가정주부로 사셨던 엄마의 뽀글 머리는 정겹다.


요즘은 40대. 50대가 되어도 예전 국민엄마 펌스타일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4-50대는 물론이고, 60대도 이쁘다. 다들 어쩜 그렇게 잘 가꾸는지. 그런데 나는 꾸미는 데는 재주가 없어서 머리는 매번 할 때마다 이상한데, 그래도 기분전환은 되었다. 그냥 나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덜 만지고 싶어서 잘랐다. 머리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나 보다. 길이도 짧아졌으니 내년봄까지는 미용실 갈 일도 없겠군.


밤에 자려고 누우려는데 남편이 코를 씰룩거리며,

"아~~ 내일 나 당직 끝나고 오면 오후에 너랑 어디 좋은 데 가려고 했는 데에 안 되겠네... 나참..."

"왜? 내일 갑자기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인데?"

"아니이~~ 너 머리 그러고 돌아다닐 수 있겠어? 큭큭큭..."

"왜? 왜? 왜? 여보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다닐 거다. 흥."


나무위키에서 마이콜사진 발췌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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