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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 노안

ㅡ 엄마 잘 안 보인다고 몇 번을 말하냐?

by Anne

고사미가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있길래

"얼렁얼렁 먹구 가라. 너무 여유 있는 거 아니니? 아니 너는 지금 수능 며칠 남았다고 그렇게 여유 부리고 핸드폰 쳐다보고 있는 거야? 대체 뭘 그렇게 보냐고?!"

밥 먹으면서 영상을 보는 건지 사진을 보는 건지 계속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길래 아침부터 참지 못하고 잔소리가 터져버렸다.

"엥? 공부하고 있었는데요? 이거보는건데? 이거."

핸드폰 화면을 내 얼굴 쪽으로 바짝 가져다 대며 보여주는데

'안 보인다. 뭐야? 대체?'

쓰고 있던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안경 너머로 눈을 바짝 치켜들고 쳐다봤다. 그것도 바로 보기 힘들다. 초점이 맞춰질 때까지 약간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 이거 안 보여? 진짜 안 보여요? 엄마 아아... 왜 늙었어어어어?"

고사미가 보고 있던 건 한국사 요약정리글이었다.

"아니 아침부터 네가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까, 뭐 보나 한 거지. 알았어. 얼렁 먹고 가자."

"아니이. 엄마 이거 봐 봐. 이거도 안 보여? 엄마핸드폰 줘봐. 엄마. 글씨를 왜 이렇게 크게 해서 보는 거야? 엄마 진짜 늙었어?"

내 핸드폰 카톡 글자크기가 너무 크다고 난리다.


'아니 엄마 이렇게 된 지 한 참 됐거든. 이 녀석아'


"늙은 거 맞긴 하지. 엄마 나이가 있는데, 근데 이건 자연스러운 거야. 건강이 나빠졌다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기능이 떨어지는 거지 모. 괜찮아. 사실 돋보기를 맞춰도 되고, 안경을 벗으면 오히려 가까운 글씨가 잘 보여서 좋아. 엄마 필사하거나 핸드폰 볼 때 안경 안 써도 돼서 좋은데?"


"아니 그래도오. 이상하잖아. 엄마가 할머니 같잖아."

"그래. 뭐 네가 장가가서 손주가 빨리 생기면 곧 할머니도 되는 거지 뭘 그래?"

"아이. 그만 얘기하세요. 이상해."


자기가 나보다 더 커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거저인 줄 아나 보다. 엄마가 나이를 먹는 건 당연한 건데...


'엄마 다리를 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수염 났다고 면도기 찾는 너는 뭐 안 어색한 줄 아냐? 엄마도 너 크는 거 보믄 깜짝깜짝 놀란다고오!

엄마도 네가 크는 만큼 나이를 먹고 차차 나이 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점차 늘어나는 흰머리와 가까운 글씨가 보이지 않는 불편함, 앉았다 일어날 때 '끙차'하고 추임새가 생기는 것까지도.'


남매를 키우면서 마냥 젊을 줄 알았던 내 시간도 꽤 많이 흘러가버렸다. 세수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바짝 올려보고, 볼풍선을 만들어 볼을 통통하게도 만들어보고 요리조리 예전의 모습을 찾아본다. 고사미가 괜히 아침부터 엄마 늙었다고 "엄마는 늙으면 안 돼. 아니야..." 하는 말이 좀 슬펐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그런데 너 그거 알아? 요즘은 백세인생이래. 아직 멀었어. 엄마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거든.

다시 일도 시작했고, 글도 열심히 쓰고 있어.

그니까 너는 니 할 일이나 잘 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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