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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 청국장찌개

ㅡ 파스타도 좋아하지만 청국장도 좋아하는 고사미

by Anne

요즘 하루 걸러 하루 고사미와 좋았다 나빴다한다.

지 기분도 내 기분도 들쭉날쭉이어서 그렇겠지.

오늘은 뭐 때문에 그랬더라?!

아침에 조금 늑장을 부려서 그랬던가? 아니면 내가 먹으라고 준비해 둔 약이랑 아침을 먹지 않아서 그랬던가.

몇 시간 전 일인데도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별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또 참지 못하고 괜히 성질을 부렸나 보다. 못난 엄마 같으니라고....

"다녀올게요."하고 퉁명하게 인사하고 내리는 고사미에게 찬바람 쌩쌩 불게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어이구. 좀 참지 그랬냐? 별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알면서 그런다.

그런데 고사미도 좀 잘하면 좋을걸 꼭 내가 잔소리할 때까지 버티니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아니. 쟤는 정말 저렇게 시간관리를 못해서 학교는 어찌 가고 회사는 어찌 가냐고? 사회생활은 하겠냐고? 나는 안 그랬는 데에..... 그랬나?'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혼자 기숙사생활과 자취생활을 했어서 억지로 남들보다 조금 빨리 독립을 했다. 그래서 혼자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져서 철이 좀 빨리 들긴 했다. 나 20살 때를 생각하면 이제 곧 혼자 짐 싸서 나갈지도 모르는 녀석인데 아직도 저렇게 아기같이 다 챙겨줘야 해서 어쩌나 싶어서 잔소리가 더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좀 생각해 보면 나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우리 아들 녀석은 별일 없다면 그냥 앞으로도 계속 집에서 지내게 될 테니 저 아이는 느긋할 수밖에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저렇게 된 데에는 결국 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공부하는 동안 신경 쓰고 시간낭비하는 게 싫어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치워주고, 사다 주고, 해주고.. 해주고... 또 해주고....

내가 그렇게 키웠네. 그랬네.


그래놓고선 이제 와서 스스로 하지 않는다고 탓을 했구나 못났다. 못났어. 졸업하고 어른이 되도록 천천히 가르치면 될 것을 괜한 일에 트집을 잡았다.


집에 와서 청소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맘이 무겁다. 아침에 매일 같은 시간에 성경말씀과 짧은 기도문을 보내주는데 보내주면서 미안하다고 할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고사미는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하교 후, 스카에 들어가기 전, 저녁 먹기 전, 간식 먹으러 나오면서...


오늘은 하교시간이 지났는데 전화가 없다. 아직 화가 안 풀렸나 보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또 말았다.


7시가 조금 넘었다. 고사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왜?"


"엄마! 엄마! 나 저녁 먹을라고. 엄마. 여기 상가에 청국장찌개집이 생겼어. 알고 있었어요? 여기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 나 오늘 이 집에서 먹으려고!"


"그래? 근데 너 그거 저녁 먹고 스카 들어가면 냄새 어떡할라고? 괜찮겠어? "


"잠깐바람 쐬고 들어가면 되죠. 먹고 전화할게요"


하루 종일 초조하게 성질부린 나를 후회하며 반성한 시간이 허무하게 아이는 너무 신나고 밝은 목소리이다.


'난 또 이 아이에게 졌다. 졌어. 저도 오늘 아침엔 속상했을 텐데, 나보다 그릇이 큰 건가 이 녀석이? 아님 속이 없는 건가? '


"엄마! 진짜 대박! 대박 맛집이야. 엄마가 좋아하는 꼬막정식도 있고, 청국장도 엄청 구수하고 맛있어요. 엄마 나랑 시험 끝나고 여기 와서 꼭 같이 먹어보자. 꼭꼭. 나 밥 다 먹고 잠시 산책하고 공부하러 들어가요!"


밥을 다 먹었다고 또 전화했다.


하아.

나는 고사미에게 오늘 성질부린 거 미안하다고 말도 못 했는데 이 녀석이 시험 끝나고 같이 청국장찌개 먹으러 가잔다. 오늘 저녁엔 씻고 나오면 이부자리 봐주면서 한 번 안아줘야겠다.

고사미야. 미안해.

시험 끝나면 청국장찌개에 콜라 한 잔 하면서 우리 좀 풀자. 콜?!


같이 공부하는 친구랑 맛있게 먹었다는 저녁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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