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2시 땡!
오늘은 11월 13일.
드디어 수능시험날이 되었다.
고사미는 저녁 10시쯤 집에 와서 집에서 씻고 가방정리를 하고 조금 전에 잠들었다. 나는 저녁 내내 맘을 못 잡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남편이 내려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낮에 장 봐둔 재료를 손질해서 내일 아침에 먹일 전복밥을 올려두고 고3엄마일기의 마지막 편을 쓰기 위해서 자리에 앉았다.
수능이 80 여일쯤 남았을 때,
공부하느라 지쳐가는 아들과 좋았다 나빴다 할 때,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편만 글을 올리자고 맘을 먹었을 때,
아들과 내가 수능을 앞두고 보내는 일상을 써보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다.
매일 성경도 읽고,
틈나면 잠언필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새롭게 시작한 일도 하느라 바빴지만...
그래도 작은 틈이 생기면 고3 아들 녀석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그러다 아들과 다투기도 했다. 쓸데없는 걱정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괜히 아들 녀석만 잡았다.
엄마는... 부모는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쏟지만, 듣는 아이는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러니 부모자식 간에 서로 평행선을 그으며 좀처럼 마음이 서로에게 닿을 일이 없게 된다. 폭풍 같은 사춘기도 잘 보냈는데, 이까짓 일로 아들과 다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대신 매일 일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잔소리해 봐야. 내 입만 아프고 기운만 빠지지. 저 녀석은 돌아서면 까먹을 텐데 뭐 하러...... 엄마가 너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을 글로 남겨주마.'
경기도 외곽에서 학군지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만난 부동산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학군지 아파트로 이사를 알아본다고 하니
"애기 엄마. 아들 ㅇㅇ중학교 보내려고요? 그럼. ㅇㅇ고등학교도 생각하고 온 거겠네? 혹시 과학고나 자사고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마음 독하게 먹어. 나도 여기서 우리 아들 중. 고등학교 다 졸업시켰어요. 이상하게 남의 집애들은 잘하는데 우리 집 아들은 그렇게 안되더라. 아들이 공부를 잘해요?"
"아직 어려서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곧 잘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좋은 학교도 보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아드님은 ㅇㅇ고등학교 보내셨어요? 학교분위기는 좋나요?"
"좋지요. 애들도 다 열심히 하고, 자랑 같지만 우리 아들 그래서 연대 보냈어. 현역으로! "
"와. 대단하시네요. 아드님이 잘했나 보네요!"
"아니. 내가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잡았지. 매일 싸웠어. 정말 힘들었어. 그래서 연대 보내놨더니. 이 녀석이 합격한 날 그러더라고. '엄마. 이제 됐지요? 저 이제 제 맘대로 하고 삽니다.' 하고는 군대 갔고, 집에서도 나갔어. 휴가 나와도 연락을 안 해. 뭐 안 보고 사는 거지...."
"에이.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 마음도 알 테죠. 속 많이 상하셨겠네요."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내가 아이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정말 내가 그렇게 상처를 줬나 싶기도 하고...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기엄마도 아들 키우면서 잘해봐요. "
잘해보라니, 뭘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걸까? 모르겠다.
사교육 없이 서울대 연고대도 가고 부모랑 싸우지 않고 스스로 잘해서 가는 아이들도 많지만, 억지로 힘들게, 될 때까지 해서 가는 경우도 있으니 그중 하나였다... 생각하고 흘려들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씀은 이상하게도 잊을만하면 떠오르곤 했다. 아마도 나는 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가 아닌 걸 이미 알아버렸고 그래서 억지로 강하게 끌어줄 자신도, 안보고 살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시작은 학군지에서 '빡세게' 시켜보자고 이사를 강행했었지만, 코로나라는 변수와 그 부동산아주머니의 조언? 덕분에 아이들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가 요구하기 전까지는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결과에 대해서도 속은 타지만 지켜봐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고,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엄마아빠는 오늘까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해주었으니 너도 너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 마무리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재수가 필수라는 요즘. 아이가 먼저 재수시켜 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도 해보았다. 아이가 정말 원하면, 이 녀석이 정말 더 공부해 볼 의지가 있다면 그때 고민해 보자는 말과 함께 계산기도 미리 두드려본 건 안 비밀이다.
속없고 덤벙거리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가방 싸놓고 시험날 입을 옷을 전날부터 미리 빼두어 책상 위에 잘 올려놓고 잠든 녀석을 보니 그래도 좀 안심이다.
'그래, 제 앞가림은 하겠지. 이제부터는 니 몫이다.
몇 시간 뒤면 낯선 교실에 앉아 떨리는 첫 장을 넘기겠지.
고사미야. 시험 잘 보고 밥 맛있게 먹고 와.'
80편이 조금 넘는 '고3엄마의 일기'연재는 오늘로 마칩니다. 길면 길고, 짧다 하면 또 금방인 지난 80여 일 아들과의 일상을 공감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라이킷으로, 댓글로, 눈으로 마음으로 공감해 주셔서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녀석이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서, 저는 또 무한정 모드로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고3 엄마노릇은 오늘까지만 하고 저도 졸업합니다. 앞으로 새롭게 다른 Anne으로 여러분과 소통하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입니다. 몇 년 뒤 둘째 녀석이 고3이 되면 다시 또 징징거리며 찾아뵐지 모르겠네요!
그동안 '고3엄마의 일기'를 구독해 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