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장 한문장 음미하게 되는, 시 같은 한강의 소설
여러 가지 감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심해를 다이빙하는 느낌을 주는 책. 평소 내가 익숙한 읽는 방식인 - 스토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느낌을 음미하며, 작가가 말하는 '문학적 고양 상태'를 느끼며 읽으려 노력했던 책이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한 문장 속에서도 다양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 탁월한 문장들이 많아서 '생각'을 멈추고 '음미'하기 쉬웠다.
갑자기 말하는 법을 잊은 주인공은 고대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고어인 희랍어를 배우게 된다.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말하는 법을 잃은 여인이 규칙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리고 더 이상 일상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희랍어를 배운다는 설정의 소설을 썼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질문들이 떠올랐다.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말을 하고 싶어 할까? 대답 없는 상대방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마 독자들로부터 '말한다는 것'과 '언어'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이끌어내고자 이런 특이한 설정을 했던 것이 아닐까?
언어는 폭력적일 수 있다. 이를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언어는 상대방에게 날아가 면도 칼처럼 박힐 수도 있다.
이렇게 규칙이 까다로운 언어를 그녀는 접해보지 못했다. 동사들은 주어의 격과 성과 수에 따라, 여러 단계를 가진 시제에 따라, 세 가지 태에 따라 일일이 형태를 바꾼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면밀한 규칙 덕분에 오히려 문장들은 간명하다.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
그래서 사고를 더 제한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정교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귓가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 이런 공백의 쓰임,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냄새가 나는 듯한, 으깨지는 모습이 눈앞에 선한, 내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선명하고 절묘한 비유들.
꽉 찬 달이 검고 뭉클뭉클한 구름장 속으로 멈칫 몸을 감췄다가 드러내길 반복하던 일요일 밤이었다. 아무리 닦아도 어둑한 데가 남는 은 숟가락 같은 그 보람달을 올려다보며 나는 어두운 보도를 걷고 있었다. 한순간, 신비하고 불안한 암호 같은 달무리가 보랏빛 동그라미를 그으며 구름 위로 번졌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책은 현암사에서 나온 '화엄경 강의'였다. 그토록 찬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사유의 체계를, 그 후 어느 책에서도 다시 경험하지 못했다.
정점에 이른 언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디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좀 더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해갑니다. 어떤 의미에서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오늘날의 유럽어는 그 오랜 과정을 거쳐 덜 엄격하게, 덜 정교하게, 덜 복잡하게 변화한 결과물입니다. 플라톤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 정점에 이르렀던 고어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을 겁니다.
- 어떤 의미에서는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 문장이 참 좋다. 우리 삶 같기도.
- 엄마가 - 젊어서 좋겠다 ~ -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래도 젊어서 모르는 것들도 많잖아.라고 내가 대답한 일화가 생각났다.
무엇이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일단 들여다보겠다는 듯, 커다랗게 열린 채 무심히 일렁이는 검은 눈.
자라면서 그녀는 이 일화를 반복해 들었다. 고모들, 외사촌들, 오지랖 넓은 이웃집 여자로부터.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주문처럼 그 문장이 반복되었다.
언제부턴가 이 강독의 성격은 희랍어와 철학 사이에 비스듬히 걸쳐진 것이 되었다.
가난하고 시끄러운 선술집들을 지난다.
넌 철학을 하기엔 너무 문학적이야,라고 너는 이따금 나에게 충고했지. 네가 사유를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일종의 문학적 고양 상태일 뿐이지 않니,라고.
- 철학과 문학의 차이. 엄마와 나의 차이. 그 차이에 대해서 더 선명하게 느끼는 요즘. 철학: 이치를 찾으려고 하는 것,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 문학: 고양된 상태, 아름답고 고귀한 상태를 음미하는 것.
아버지는 무심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어떤 질문에든 필요 이상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 분이었지요.
오랫동안 익혀 이젠 내 것이나 다름없어진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를 빠져나왔지요.
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게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걸.
창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이 방의 정적을 바늘처럼 찌른다고 그녀는 느낀다. 수틀에 끼운 천처럼 팽팽한 정적에, 수없이 작은 구멍을 뚫는다.
그때는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 세계가 감기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