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이 지난 지금까도 유효한 통찰이 가득하다.
고등학교 사회 과학 시간에 가장 좋아했던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이번 독서 모임에서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회원님이 이 책을 선정한 덕분에 읽게 됐다.
학교에서 배울 때, 시험 대비용이 아니라 정말 관심과 흥미가 있어서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입시반이 있는, 선행학습과 주입식 교육이 너무나 당연한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과 정반대인, 최대한 가르침을 뒤로 미룰수록 좋다고 말한다.
고전답게 책 여기 저기에 머리를 울리게 하는 혁명적인 문장들을 많이 접했다. 아니 대체 3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게 놀랍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300년이나 지났지만, 인간의 생각은 크게 변한이 없구나 싶기도 했다.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이것이 나의 원칙이며 교육에 접목시켜야 할 핵심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The greatest happiness lies not in power but in freedom. This is my principle. A free person does only what they can and only what they want to do. This is what matters.
권력이 아니라 자유!!! 아침을 더 명상으로 시작해야지.
인간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한 동물이므로 주변 사물들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감각을 통해 유불쾌를 분별하는가 하면 이성의 힘에 기초해 사리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각과 판단은 지식이 쌓이면서 더 확대되고 강화된다. 이러한 성향은 습관이라는 괴물에 의해 굳어지는가 하면 편견에 의해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질이 일어나기 전의 성향, 그것을 나는 우리 안에 있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Human beings are more sensitive than any other creature, growing while absorbing coutless influences from the world around them. Through the senses, we distinguish what is pleasant or unpleasant; through reason, we judge what is right. These sensations and judgements expand and strengthen as knowledge accumulates. This tendency can solidify into habit or be distorted by prejudice. The state before that distortion-I call in the "nature" within us.
예민한 감각과 명민한 이성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나에게 달렸다. 이 감각과 이성으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줄 수도 있고, 이 감각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힐 수도 있다.
How I want to use my sensitivity is upto me. I can use it to take care of people who are suffering around me, and I can use it to give myself a hard time. Use it wisely.
모든 사회는, 결속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기적이다. 애국자의 눈에는 외국인이 무가치하게 보일 수 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타민족에게 냉혹하고 인색했지만 자국민에겐 공평무사하고 따뜻했다.
Every society becomes more selfish the stronger its internal unity becomes. To a patriot, a foreigner can seem worthless. Spartans were harsh and ungenerous to outsiders but fair and warm to their own.
우리 모두 결국은 지구에 사는 지구인인데. 외계인의 공격이 들어와야만 똘똘 뭉치지 말고,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많이들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In the end, we’re all Earthlings living on the same planet. I wish people didn’t need an alien invasion or climate disaster to realize borders are arbitrary.
무릇 지혜라는 것들은 대부분 노예 근성을 지닌 편견에 물들어 있다.
Most so-called wisdom is colored by the servile mindset of prejudice.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감각을 총동원해 자아를 느끼고,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가장 나이 들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잘 느끼다 죽은 사람이다.
To live is not merely to preserve life but to feel oneself wholly—using all bodily senses and all one’s abilities. The person who lived longest is not the one who died oldest, but the one who fully felt life.
순간순간을 더 즐기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 미래의 어떤 결과를 위해 현재를 너무 많이 희생하지 말자.
우리 삶의 가치가 살아가는 동안 나날이 증가하는 어떤 것이라면, 어려서의 고통을 면해주는 일보다 나이 들어서의 고통을 면해주는 일이 더 낫지 않겠는가? 인간의 고통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정신적 고통도 있다. 육체적 아픔만 겪어도 되는 어린 시절의 고통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라서 맞이할 운명의 고통을 생각해보라.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것은 정신적 고통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지만 정작 불쌍한 것은 어른들이다. 고통은 마음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생각에 휩싸여 잠 못자는 날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것은 정신적 고통이다.
어른들이여, 제발 인간다워라. 그것이 당신들의 첫째 의무이다. 신분과 세대를 뛰어넘어 인간답게 행동하라. 아이들을 사랑하라. 자애로운 마음으로 그 아이들의 천성을 독려하라. 당신에겐 그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어째서 당신은 한 번뿐인 유년의 세계를 고통으로 채워주려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아이가 언제 죽을지 아는가? 자연이 그들에게 준 짧은 시간을 빼앗아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 아이들로 하여금 살아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게 하라.
지금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 나중에 겪을 고통을 반감시킬 것이라고 -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는가? 아이의 가냘픈 정신을 짓밟아 주입한 그 훈계가 훗날 더 유익한 결과로 나타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그것을 보증하는가? 당신은 아이들의 미래를 아는가? 당신의 교육 방식이 자연에서 비롯된 것일 뿐 잘못된 양육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증명할 수 있는가?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현재의 불행 만들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 어릴때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실패자, 낙오자가 된다는 불안을 주입시키는 교육 방식은 너무나 많은 부작용이 있다.
남편과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남편은 매일 아침, 오늘은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재밌는 일을 할까 생각하면서 눈을 뜬다고 한다. 반면 나는 하루에 대한 기대로 눈이 떠진다기 보다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를 느끼며 눈이 떠진다.
물론 타고난 천성도 있겠지만, 어릴 때의 나는 '삶이 만만치 않으니,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전문성을 길러야 잘 살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라, 불과 몇 년 전 까지만해도 쉴때도 마음이 불편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 self-doubt이 많은 편이었다.
시부모님과 대화를 해보면, 남편이 어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면 된다'고. 스스로 잘 할 수 있고, 잘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남편은 좀 과하게 자신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여튼 세상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행복함을 많이 느끼며 사는, 쳇바퀴를 굴리는 햄스터같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행복하다든지 절대적으로 불행하다는 게 없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삶은 늘 움직이며 그 움직임 속에 우리의 몸과 마음도 섞여 있다. 그 안에 선도 있고 악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것이 많고 어떤 사람은 적다.
There is no absolute happiness or absolute misery. We don’t know such things. Life is always moving, and our minds and bodies move with it. Good and evil exist in everyone—some more, some less.
캬..
진정한 행복은 능력을 넘어서는 욕망을 줄이고 힘과 의지를 평형 상태로 유지하는 데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질서를 잡아, 몸은 활동 상태에 있으면서도 영혼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약할 수밖에 없다. 능력을 키우면 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그러므로 편견에 불과하다. 능력보다 오만이 커질 때 오히려 그 능력은 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가진 능력 안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약함을 불평할 일도 없거니와 약하다는 느낌조차 갖지 않을 것이다.
앞날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불행으로 이끈다. 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얼마나 미친 짓인가!
중요한 것은 에밀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 아니라 그 표현 속에 깃들어 있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What matters is not the expression itself but the mindset behind it.
아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정신적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에 맞게 지도해야 한다. 아이의 본성과 성격을 관찰하라.
아이로 하여금 그 안에서 어린 시절이 무르익도록 하라. 교훈이 필요할지라도 꼭 오늘 시행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면 가르침을 미루어라. 서둘러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아껴야 하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을 잘못 사용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시간을 많이 잃는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다.
싸움은 말리고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아이가 본분을 지키도록 하고 아버지가 관대히 행동하도록 도와라.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도록 조언하라.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당신의 힘을 다 써라. 불행한 자들의 대변자가 되어라. 인간적인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라.
기억이라고 부르는 이 기본적인 능력을 강화하는 진정한 기술은 기억해야 할 그 대상을 잘 선택하는 데 달려 있다.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더 중요한 규칙은 필요할 경우 그 규칙을 위반할 규칙을 갖는 일이다.
그가 지닌 문제는 그 스스로 풀게 하라.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배우게 하라.
그의 두뇌 속에 보다 명료한 관념을 심어주는 데 있음을 잊지 말라. 잘못 알고 있을 바에야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편이 낫다. 내가 그의 머릿속에 진리를 넣어주고자 하는 것은, 진리 대신 배울지도 모를 오류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 위함이다. 이성이나 판단력은 천천히 다가오지만 편견은 떼를 지어 몰려온다.
경쟁자와 비교해 말하지 말라. 질투나 허영심에 의해서만 배우려 하는 는아이라면 차라리 배우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에밀의 발전에 대해서만 기록하여 어제 이룬 것과 오늘 이룬 것을 비교할 것이다. 어제 달린 거리와 오늘 달린 거리를 비교할 것이고, 어제 건너뛴 도랑과 오늘 건너뛴 도랑을 비교할 것이다. 그렇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격려할 것이다. 아이는 이제 자신을 경쟁 상대로 삼아 노력할 텐데,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계약된 평등과 달리, 사물들 사이에 계약된 평등은 화폐를 발명하게 했다. 화폐란 서로 다른 물건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계약된 평등, 최저임금. 싱가폴엔 없다. 싱가폴엔 계약된 평등보다, 효용을 더 우선시 한다.
화폐도 그렇다. 나중에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금 본위제를 폐지한 이후,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세계 무역이 이뤄지지만, 미국이 은행에서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얼마나 어이없어할까?
물리적 실체 (금) -> 국가 신용 (미국의 경제와 정치 제도) -> 집단 심리-> 데이터 기술로 더 정교한 집단 심리 조작 vs 개인의 의식/주체성
개인의 의식과 주체성, integrity야말로 점점 더 희소해지는 가치가 되어가는 것 같다.
당신은 현재의 사회 질서를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천부의 질서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인간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다. 파괴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는 것, 그것은 자연이 새겨놓은 것뿐이다. 자연은 부자나 귀족이나 왕을 만든 적이 없다.
You may want to trust the current social order, but it is not natural. Anything made by humans can be destroyed by humans. Only what nature imprints remains unchanged. Nature made no rich, no nobles, no kings.
운명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다면 독립심을 길러라. 먼저 세상의 여론을 지배하는 일부터 시작하라.
감각적 판단은 대단히 수동적이어서 현재의 느낌만을 확인한다. 반면 지각이나 관념의 판단은 능동적이다. 그것은 감각 기관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관계들을 비교하여 밝힌다. 이것이 두 판단이 지닌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크다. 자연은 절대 우리를 속이지 않으며 우리를 속이는 것은 항상 우리 자신이다.
Sensory judgment is passive; it registers the present moment. But perception and conceptual judgment are active—they compare relationships the senses cannot decide. Nature never deceives us; we deceive ourselves.
판단은 언제나 성찰을 통해 얻어지며 그것은 대상 그 자체에서보다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유념하라.
Judgment comes through reflection and arises not from the object itself but from the perspective from which we view it.
평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수단 자체가 그 평등을 파괴하기 때문이며, 강자에게 부여된 공공의 권력은 약자를 억압하고 자연이 확립해 놓은 균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최초의 모순으로부터 문명사회의 모든 착오가 생겨난다. 소수를 위해 다수는 희생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 또한 희생된다. 정의니 충성이니 하는 허울 좋은 용어들은 곧잘 폭력이나 부정의 무기로 악용된다. 만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특권 계층의 사람들은 실상 자신만을 위해 봉사할 따름이다. 그라므로 정의와 이성이라는 명분 하에 바쳐지는 특권 권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존경 또한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미워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인간을 동정하고 그러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만이 같은 인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감정이다.
The point is not to hate flawed humans but to pity them and avoid becoming like them. That is the only fitting feeling we can have for our fellow humans.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그라므로 자신의 지위나 신분이 야기할 행복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관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지금부터 해야 할 우리의 연구과제이다. 하지만 이 연구를 올바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마음을 아는 일이 급선무다.
명상
피타고라스는 이 세계를 올림픽 경기장에 비유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경기장에서 장사를 하며 이익을 챙기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일신을 내던져 영광을 추구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경기를 보면서 만족한다. 이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들이 가장 최상이다.
Pythagoras compared the world to an Olympic arena. Some trade for profit, some risk their lives for glory, and some simply watch—and those last ones are the best.
악한 사람들을 증오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이해 관계 때문이다. 그 악한 자들과 우리가 관계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증오하기보다는 동정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그들 자신을 해친다. 그들의 마음이 스스로를 얼마나 벌주고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좀 더 편하게 그들의 악덕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We hate evil people only because their actions affect us. If they had nothing to do with us, we would pity rather than hate them. They harm themselves far more than they harm us. If we could see how their own hearts punish them, we would forgive their faults more easily.
위로나 격려의 힘은 예상외로 크다. 비난해야 마땅할 것 같은 잘못에도 관용과 용서로 그를 대한다면 그 교육의 효과는 깊고도 넓다.
Comfort and encouragement have great power. Even when someone deserves criticism, approaching them with tolerance and forgiveness produces deep, lasting change.
우리 모두는 인류의 일원일 뿐 개인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통념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보고 느낀 것 외에 어떠한 권위에 의해서도 지배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는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대상들로부터 다양한 관념을 획득할 것이 분명하다.
The key is not to follow social convention blindly and not to submit to any authority beyond what we directly see and feel. If we maintain this state, we will gather countless new ideas from daily life.
구원 받기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한다는 교리는 인간의 이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헛된 가르침의 근본이다.
정말 굳센 영혼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 언어이다.
A truly strong soul speaks a different language—one that moves people.
인간과 자연을 존중하는 그는, 특히 자기를 닮은 사람에게 특별히 애착을 가질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본성으로부터 내미는 손을 기꺼이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