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와 F가 어떻게 다르냐면요
예전에는 혈당을 체크하려면 주삿바늘로 손끝을 찔러 혈당을 물리적으로 재야 해서 너무 번거롭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연속혈당측정기"라는 기기를 사용하면 하루 종일 내 혈당 수치를 핸드폰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처럼 미세한 바늘이 있는 기기를 한쪽 팔에 부착해둬야 하고, 14일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나도 궁금해서 한번 해봤고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 기기 덕분에 핸드폰에서 아래처럼 하루 혈당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엄마의 혈당 관리를 위해 일일 혈당 그래프 스크린샷과 전날 먹었던 음식을 가족 단체방에 공유하고 있다.
일반인의 혈당은 보통 70~140 mg/dL 사이로, 그래프 상의 초록색 구간이다. 위 그래프는 11월 17일 하루동안 엄마의 혈당 수치를 보여준다. 저혈당은 없지만 저녁 6시 이후에 430 가까이 올라가, 너무 높은 수치라 놀라서 문자를 보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언니와 나의 물음에, 엄마는 몇 시간 동안 답이 없다가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맞겠다며 앞으로의 각오를 이야기했다.
나 무슨 상황이었던 건지 그냥 궁금한 건데!! 화내는 게 아닌데..!!
저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답이 없었던 엄마. 전화하니 밖이라고 저녁에 다시 전화해 준다고 했는데, 전화가 없었다. 심란해졌다...
엄마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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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엄마를 비난하거나 혼내는 게 아니라 혈당 관리를 도와주고 싶은 거야. 같이 엄마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지. 근데 엄마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혈당 수치는 어떤지, 밥은, 단백질/지방 잘 잘 챙겨 먹었는지 공유를 해주면 안 될까? 엄마는 감정적인 성향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엄마에 비해서는 좀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성향이라서 우리 둘이 문제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 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걸 엄마가 헤매고 있을 때 무력감을 느껴. 그럴 땐, 엄마가 그냥 감정적으로 시를 답변으로 보내거나, 앞으로 철저히 하겠음 - 이렇게 감정적 요소로 대답하는 것보다, 뭐가 문제였고 어떤 게 어려웠는지 이런 걸 알려주면, 그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더 편해.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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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새벽,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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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에 관한 백서를 쓴 너의 깊은 마음이 눈물겹다. 내가 정신 나간 사람 같다. "불이 나서 살고 있는 집이 타고 있는데, 엄마는 울타리를 챙기고 있는 것 같아"라는 너의 말이 생각난다. 왜 이리도 지나간 시간들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고 헉헉거리고 있는지. 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단 한 가지씩 만이라도 철저히 행할게. 1. 인슐린은 제시간에 꼭 맞는다. 2. 식사는 야채,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순서로 영양 위주로 식단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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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말 좋은 각오야..!! 그런데 난 아직 왜 인슐린을 못 맞았는지 궁금해. 난 T야 그걸 알고 싶어! ㅠㅠ
인슐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랬구나..
엄마에게 필요한 건 격려와 지지라는 걸 깨달은 날의 일기를 엄마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엄마의 식단을 보내주면 거기에 나의 T 성향을 담은 해결/개선방안을 함께 보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우리의 이런 대화를 글로 남겨보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이렇게 글로 써보게 됐다. 엄마가 당뇨를 앓고 있는 건 너무 힘들고 슬프지만, 이걸 계기로 내가 엄마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어릴 때 나를 보며 마음 졸였던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을 때도 있어, 엄마와 마음의 거리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2025. 11. 20. 엄마의 10시 일기
지하철이다.
사람들 모습들이 각양각색이다.
그네들은 어떤 이름의 병마로 시달림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매일 맛난 음식을 붙잡고 휀스로 막는 당뇨가 스멀거린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자태로 보이지만 회색빛에서 파스텔톤처럼 가면을 쓴 행태처럼 답답하다.
차라리 외형에서 피가 나는 상처라면 치료되는 과정에서 희망을 가지겠지만 이 눔은 딴지를 자주 건다. 그래서 주위 식구들조차 저리게 만드는 불치의 존재다.
눈을 뜨면 붉은 피 한 방울에 나타나는 수치에서 간이 오그라 들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전생을 탓하기도 한다. 말은 쉽게 나오니 편한 대로 지껄임을 잘 알고 있다. 화풀이로 합리화시키고 일상을 시작한다.
오늘도 1%만 나아지는 하루이기를 빌어본다.
2025. 11. 20. 딸의 답장 E+R=O
오늘 본 영상 중에 울림을 주는 게 있어 공유합니다!
E+R=O, 풀어쓰면 Event (어떤 일) + Reaction (내 반응) = Outcome (결과)
즉, 어떤 일의 결과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내 반응이 더해져서 결과가 된다는 말이지. 여기에 최근 뇌과학 연구가 밝혀낸 내용이 더해지면,
1.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성장의 기회로 삼고, 어떻게 개선할지 내부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랑 vs
2. 스트레스에 굴복하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까 하고,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경우
이 두 가지 그룹을 오랫동안 비교하고 연구해 봤는데 1번이 모든 면에서 성과가 좋았대. 학업/행복도 모두. 그리고 더 신기한 건, 2번 그룹의 학생들에게 마인드셋을 바꿔주는 교육을 했대. 40분 정도? 그러고 나니까 2번 그룹의 성과가 올라가기 시작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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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는 일들은 나를 통과해서 지나간다. 내 마음속에 남는 것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이다. 지하철에서 스치는 얼굴들, 갑자기 올라가는 혈당 수치, 마음을 쿡 찌르는 걱정들. 이건 그냥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한숨을 쉬면 하루가 무거워지고, 조금만 숨을 고르면 하루가 다시 열리기도 한다.
엄마가 느끼는 답답함과 억울함, 그 마음이 너무 크고 무거워 때로는 세상이 우리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1%라도 개선해 보겠다는 엄마의 그 마음은, 우리의 격려와 지지로 더 커질 것이다. 1%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