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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이 높은 게 어때서?

혈당과 인슐린에 대해 쉽게 이해해 보자

by 파일럿

요즘은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도, 체중 조절을 위해 혈당 수치를 신경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의 다이어트가 단순히 칼로리 섭취를 줄이는 방향이었다면, 이제는 공복에 버터가 들어간 방탄커피나, 올리브유를 떠먹기도 한다. 기름이 가진 엄청난 칼로리를 생각하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이어트 방식이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인슐린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차근차근 쉽게 알아보자.


1. 우리 몸은 포도당, 지방산을 연료로 쓰는 하이브리드 엔진이다.

음식을 섭취하면 포도당과 지방산이 만들어지고, 말하자면 우리 몸은 포도당과 지방산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엔진인 셈이다. 똑똑하게도 우리 몸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포도당이 많으면 포도당을, 지방산이 많으면 지방산을 연료로 쓸 수 있고, 이 연료를 바꾸는 스위치가 바로 인슐린이다.



2. 음식은 위와 장을 지나며 아래처럼 소화된다.

탄수화물 (쌀, 밀가루 등 곡류) → 포도당

단백질 (고기, 콩 등) → 아미노산

지방 (기름, 견과류) → 지방산

단순당 (설탕, 과일 등) → 포도당, 과당

섬유질 (야채, 채소) → 흡수되지 않고, 천천히 이동하며 소화 속도를 늦춰준다


여기서 혈당을 직접 올리는 건 포도당(=탄수화물, 단순당)이다. 다른 영양소들은 혈당을 올리진 않지만, 에너지원이 되거나, 근육, 피부, 장기, 세포막 등 신체 구성 성분이 된다. (웬만한 음식에는 탄수화물(=포도당)이 조금씩은 들어있어, 음식을 섭취하면 혈당이 조금은 오른다.)



3. 포도당은 피를 타고 세포로 이동한다.

전기가 전선을 따라 흐르듯, 포도당은 혈액과 함께 흐르며 세포가 있는 곳으로 운반된다. 포도당이 세포로 들어가려면 세포 문이 열려야 하고, 이때 인슐린이 등장한다.



4. 인슐린은 세포 문을 여는 스위치다.

혈액 속 포도당이 많아지면, 췌장이 인슐린을 만든다. 인슐린은 세포의 문을 열어


1)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 에너지원으로 쓰이게 만들어주고,

2) 세포들이 지방을 저장하게 해 준다. (체중 조절 관점에서 중요한 기능)


이 두 기능 덕분에 건강한 사람은 혈당이 일정한 범위로 유지된다.



5. 당뇨는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아래 두 가지 경우이다.


1) 인슐린이 부족한 경우 → 1형 당뇨

췌장 수술을 했거나, 선천적으로 췌장에 문제가 있어 인슐린을 거의 만들지 못하는 상태로 우리 엄마의 경우다. 따라서 음식을 섭취하기 전에 췌장을 대신해 주사로 인슐린을 넣어줘야 한다.


2) 인슐린이 나오지만, 세포 문이 말을 안 듣는 경우 → 2형 당뇨 (인슐린 저항성이 높은 경우)

인슐린은 충분하지만 세포의 문이 잘 안 열리는 경우로, 인슐린 저항성이 높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1형 당뇨와 2형 당뇨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본인의 유형에 맞는 관리가 필수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1형 당뇨인데 2형 당뇨 환자들에게 도움 된다는 민간요법을 시도하다 당 수치가 더 악화되기도 했다. 1형 당뇨 환자분들은 시중에 당뇨환자들을 위한 식품이나 식이요법들을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몸이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1형 당뇨 방식으로 혈당 수치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6. 그럼 혈당 수치가 높으면 왜 문제일까?


1) 당뇨병 관점

혈당이 높으면 피를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천천히 흐르게 한다. 그 결과, 혈액이 나르는 산소와 영양소가 세포까지 잘 전달되지 않아 상처와 염증 회복이 느려지고, 노폐물 배출도 더뎌진다. 겉으로는 에너지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포가 연료를 못 써서 굶고 있는 상태다.


우리 몸에는 굵은 혈관도 있지만, 눈, 콩팥, 손발 끝에는 머리카락보다 더 얇은 미세혈관들이 있다. 끈적한 피가 이런 혈관을 지나가면 가장 먼저 손상이 온다. 우리가 말하는 혈당 스파이크, 즉 혈당이 확 올라갈 때마다 혈관 벽에 미세한 상처가 생긴다. 이는 혈관을 매일 조금씩 긁어내는 것과 같다. 이 작은 상처들이 쌓여 시신경이 손상되기도 하고, 콩팥 기능이 떨어지며, 손발 끝의 감각이 둔해지는 이유다. 고혈당이 오래 유지될수록 이런 합병증들이 조용히 진행된다. 혈당이 높으면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자주 목이 말라 깨고, 혈당이 높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져 얕은 잠만 반복된다.


즉, 높은 혈당은 몸 전체를 닳게 하는, 몸이 익어가는 상태다. 겉보기엔 저혈당만큼 위험해 보이지 않지만, 혈관, 세포, 면역력, 수면 등 몸 전체가 하루 종일 닳아가는 상태인 것이다.


2) 체중 조절 관점

인슐린이 높게 유지되면 인슐린의 2번째 기능인 세포가 지방산을 저장하는 기능이 활성화되어 이때 섭취하는 지방산 대부분이 바로 지방세포로 저장된다. 따라서 포도당이 포함된 음식을 많이/자주 섭취하게 되면, 하루 대부분 인슐린이 높게 유지되고, 그러면 몸에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 되는 것이다.



7. 혈당이 낮으면?

반대로 혈액 속 포도당이 부족하면 뇌와 장기가 에너지를 받지 못하고, 심하면 저혈당 쇼크로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 정상인은 포도당이 떨어지면 지방이 케톤을 만들어 대체연료로 쓴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간헐적 단식 = 인슐린을 낮은 시간을 늘리는 키토제닉 다이어트이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의 경우, 특히 혈당 스파이크 이후에는 위험한 정도로 혈당이 내려가는 저혈당 상황이 급하게 올 수 있어 단식은 절대 피해야 한다.


그래서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혈당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는 단순하다. 포도당이 급하게 들어오지 않게 하고, 인슐린이 잘 작용하도록 돕는다.



1) 음식량에 맞는 인슐린 수치를 파악해 일정하게 맞기 (1형 당뇨의 경우)

식사 시에 먹는 탄수화물 양에 비례하게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즉, 평소 밥 1 공기를 먹었을 때, 5 단위의 인슐린을 맞는다면 그렇게. 1.5 공기를 먹는다면 6 단위로. 환자별로 본인의 일반적인 식사양과 그에 해당하는 인슐린 단위를 익혀야 한다.


2. 음식 선택과 순서를 바꾸기

핵심은 천천히 소화되게 하여,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것이다. 흰 빵이나 흰쌀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은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반면, 현미나 통곡물은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탄수화물을 먼저 먹는 것보다는, 섬유질/단백질/지방을 먼저 먹어주고, 그다음에 탄수화물을 먹는다.


3. 식후 10-15분 걷거나, 스쿼트 하기

근육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바로 사용해서, 같은 양의 밥을 먹더라도 혈당 상승을 크게 줄여준다.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가 큰 방법이며 식후에 걷기만 해도 혈당 상승폭이 크게 줄어든다.


4. 가공식품, 액체로 된 당분 피하기

저혈당 상황이 아니라면 소화 과정 없이 바로 혈당을 올리는 주스, 과당 음료, 꿀, 디저트, 당뇨용 주스, 미숫가루 등은 피해야 하고, 꼭 먹고 싶다면 야채, 단백질, 지방을 먹은 뒤에 적은 양으로 먹어야 한다.



11월 21일(2) 엄마의 당뇨 일기

어제는 성모안과에서 조형제를 맞았다. 당뇨합병에 대한 정밀 검사를 했다. 미세한 핏줄이 약간 막힘의 조짐이 보인다고 신경 쓰라는 의사 주문.

심란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심란하게 멍하니 있었다.

20년 이상을 앓았으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는 닥터의 상투적인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아님 많은 환자들을 상대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멍했다.

눈을 감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 봤다. 신체에서 눈이 9할을 차지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건강! 건강!! 건강!!! 을 노래하던 딸들의 소리가 맴돌고 쟁쟁 울렸다.

큰딸이 공부하고 있는 대구에 간다. 늦깎이로 다시 시작하는 간호학의 전문용어 외우기가 어렵다고 자기 머리가 옛날 같지 않다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대견하다.

좋아하는 고기라도 한점 구워 먹이러 간다.

자식이 뭐길래~

둘째의 빈자리가 시리다.

*당뇨환자들은 식사 후 최소한 5분이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의사의 주문이다*





11월 21일, 딸의 일기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건 격려와 지지. 상대방이 듣기 싫은 방식으로 전달된 피드백은 아무리 그 내용이 옳더라도 효과가 없다.


초콜릿이 당분이 많아 저혈당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엄마의 경우엔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 초콜릿에 설탕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못지않게 지방인 기름도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주스나 설탕, 꿀, 젤리처럼 단순당만 있는 경우보다 당이 천천히 오르게 한다. 그래서 혈당을 빨리 올려야 하는 위급한 저혈당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당뇨 환자의 경우 혈당이 천천히 오르게 되면 조바심이 생겨 필요 이상보다 더 당을 많이 섭취하게 만든다. 결국 저혈당이 지나고 나서는 고혈당으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저혈당에서는 단순 과당을 정해진 양만큼 조금만 섭취해서 혈당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 뒤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골고루 들어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해 혈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혈당->혈당 스파이크->저혈당으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혈당 스파이크는 저혈당을 부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저혈당을 벗어나면 다가온다.


엄마가 혼자 있을 땐, 특히 저혈당이 온 다음이 무섭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저혈당 쇼크,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서 알면서도 계속 혈당을 높이는 음식을 먹게 된다고. 엄마와 내가 같이 있을 땐, 옆에서 '엄마, 이미 당 15g 정도 먹었으니까 15분만 지나면 혈당이 오를 거야. 더 먹기 전에 15분만 기다려보자. 혈당은 내가 계속 보고 있을게' 이렇게 엄마 손을 잡고 조절하는데, 엄마가 혼자 있을 땐 특히나 이 과정이 힘들 것 같다.


저혈당 때 초콜릿은 도움 되는 식품이 아니다. 주스나 젤리, 설탕, 꿀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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