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받지 않고 쓰는 cat person의 검증되지 않은 개 이야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마음에 강아지가 하나 태어난다.
강아지들이 늘 그렇듯이 처음에는 귀엽다. 눈도 뜨지 못한 것이 꼬물거리는 것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다만 이 녀석이 자라서 어떤 개가 될 것인지는 당장 알지도 못하거니와 예상하기도 어렵기 마련인데,
치와와처럼 겁이 많고 시끄러운 녀석이 되기도 하고,
골든리트리버처럼 길들이기 쉬운 유순한 녀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진돗개처럼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 오랜시간이 걸려 집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강아지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늑대새끼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가끔은 머리가 세개 달린 켈베로스가 태어나기도 한다.
핏불같은 맹견이라고 해도 개주인의 역량에 따라 똥오줌을 가리도록 훈련시키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킬수 있지만, 가끔은 내 능력에 버거운 강아지들이 태어난다. 마당있는 집이 필요하거나, 사료를 너무 많이 먹거나 등등. 진짜 개라면 이런 경우 더 나은 여건을 가진 주인에게 입양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강아지의 야성을 통제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 점점 개줄을 잡고 있기가 버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줄이 끊어진 개는 황량한 폐허를 헤매다가 서서히 굶어 죽는다. 흡사 주인 잃은 후쿠시마의 개들 처럼. 바라보기 괴롭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몇번 반복되고 나면 개가 날뛰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안락사를 시키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너무 심각하지 않다면 중성화정도로 끝내고 좋은 우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
몇년을 얌전히 지낸 정든 개라도 어느 순간 열린 현관문으로 도망가버릴 수 있다. 가끔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산책다녀오는 길에 차에 치이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천수를 누리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이 역시 슬픈일이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자신의 몸이 타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 처럼 언젠가는 꼬물거리는 강아지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개 다루는 실력도 점점 노련해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