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우울의 시간을 거치며, 그 비싸다는 종합심리검사를 두 번이나 받았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심리검사 결과지는 심리검사 이후 시간이 꽤 지난 이후에야 읽을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내용 중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외현적으로는 타인에 대해 적절한 관심과 긍정적인 인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검사를 통해서는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 및 불편감이 상당히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이라는 대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사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좀 알 것도 같다. 나는 사람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중
설 연휴동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었는데, 주인공 '요조'에게 느껴지는 묘한 동병상련의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 도중 예의 그 심리검사지의 문구가 떠올랐다. 태어나서부터 평생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람이라는 존재를 한없이 두려워 한 요조는 어떻게 보면 나와 꼭 닮아 있었다. 일련의 진지한 성찰의 결과, 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사람을 믿지 못한다. 다만 요조와 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결국 나와 똑같은 운명, 다시 말하여 죽음을 맞이해야 할 '사람'이라는 존재 전반에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여기서 내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해 보자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지레짐작한다는 의미이다. 우선,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을 정말 그렇다고 쉽사리 믿지 못한다. 물론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며 인간관계를 잘 쌓아 왔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 역시 나에게 비슷한 만큼의 호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는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나 자신은 그렇게 매력적인 대상이 아닌 '껍데기'일 뿐이다(이것에 대해서도 글 한 편을 쓸 예정이다. 책 한 권 읽고 글 두 편을 쓰다니 좋은 가성비군).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나에게 호감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눈치를 많이 보려 했다. 물론 21세기 시민의 덕목인 개인주의를 철저히 준수하는 나로서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의 눈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보게 된다. 저 사람이 나의 말에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있나, 저 사람이 나의 행동에 거슬림을 느끼고 있지는 않나, 저 사람이 나의 존재를 즐거워 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지만 눈치를 본다는 것은 결국 의심한다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누구를 믿어야 할까.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동이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어떻게 보면 인간은 믿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은 혼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라면 살아나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생존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나를 도와 줄 것이라는, 나의 생존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나눠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경우에 따라 사람을 믿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것을 '정신질환'의 정의로 삼고 싶다. 믿음의 결핍은 비타민의 결핍과 같이 사람의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내가 '요조'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