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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09. 2022

10월 9일 최가영의 하루

그 사람의 거짓말

거짓말은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그만큼 오만한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나랑 잠깐 마주치는 사람의 거짓말이라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거의 매일 나와 만나는 사람이 하는 거짓말은 결국 들키기 마련이다. 특히 그 사람이 내 남자 친구라면 말이다.

얼마 전 내 오랜 친구인 희수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나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오래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의 본론을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희수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계속 다른 이야기를 하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수다를 떨고 나니 나도 조금 지쳤다. 그래서 희수에게 본론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희수는 나에게 아직 경수를 만나고 있는지를 물었다. 내 남자 친구인 경수의 이야기였다. 나는 무슨 일인지 희수에게 물었다. 희수는 여전히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희수의 손을 붙잡고 괜찮으니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계속 망설이던 희수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희수가 들여준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 희수의 친구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면서 자신에게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희수는 오랫동안 남자 친구가 없던 자신의 친구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서로 만날 시간을 정했다. 얼마 후 희수는 친구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다름 아닌 경수가 있었다. 희수가 경수의 존재를 알았을 때, 그녀는 아직 경수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희수는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친구의 위치를 찾던 중 자신의 친구와 다정하게 있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경수는 희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희수는 당황해서 자신의 친구에게 연락해서 갑자기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희수의 친구는 무척 서운해했지만 친구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희수는 자신의 친구가 사귀는 사람이 정말 경수가 맞는지 확인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사실 확인을 했고 희수가 알바하는 곳에서 만나 경수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희수는 경수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원래 희수와 경수는 알고 있는 사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희수가 나에게 경수를 소개해줬었다. 희수는 당장 경수에게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나에게 경수의 바람을 알려줌과 동시에 혹시 우리 사이가 서먹하거나 헤어진 상황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경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데이트를 하던 사람이었다. 알바를 하는 것도 알고 있고 심지어 나는 경수가 알바하는 곳에 가본 적도 있었다. 그때 조그마한 여자애 한 명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까지 봤었는데…. 그 아이가 희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경수는 바람을 절대 필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건 내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는 사람은 있고. 경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희수와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희수는 당장이라도 경수의 다리를 박살 낼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녀를 말렸다. 그런 방법으로는 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경수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경수에게 잘 쉬고 있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경수의 집이었다. 경수는 집에 없었다. 내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이런 어설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없었다. 

나는 경수가 일하는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경수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혹시 그가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장님이 전화를 받으셨는데 경수는 얼마 전에 알바를 그만둬서 이제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운 소식까지 알게 되었다. 경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알바를 나가는 게 힘들지만 앞으로도 계속 다닐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조차도 거짓말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경수를 믿고 있었다. 내 남자 친구는 듬직하고 성실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고작 오늘 몇 시간 만에 산산조각 났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어이없는데 내게 하는 사소한 말까지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경수라는 사람 자체가 경멸스러웠다. 

나는 오늘 경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수에게 ‘집에 왔는데 어디 갔어?’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에 느낀 배신감을 이렇게 풀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완벽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의 추악한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나는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희수에게 전화했다. 경수가 바람피우는 증거를 모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희수는 내 복수극에 동참하기로 했다. 희수는 경수가 다른 여자와 함께 여행에 갔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다고 나에게 전해줬다. 경수가 나에게는 오늘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아마 경수는 1박 2일이나 당일치기로 그녀와 여행을 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그 이상의 상상을 멈췄다. 토할 것 같았다. 

나는 경수의 집에서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수는 여전히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경수에게 몸이 안 좋냐고 물었고 경수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경수의 집으로 가도 되냐고 묻자 경수는 혼자 쉬면 된다며 나를 피하려고 했다. 그는 끝까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어설픈 거짓말에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숙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경수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와 어제까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오늘 이 감정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그래야 경수에게 내가 당한 배신감을 그대로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경수의 집 바닥에 누워 경수에게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수많은 상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어떤 선택을 해도 시원한 결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추악한 거짓말쟁이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경수에게 나도 우리 집에서 쉬고 있겠다는 거짓말을 보냈다. 경수는 나에게 쉬고 있으라고 했다. 서로의 거짓말이 이어지고 있을 때 집 안으로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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